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단 이번 선거 결과를 정리하며 글을 시작하자. 우리는 이겼다. 비록 이기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이겼다. 진보신당은 창당 3주만에 전국 정당득표율 2.94%를 기록하며 50만명의 지지를 얻어냈다. 물론 지역구에서 의석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패배의 면면은 차라리 승리의 기록이다. 돈이 없어서 유세용 트럭을 빌리지도 못했던 서대문갑의 정현정 후보가 4%대의 득표를 했다. 민주노동당 전 대변인 박용진 후보는 10%를 넘겼다. 88만원 세대의 문제를 온 몸으로 표상하고 있는 광주의 김남희 후보조차도, 놀랍게도 5%를 해냈다. 진보신당 당원게시판을 보니 마산의 장애여성 송정문 후보는 1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고 한다. 조금만 더 받았더라면 선거비용 환급도 받을 수 있었을, 그런 자랑스럽고 동시에 안타까운 숫자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진보신당은 물론 이기지는 못했지만, 이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접을 수가 없는 건, 노원병 선거구의 선거운동의 내용과 그 결과가 엄연히 현실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말하자면, 나는 노회찬 선본에서 4월 7일 자원봉사를 했다. 호빵맨 복장을 한 채 유세차를 타고 전 지역구를 후보와 함께 돌았다. 이 글은,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체 노원병 선거구에 부족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결여가 적절한 방식으로 채워지지 않을 때 진보신당의 앞날에 끼치게 될 악영향이 무엇인지에 대해 밝히기 위한 시도이다.
2.
투표 이틀 전, 분명 노회찬은 앞서가고 있었다. 노원 주민들은 노회찬 선본에 매우 호의적이었다. 특히 평수가 작은 아파트 단지에서, 재래시장 골목 등에서 반응이 좋았다. 상가 쇼윈도 너머로 앉아 있는 상인분들께 인사를 하면, 언제나 반가운 화답이 돌아왔다. 노회찬 본인의 캐릭터를 활용한 이미지 전략도 매우 탁월했다. 노회찬 호빵맨이 그 지역에서 얼마나 인기 있는 존재였는지, 직접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린이들이 유세차량을 따라 달려왔다. 마치 지난 시절 어린이들이 소독차의 뒤를 따라가듯 그렇게. 어떤 한 여자아이는 '호빵맨, 가지 말아요. 여기서 나랑 같이 살아요'라며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유세차량에서는 연신 '노회찬 대세론'을 밀어붙였다. 여론조사 13회 연속 1위를 기록한 후보라고, 민주당에 동정표를 주지 말자고, 그렇게 이야기했다. 홍정욱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고 했다. 그때는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바로 깨닫지 못하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갔지만, 사실 그것이야말로 노회찬 선본이 지니고 있던 가장 큰 약점이었다. 개표가 끝나고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노회찬 선본은 갑자기 올라간 노원의 아파트 가격에 졌고, 그것을 더욱 부풀려주겠다는 홍정욱의 '적절한' 공약에 졌다. 상대방을 너무 얕잡아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는 남궁원의 아들이고, 남궁원 또한 전직 국회의원이다. 선거와 관련한 인맥을 상당히 충실히 가지고 있었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노회찬 선본에는 바로 그렇게, 아파트 가격의 상승과 관련하여 집값 문제와 맞설 수 있는 전략이 존재하지 않았다. 어제 저녁부터 여러 사람들에게 이 지점과 관련한 나의 분노를 털어놓았다. 대체 왜 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그저 이미지로만 승부하려 했냐고, '우리 노회찬을 다시 국회로 보내주십시오!'말고 더 할 수 있는 말이 과연 없었냐고,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심상정이 내세운 '핀란드형 자립중고'같은 구체적인 대안을 왜 하나도 마련해놓지 않았냐고, 노회찬 선본과 전혀 상관 없는 사람들 앞에서 묻고 묻고 또 물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그건 답이 없는 문제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혹은, 답이 없다고 해서 회피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었을까.
3.
대한민국은, 적어도 서울은 '뉴타운'에 미쳐있다. 동작을의 득표율이 유독 저조한 것은 김종철 후보의 탓이 아니다. 야당과 여당의 대표주자들이 나와 한목소리로 '뉴타운 개발'을 공약으로 내걸고 조직표로 세 싸움을 벌인 결과 벌어진 일일 뿐이다. 아무튼 이것은 우리의 현실이고, 또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집값을 올려서 부자가 된 후 대한민국을 버리고 떠나겠다는 일념으로 똘똘 뭉친 국민들을, 설득하고 조직하여 '삶'으로 돌려놓는 그것이야말로 진보신당이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인 것이다.
노원병에 출마한 노회찬과 그 선본에서, 바로 이 문제에 대해 선도적인 연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혹자는 노회찬 선본이 후반부에 너무 힘을 뺐다고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관찰에 머무르는 것이다. 홍정욱이 집값 상승을 무기로 공세적인 입장을 취하는 한, 그것에 대항할 논리를 미리 만들어놓지 않은 노회찬 선본은 말 그대로 '이미지 정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나는 도리어 홍정욱이야말로 한국적인 실정에서 '계급 정치'를 했고, 그에 대한 노회찬 선본의 대응이 '이미지 정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실이다. 무책임한 지역 개발 공약을 남발하는 것이 무슨 계급 정치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노회찬 개인의 스타 파워에 의존하여, 그를 국회로 보내야 한다는 당위만을 내세웠던 이쪽의 대응에 비하면, 적어도 홍정욱 측은 그 지역 주민들과 '친화적'인 공약을 내걸고 그 위에 후보자 개인의 매력을 첨가하는 방안을 택했다. 아파트 가격이 올라서 자신이 강남 사람처럼 살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분명히 허위의식이지만, 실제로 가격이 오르긴 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유물론적인 현실이다. 이 현실을 도외시한 채 우리가 앞으로 대체 어떤 논의를 할 수 있을까? 그건 그냥 대책이 없는 문제니까, 앞으로도 '진보정치의 대의'만을 내걸어놓은 채 유권자들의 선의에 호소한다고? 그건 영원히 3% 정당에 머무르겠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진보신당의 앞날을 위해서, 또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우리는 부동산 열풍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에 맞서야 한다.
4.
총선에 나선 노회찬 캠프에 시간도 자원도 부족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아파트 가격이 급상승한 지역에서, 특히 노회찬이라는 전국구 스타를 앞세우고 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은 대단히 많은 것을 시사한다. 노회찬이 나왔어도 이기는 듯 하다가 졌는데, 다른 후보가 나온다면 어떨까? 또, 서울시의 거의 모든 지역이 뉴타운 개발을 바라고 있는 상황인데, 다른 지역에서는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가령 내가 사는 서울 중구만 해도, 모든 후보들이 약수동 달동네 등의 재개발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러한 개발의 광풍에 맞서기 위해서는, 바로 그 지역 주민들이 진짜 아쉬워할만한 그 무언가를 미시적으로 탐색하고 발굴하여 공약으로 제시하고 검증받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사람들에게 '삶'을 돌려줄 수 있는 그 무언가로 맞서지 않는 한 우리는 대한민국의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문제는 그 모든 과정들은 지역의 개별적인 상황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례별로 연구하고 접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총선 정국은 분명히 그 모든 일을 동시에 시행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무대이다. 지역의 사례를 지역 주민의 시각에서 연구하여, 당선되고 나면 그 정책을 전국적인 단위에서 시행할 수도 있다. 물론 4년 후의 총선을 위해 지금부터 연구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또 그래야 마땅하지만, 기왕 넘어야 할 산이라면 진작 발을 디뎠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대한민국의 그 어떤 지역구도 부동산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우리는 허공이 아니라 대지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지의, 또한 주택의 가격이 턱없이 오르고 있다는 것이 문제인 만큼, 동시에 집을 팔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며 시세차익을 누리는 것 외에 다른 삶의 즐거움을 대중들에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진보진영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노회찬을 국회로 보내야 한다'는 당위적인 명제가 대체 무슨 상관이냐는 말이다.
노원은 진작부터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한 지역이며, 서민층이 밀집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나도 처음 가봤는데, 지나치게 밀집되어 있는 아파트와 주택가가 매우 답답한 인상을 준다. 사람들과 '부대낀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는 지역이라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가령 '생태도시 노원'같은 구호를 전면에 내세우고, 주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생태적인 공약을 개발하여 제시하였더라면 상황은 많이 달랐을 수 있다. 어쩌면 지금처럼 대세론으로 밀어붙이는 것보다는 득표율이 안 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 내년에 열릴 지방선거와 또 4년 후의 총선을 위한 기본 포석은 충분히 깔아놓을 수 있었다.
5.
우리가 알고 있는 '좌파 정치'의 맥락을 모두 괄호 안에 집어넣고,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부동산을 기준으로 한국의 계급 구조를 설명할 수 있다. 주택이 없고, 아파트를 한 채 소유하는 것이 목적인 계급 A가 있다. 한 채의 아파트를 가지고 있고 그것의 가격이 상승하여 시세차익을 누리기를 바라는 계급 B도 있다. 여러 채의 가옥과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계급 C도 있을 것이다. 노원병의 문제는 계급 B를 위한 공약을 전혀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만 노회찬 선본은 소박하게 전제되어 있던 '계급 의식'에 호소하였고, 그것을 위해 노회찬을 국회에 재입성시켜야 한다는 당위만을 붙들고 매달렸다. 하지만 한국의 계급은 그렇게 구성되어 있지 않다. 다른 각도에서 말하자면, 모든 사람들이 부동산을 기준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판가름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좌파정당 또한 그러한 현실 속에서 계급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이해를 바탕으로, 각 지역에 맞는 정책을 수립하고 그것을 국민들에게 제시하지 않는 한, 진보신당이 지금보다 더 큰 외연을 확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지역구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던 노회찬 선본에 대한 아쉬움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우리에게는 지역구에서 선전했던 결과가 엄연한 숫자로 존재한다. 그 힘을 내년 지방선거에서 다시 한 번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4년 후에 다섯 석 이상, 크게는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노릴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대선까지 바라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회찬 캠프가 겪었던 의외의 고전은, 그 자체가 문제적인 상황이며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되짚어보고 연구해야 한다.
'키보드 좌파'라는 단어의 의미를 새롭게 곱씹고 있는 진중권의 작업과 병행하여, 진보신당의 지지자들은 '아파트 민중'을 구성해내기 위한 방법 또한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진보신당이 특히 수도권에서 안정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 노동자들을 '키보드 좌파'로 조직해내면서, 동시에 지역 주민들을 '아파트 민중'으로 결집해내야 한다. 노원병에서 마셔야 했던 쓴 고배가 4년 뒤의 승리의 잔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 우리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며, 생각하고 동시에 실천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