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20

노무현: 신자유주의자인가 네오콘인가

심상정 진보신당 상임대표와 노무현 전 대통령간의 논쟁이 한창이다. 과연 노무현이 심상정의 재반론에 성의있는 답변을 돌려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자신이 만든 정치 토론 사이트 '민주주의 2.0'에 올려놓은 반론의 내용만을 놓고 보더라도, 우리는 이명박이 집권하기 전까지 한국 사회가 어떤 원리에 의해 운영되었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11월 20일 현재까지 진행된 토론의 내용은 이 기사와 관련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다. 그런데 여기서 유독 눈길을 끄는 지점이 하나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핵심 사상이 따로 있고, 개방은 그 내용의 일부에 불과한 것이라면 FTA나 개방을 추진한다 하여 그 하나 만으로 바로 신자유주의라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신자유주의를 한마디로 말하면, '작은 정부' 사상이라 할 수 있"다고 정의하고는,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가 작은 정부를 지향한 것일까요?"라고 되묻는 노무현의 화법이다.

노무현의 이러한 질문에 대해 '신자유주의란...'이라고 설명을 다는 심상정의 반론은 그다지 현명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엄연히 개별적인 정책에 대해 묻고 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신자유주의'라는 경제학적, 정치철학적 개념에 대한 토론으로 '철학화' 하는 효과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무현이 '나는 시장의 개방에는 찬성하나 작은 정부를 지지하지 않으므로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분명히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시장의 자유, 기업의 자유와 함께 정부의 역할을 동시에 강조하는 것은 '네오콘', 즉 신보수주의자들을 고전적 자유주의자, 즉 신자유주의자들과 구분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박성래 기자가 쓴 《부활하는 네오콘의 대부, 레오 스트라우스》(김영사, 2005)의 한 대목을 인용해보자.

자유방임주의자인 하이에크에게 국가의 역할 확대는 그 형태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복지국가라 할지라도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노예로의 길'일 뿐이다. 이에 반해 신보수주의자들은 국가의 역할 확대를 걱정하지 않는다. 신보수주의자들은 오히려 국가의 역할 확대가 자연적이고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212쪽)


박성래에 따르면, 네오콘은 사회복지를 확대하는 대신 개인의 일상적 생활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택한다. 따라서 적어도 스스로는 "전반적으로는 복지제도를 정비하고, 지출을 늘리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부의 역할을 확대했"다고 주장하는 노무현의 입장에서 보자면,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그에게 '네오콘'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부당한 일로 보일 수 있다.

나 또한 직접적으로 '노무현은 네오콘이다'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노무현과 그 지지자들이 보이는 행태에서 일종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있을 따름이다.

첫째. 노무현의 말은 레오 스트라우스의 말처럼 일관성이 없다. 국가의 기능을 강화한다면서 투자자 국가 직접제소제가 포함된 한미 FTA를 밀어붙였고, 서민경제를 살리겠다면서 부동산을 통한 경기 부양에만 골몰했을 뿐 내수침체에 대한 대비책을 전혀 세우지 않았다. 둘째. 그 노무현의 비일관적인 말을 일일이 '좋은 의미'로 해석하려 드는 일군의 '제자 집단'이 있다. 두 번째 항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까지나 '진보가 아니며', 다만 '제대로 된 보수주의를 지향할 뿐'이라고 늘 강변한다. 즉 새로운 보수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입에 달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보수주의를 영어로 번역하면 네오콘이다. 그들은 언제까지나 자신들이 '새롭기' 위해, 사실상 '낡은' 보수주의를 더욱 공고하게 해주는 역할을 수행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본토의 네오콘과 비교하기에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초라한 집단이지만, 해당 국가에 미치는 정치적 해악의 크기는 만만치 않다.

앞서도 말했지만 노무현의 비일관적인 발언에서 네오콘과의 유사성을 더듬어낸 이 모든 논의는, 굳이 말하자면 '은유'적인 차원에 불과한 것이지 '노무현은 신보수주의자다'라고 직접적인 명제를 구성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이 글을 통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한국의 담론적 수준을 고려할 때, 정치적 토론의 장에서 '신자유주의'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은 그 자체가 패착일 뿐이다. 둘째. 스스로를 신자유주의자가 아니라고 규정하는 노무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없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와 그 외의 '좌파적 경제정책'을 선악 구도로 놓고 파악하는 고질적 이분법 하에서나 성립할 수 있는 논변이다. 그리고 바로 노무현은 그런 이유로 '나는 신자유주의자가 아니오'라고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심상정은 선택을 해야 한다. 노무현이 스스로 신자유주의자라고 인정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명박이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경제 정책에 대해 토론하는 차원에서 본다면, 신자유주의라는 단어는 일종의 초월적 이념에 불과하다. 한국 경제의 대외 의존도를 계속 높이는 방향으로 국정 운영 방향을 결정했던 그 어리석은 선택에 대해 묻는 방법은 그것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이 토론이 진정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라는 단어 자체를 버려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지난 5년간 한국 사회를 이끌었던 노무현 정부의 진면모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이 미국의 '네오콘'보다 황당하면 황당했지 '상식적'일 리는 없다고 짐작한다.

댓글 1개:

  1. 그래 글쓴 당신의 말대로 좀 알것같다.

    우리는 이명박이 집권하기 전까지 한국 사회가 어떤 원리에 의해 운영되었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아직도 모른다면 캐병신이라 해야 마땅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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