2008-11-05

10월의 여행

경제 위기가 닥쳐오고, 마감이 덤벼들고, 개인적으로 맡은 일도 처리하다보니 10월에 다녀온 여행 사진을 11월에 올리는 만행을 저지르게 되었다. 나는 동행인과 함께 10월 3일 개천절에는 10번째 쌈지사운드페스티벌에 다녀왔고, 이후 10월 4일과 5일에 걸쳐 부산에 내려가 영화는 한 편도 안 보고 국제시장과 깡통시장을 쏘다니며 이것 저것 쇼핑을 하고 돌아왔다.

긴 글을 쓰긴 좀 피곤해서, 사진과 간단한 설명만 덧붙인다.




김창완 밴드.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부터 세 곡을 내달렸다. 쌈싸페의 키치 분위기가 김창완 밴드에 압도당하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 전까지는 '슈퍼키드'라는 명랑한 친구들이 나와서, 치킨집 앞에 놓는 흐느적거리는 풍선 인형을 틀어놓고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함께 얼쑤절쑤 덩실덩실 신나게 랩을 하는 분위기였는데, 김창완 밴드가 락으로 정리했다.




유앤미블루의 이승열. 한국의 보노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백 퍼센트 즐기지는 못했다.

사실 이번 쌈싸페의 최고 이벤트는 심수봉의 등장이었는데, 그 광경을 사진으로 못 찍은게 아쉽다. 목소리의 힘은 많이 죽었지만 타고난 분위기만큼은 정말 매혹적이었다.




10월 부산여행의 목적지가 바로 여기였다. 국제시장. 토요일 밤에 지리를 파악하고 일요일에 쏘다녔는데, 걸으면 걸을수록 '암굴'이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곳. 낮에 찍어서 그런지 그 느낌까지 살아있지는 않다.




부산에서는 포장마차에서 오뎅과 곤약을 같이 팔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굳이 시식해보고 있는 대중문화비평계의 큰 별 노정태 선생.




해 떨어진 자갈치 시장에서, 회가 나오기 전까지.





부산 국제시장의 '개미집'에서 먹은 낚지볶음.





개미집 간판. 낙지가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개미집 간판을 자세히 보면 글씨 안에 정말 개미가 들어있다. 둘 다 은근히 귀엽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말처럼 달리고 싶은 사람은 클릭해서 크게 보시길.




친구가 구입한, 노먼 록웰의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는 우산을 쓰고 찍은 사진. 노먼 록웰의 일러스트를 나는 사실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몽롱하고 포근하지만, 나와는 너무 이질적인 문화적 코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그의 일러스트를 보고 있노라면, 내 것이 아닌 그리움에 휩싸이게 되고, 그로 인해 굳이 느낄 필요가 없는 소외감에 젖어드는 자신을 발견하곤 하기 때문이다. 이건 어렸을 때, 양과자 깡통에 그려진, 풍성한 핑크색 치마를 입고 양산을 쓴 아가씨의 파스텔 그림을 볼 때의 기분과도 비슷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일러스트가 우산에 그려져 있으니, 감정적인 동요를 미적인 즐거움이 압도했다. 어쩌면 예전 그때와 감성의 구조가 조금 달라진 것일 수도 있겠다.




깡통시장을 쏘다니다가 먹은 '할매 유부오뎅'. 당면이 들어있는 유부를 삶아서 오뎅과 함께 내준다. 다소 느끼하긴 하지만, 북적거리는 시장을 누비고 다니다가 HP를 충전할 때에는 이런 걸 먹어줘야 하지 싶다.




국제시장에 있는 가야밀면에서 저녁. 작년에 다른 곳에서 먹어본 밀면은 실망스러웠는데, 여기는 마음에 들었다. 밀면 맛이라는 게 특별한 건 아니지만, 맛있는 것과 맛없는 건 확실히 다르다.




여행의 소득. 골동품 상인에게서 덥썩 산 손목시계. 메이커도 없고, 방수 기능도 없고, 바늘 세 개와 유리판만 있는데, 은근히 그럴싸해보여서 샀다. 지금도 내 손목에 차고 있음.

마감을 끝내고, 맡은 일들을 잘 처리하고, 언젠가 또 여행을 가게 될 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요즘 이래저래 사는 게 팍팍하다. 고작 한 달 전인데, 이 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터무니없을 정도로 멀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다시 봐도 흡족하다.

댓글 2개:

  1. 님이 오뎅을 먹고 있는 사진 뒤 저 여햏들이 마음에 든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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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부산 여햏들 성격 장난 아니라능... 추운 서울에서 온 사람들은 그저 ㅎㄷㄷ 떨게만 된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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