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수사기관은 완결되지도 않은 수사 내용을 조금씩 조금씩 언론에 흘린다. 기자들은 그것을 받아 적고, 데스크에서는 가장 자극적인 제목을 골라 뽑는다. 그 뉴스를 읽고 독자들은 ‘진실’이 뭐냐, ‘○○설’의 팩트는 뭐냐, 왈가왈부 따지기 시작한다. 정작 제대로 밝혀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남는 것은 그저, 피의자의 황폐해진 영혼뿐이다. 그는 설령 수사결과가 무죄로 나온다 해도, 사회가 자신을 평생 죄인 취급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남은 선택은 결백을 주장하며 목숨을 던지는 것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타살설 따위를 놓고 벌어지는 인터넷상의 설왕설래를 보고 하는 말이다. 많은 이들은 쉽게 말한다. 조선일보가 문제야, 언론의 선정성이 문제야, 쯧쯧. 하지만 그 말을 하는 그 사람부터가, 그 언론에서 흘리는 파편적인 정보를 놓고 누가 진범이네 아니네, ‘시나리오’가 이렇게 나오네 저렇게 나오네, 여론재판에 슬그머니 참여해버린다. 좋은 언론은 결국 좋은 독자가 만들고, 좆같은 언론은 좆같은 독자새끼들이 만드는 거다. 조중동뿐 아니라 모든 언론이 싸구려스럽다면, 그 언론을 소비하는 사람들, 특히 ‘○○설’에 혹하는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기 바란다.
▲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이 투신했다고 알려진 봉화산 부엉이 바위가 사저 뒤로 보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유성호
지금 똑같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나가던 등산객의 증언, 번복되는 진술, 과연 진실은? 이게 지금이다. 일주일 전에는 이랬다. 박연차 회장의 증언, 번복되는 노무현의 진술, 과연 진실은? 타살설이니 뭐니 하는 떡밥을 덥석 무는 순간, 당신도 결국 조선일보 독자들과 다를 바 없는 팩트 골룸이 될 뿐이다.
안티조선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언론운동은 철저하게 실패했다. 조선일보의 공신력이야 떨어졌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성취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자신들이 왜 조선일보를 욕하는지, 왜 욕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공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사안을 ‘진실 게임’으로 몰아가고, 한 개인의 공적 판단과 선택을 그의 신변잡기와 연루시키는 조선일보, 혹은 조중동의 황색 저널리즘을 이겨내는 방법은, 언론의 소비자들이 그런 천박한 ‘팩트’에 관심을 끄고 오직 명백하게 확인된 사실만을 토대로 담론을 쌓아가는 것뿐이다. 하지만 지금 그런 모습은 찾아볼려야 찾아볼 수가 없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안타깝게 여긴다면, 대체 그 죽음이 왜 닥쳐와야만 했는지에 대해 생각을 좀 해보기 바란다. 검찰은 확인되지도 않은 범죄 사실을 언론에 계속 흘렸고, 언론은 그것을 확대재생산했다. 그러한 전방위적 압박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닌가? 노 전 대통령의 경호원에 대한 수사는, 경찰에서 조용히 하면 되고, 수사 결과 공개는 모든 사실이 확인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사안이 시급하다면, 경찰은 우선 완전히 확인된 사실부터 공개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도 최대한의 신중을 가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모습은 어떤가? 이미 또 하나의 여론재판이 시작되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다며 그 여론재판에 끼어드는 사람들, 당신들도 이미 공범이다.
조중동이 어쩌고 저쩌고, 좆중동이네 마네 욕하는 사람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조선일보 못 이기는 이유가 딴 게 아니다. 그놈의 달콤한 ‘팩트’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거 살살 흘리면서 애간장 타게 만드는 기술이라면 조선일보가 세계 최고 수준이지. 그래서 정작 지나고 보면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피의자는 병신 되어 있고 정작 ‘진실’은 과도한 ‘팩트’의 무더기에 갇혀버리고, 환기되었어야 하는 여론의 방향은 오직 ‘진실 게임’에만 쏠려버리는 그런 것 말이다. 지금도 딱 그 패턴으로 흘러가고 있다. 무슨 말이냐고? 그놈의 타살설 때문에 지금 묻혀진 이야기가 뭔지 잘 생각해보라.
서울시청 광장 봉쇄를 둘러싸고, 27일 수요일, 시민과 경찰 사이에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져 가고 있었다. 타살설이 운위되기 전까지 그 문제를 둘러싼 담론이 형성되고 있기도 했다. 정부도 아닌 일개 지자체 서울시가, 국민들의 집회의 자유를 완벽하게 억압하고 있다. 사실상의 집회허가제가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그런데 적어도 인터넷상에서는, ‘타살설의 진실’을 찾아 헤매는 선량한 사람들 덕분에 완전히 묻혀버리게 되었다. 네, 진실 좋죠. 잘 찾아보세요. 이미 조선일보는 웃고 있습니다.
명백하게 확인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내가 ‘팩트 골룸’이라고 욕하는 것은, 하지만, 다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놓고 제 깜냥으로 시나리오 써가며 왈가왈부하느라, 정작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할 것을 놓쳐버리는 어리석고 한심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조선일보가 문제라고? 부스러기 ‘팩트’를 주워먹는 당신 같은 독자가 있는 한, 조선일보는 망하지 않는다. 조선일보가 망한다 해도 어차피 같은 식으로 장사하는 다른 언론이 등장할 것이다. 그 품위 없는 언론은 결국 품위 없는 독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 언론과 검찰의 수사가 노무현을 죽였다. 이제 그의 경호원도 칼날 위에 서게 되었다.
제발, 그만하자. 떡밥을 물지 말자. 당신들이 낚이는 한 저들은 영원히 낚게 되어 있다. 조선일보의 독자들이 노무현을 죽였듯이, 한겨레의 독자들이 노무현의 경호원을 죽이는 모습을 나는 정말 보고 싶지 않다. ‘사회적 타살’은 바로 그렇게 저질러진다. 떡밥에는 낚시바늘이 들어 있다. 그것을 물고 자유를 얻을 수는 없다. 경찰의 수사와 언론의 호응이 다시 한 번 큰 죄를 저지르기 전에, 제발 그만 좀 하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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