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23

[별별시선]손기정, 김연아, 빅토르 안

[별별시선]손기정, 김연아, 빅토르 안

노정태 | 자유기고가

아마추어 선수들을 모아놓고 그들에게 각자의 조국을 대표하여 경기하게 하는 올림픽은, 그 출발부터 국가의 명예를 걸고 싸우는 일종의 대리전이었다.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그랬고,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더욱 그랬다.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던 때부터 지금까지 말이다.

학창 시절 국사 교과서를 통해 질리도록 보고 듣고 배운 바로 그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보자. 나라를 빼앗겼기에 조국의 깃발이 아닌 정복자의 국기를 달고 뛰는 마라토너 손기정. 그가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낭보를 듣고도 끝내 기뻐하지 못하는 식민지 조선 사람들. 그 소식을 전하면서 손기정의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지워버린 동아일보 기자들. 그로 인한 탄압, 고취되는 민족의식, 기타 등등.

그런데 이번 소치올림픽에서는 퍽 다른 양상이 전개됐다. 태극기를 달고 빙판을 누비던 쇼트트랙 최강자 안현수 선수가, 본인의 말에 따르자면 “정말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기에, 러시아로 귀화해 그 나라의 국가대표가 됐다. 그는 부상에 시달렸고 소속팀이었던 성남시청이 해산되는 불운을 겪었다. 일각에서는 안현수가 한국빙상연맹 파벌 싸움의 희생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무튼 그는 자신이 평생을 바쳐온 운동을 계속하고자 새로운 조국의 품에 안겼고, 러시아인들에게 친숙한 가수 빅토르 최의 이름을 따 스스로를 ‘빅토르 안’이라고 부르게 됐다.

냉전이 끝나고 ‘평평해진’ 세계 속에서, 자신의 선수 생활을 보장하는 나라로 엘리트 체육인이 귀화하는 일은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빅토르 안의 경우처럼 주목받은 사례가 많지 않아서 그렇지, 한국계 체육인이 어느 외국의 국가대표가 되는 일은 그 이전에도 있었고 이후로도 발생할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특별했다. 나 자신을 포함해 TV나 인터넷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한국인들이, 어느새 대한민국 국가대표팀보다 오히려 러시아 국가대표인 빅토르 안을 응원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적어도 SNS를 통해 확인되는 여론은 그랬다.

한편 많은 이들에게 공공연하게 알려진 바, 김연아 선수는 한국빙상연맹에서 체계적이고 전폭적인 지원을 받기는커녕, 비인기종목의 설움을 홀로 짊어지고 있었다. 요컨대 대한민국이 김연아에게 해준 것은 김연아가 대한민국에 해준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이것은 적어도 김연아의 팬들 사이에서, 넓게는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종목 및 기타 스포츠 전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 이후의 세계에 국민국가의 바깥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나면, 모든 인간은 어떤 국가의 국민으로 등록되며, 그에 따르는 의무를 수행해야 하고 권리를 향유할 수 있다. 그래서 마라토너 손기정은 본인의 뜻과 달리 일본인으로서 경기를 치러야 했고, 한국인 안현수는 러시아인 빅토르 안이 되어 빙판 위를 누볐으며, 그의 라이벌이라는 아사다 마오 선수에 비교해볼 때 터무니없이 빈약한 지원을 받은 김연아는 그래도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손기정에서 빅토르 안까지. 그리고 ‘국적이 안티’라는 말을 종종 듣는 김연아까지. 1936년에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나라, 갓 독립할 당시만 해도 최빈국 중 하나였던 그 나라는, 현재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어 있다. 그러나 그 나라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는, 적어도 올림픽이라는 ‘국가주의의 격전지’를 놓고 볼 때, 사뭇 다르다. 나라 잃은 설움을 곱씹고 공분하던 시대는 끝난 지 오래다. 지금은 적지 않은 국민들이, 한국 국적을 포기한 선수를 응원하며, 오히려 그런 탁월한 이를 놓친 조국을 비웃는다. “너는 김연아가 아니다. 너는 한 명의 대한민국이다”라는 광고를 보며 마치 내 일처럼 분통을 터뜨린다.

개인의 행복과 성공보다 애국심과 헌신을 앞세울 수 있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한민국’을 재정의할 것인가? 2014년 2월24일 막을 내리는 소치올림픽이 던진 숙제가 바로 그것이다.

2014-02-14

『논객시대』 (서울: 반비, 2014)

2014년 2월 14일,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쓴 첫 책, 『논객시대』가 나왔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논객시대』(서울: 반비, 2014)
교보문고 YES24 알라딘

2014-02-11

[북리뷰]대한조선공사 민주노조의 기록들

[북리뷰]대한조선공사 민주노조의 기록들

2014 02/11ㅣ주간경향 1062호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
남화숙 지음·후마니타스·2만3000원

배는 인류와 대단히 친숙한, 아마도 가장 큰 움직이는 인공물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특히 어떤 집단이나 단체를 비유할 때 ‘누구누구호’라는 식의 화법이 종종 쓰이곤 한다. 히딩크가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히딩크호’가 되고, 감독이 홍명보로 바뀌면 ‘홍명보호’로 불리는 식이다. 그렇게 본다면, 1960년대를 살았던 모든 한국인은 ‘박정희호’에 원하건 원치 않건 탑승해야만 했다.

‘박정희호’는 근대적 선진 강국 건설이라는 확고한 목적지를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장 박정희가 가진 자원은 턱없이 부족했다. 국토의 7할이 산인 나라에서 결국 살 길은 공업을 육성하는 것뿐인데, 대체 무엇을 어떻게 만들고 팔아야 한단 말인가?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조선중공업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새 정부로 이관되었고, 1950년 1월, 법령에 따라 대한조선공사로 재조직”되었다. 당시 해방 한국에는 그 정도 대규모 사업을 추진할 만한 자본이 없었기에 대한조선공사는 정부가 주식의 80%를 보유한 국책회사로 출발하게 된 것이다.

이승만 정부 시절까지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내부 비리 등으로 도리어 비틀거릴 뿐이었던 대한조선공사는 4·19 이후 민주화의 열기를 타고 민주적 절차에 의해 노동조합 지부장을 선출하면서 오늘날의 우리에게 ‘잊혀진’ 역사를 써내려가게 된다.

1960년을 오직 ‘학생 혁명’이라고 기억하는 것은 어쩌면 1987년을 ‘민주화 투쟁’으로만 되새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오류일 것이다. 87년 6월의 직선제 쟁취 이후 한국의 노동자들은 이른바 ‘789 노동자 대투쟁’을 벌여 임금인상 및 노동조건 개선을 이루어냈다. 만약 789 노동자 대투쟁이 없었다면 한국 사회는 성장한 경제규모에 걸맞은 소비력을 확보할 수 없었을 것이다.

1960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산업 기반은 미약하기 짝이 없었고 나라 경제는 갓 일어나고 있었지만, 바로 그렇기에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정당한 몫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1960년 4~12월 사이만 해도 356개의 신규 노조가 5만9186명의 노동자를 조직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는 그 중에서도 특히 오늘날 한진중공업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대한조선공사의 1960년대에 주목한다. ‘유신’이라는 이름의 친위 쿠데타를 저지르고 명실상부한 독재자로 거듭나기 전까지 노동자들은 박정희에 대해 특별히 적대적인 감정을 품지 않았다.

새로 들어선 정부 또한 대한조선공사 노동조합에 대해 우호적이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중도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그러한 환경 속에서 ‘봉건적’, ‘인습적’인 사 측에 맞서 ‘근대적’이고 ‘민주적’인 주체로 거듭나고자 최선을 다했다.

대한조선공사 민주노조의 역사는 시대를 한 바퀴 돌아 한진중공업의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이어진다고, 저자 남화숙은 담담한 어조로 설명한다. 그 벅차오르는, 패배하지만 결국은 승리하게 될 역사를 복원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한조선공사 노동조합에서 성실하게 모아놓은 자료집 덕분이었다.

부당한 권력과 자본의 횡포에 맞서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아내고자 했던 노동자들이 남겨둔 손때 묻은 기록들. ‘박정희호’는 박정희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 배를 만들고 노를 젓고 새는 물을 퍼낸 수많은 이들을 이제 우리는 온전히 알아야 한다.

<노정태 번역가·자유기고가>

2014-01-26

[별별시선]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별별시선]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철학자 루소는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만약 누군가 ‘나는 나의 모든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고 너의 노예가 되겠다’고 계약한다면, 그 계약은 과연 유효한가? 계약을 쌍방이 서로에게 특정한 의무를 지고, 상대에게 그 의무의 이행을 요구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으로 본다면, 노예계약은 형용모순이다. 계약에 의해 노예가 되는 순간 그는 아무런 권리를, 가령 하루에 세 끼는 밥을 먹여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 따위조차, 가질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자유민이 노예계약을 맺으면, 그는 노예계약의 권리와 의무를 누릴 자격마저 잃어버리므로, 그것은 원천무효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여 루소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노예제도와 권리라는 이 두 말은 양립 불가능하다. 그것들은 서로 상반된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하든, 아니면 한 인간이 한 나라 인민 전체에게 하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언제나 터무니없는 일이다. ‘너와 계약을 하나 맺겠어. 그런데 모든 부담은 네가 떠안고, 이익이란 이익은 모두 내가 갖는 거야. 또 나는 내가 원하는 한에서만 그 계약을 지키겠어. 그러니 너도 네가 원하는 한은 그것을 지키도록 해.’ ”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난다. 또한 인간은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완전히 박탈할 수 없다. 설령 그가 왕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루소의 생각은 그랬다. 그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사회계약을 통해 공동체를 구성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신으로부터 내려온 권리에 의해, 오직 국왕만이 자유를 누리며 국민들을 통치할 권리를 갖는다는 기존의 정치철학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다. 왕은 무엇이든 내키는 대로 누리며, 국민들은 오직 의무만을 갖는 사회계약, 즉 전제군주에 대한 노예계약은 성립할 수조차 없다. 루소의 혁명적 발상이었다.

원래부터 온 인류에게 공개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한국인의 개인정보가 한 번 더 유출되었기로서니, 루소가 어쩌고 사회계약이 저쩌고 떠들어대는 것은 속된 말로 ‘오버’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대단히 규모가 큰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지만, 사실 사건 자체만을 놓고 보면 그렇다. 카드 회사들은 개인정보 관리 업체를 고용했고, 그 업체에서 일하던 직원이 개인용 USB에 수천만 명의 개인정보를 복사하여 자기 집에 들고 갔다. 동원된 방식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로-테크(low-tech)하긴 하지만, 어쨌건 본질적으로 해킹을 통한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커지자,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소비자도 정보제공단계부터 신중해야 한다. 모두 다 정보제공에 동의해줬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동의’를 클릭하거나 체크하지 않으면 금융 거래가 불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그렇게 제공된 개인정보를 제대로 간수하지 않은 금융기관이 아니라, 개인들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 그 형식이 얼마나 불공정하건 간에, 너는 ‘동의’했으니, 책임은 네가 지는 것이며 카드 회사들에는 그 정보를 잘 간수했어야 할 의무를 묻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한국의 지배 계층이 국민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이보다 잘 보여주는 사례가 또 있을까 싶다. 너는 한국에 태어났고, 한국인이며, 한국인으로서 온갖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하지만 국가는 책임을 지지 않고, 국민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으며, 국가에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건 국민에게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들고 있지만, 18세기의 철학자 루소가 말한 불공정한 노예계약을, 지금 이 순간에도 강요당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사건은 피해 규모와 무관하게, 본질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오늘날 빈번하게 발생하는 개인정보 해킹 사건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현오석의 ‘망언’ 역시, 지금 이 순간에도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정치인들의 ‘명언’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계약과, ‘그들’이 생각하는 사회계약이 본질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 사건은 너무도 투명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호히 외쳐야 할 것이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2014-01-20

[북리뷰]박정희 시대의 권력 이야기

[북리뷰]박정희 시대의 권력 이야기

2014 01/21ㅣ주간경향 1060호

<남산의 부장들>
김충식 지음·폴리티쿠스·3만2000원

2014년 새해 첫 책으로 <남산의 부장들>을 이야기하게 될 줄은 몰랐다. 2013년이 시작될 무렵까지만 해도 그랬다. 1983년에 태어나 철이 들 무렵 이미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된 나라에 살고 있었던 내게, <남산의 부장들>은 MBC 드라마 ‘제3공화국’과 마찬가지로, 그저 흥미 위주로 슬슬 넘겨보는 정치 비화 모음집에 지나지 않았다.

적어도 누구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제목이지만, 혹시 모를 사람들을 위해 간략하게 소개해 보자. <남산의 부장들>은 1961년 설립되어 1981년까지 유지된 대한민국 중앙정보부를 통해, 같은 시기의 한국 현대사를 서술하는 책이다.

중앙정보부를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박정희 시대를 이해할 수 없으며, 박정희 시대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오늘날의 역사에 대해서도 무지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1961년 5월 16일, 박정희와 그의 동료들은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로부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6월 10일 군부는 중앙정보부를 만들었다.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을 내놓은 후, 국가재건최고회의법과 함께 군부는 중앙정보부법을 공표하여 “미국의 CIA와 일본의 내각조사실을 절충한 정보수사기관”을 만들어낸 것이다. 국내외의 정보를 들쑤실 수 있고, 그 정보에 바탕하여 원하는 이를 구속수사할 수 있는, 희대의 권력기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 중앙정보부를 만들고 초대 부장을 역임한 사람이 김종필이다. 그는 농협중앙회에 보관되어 있던 한전의 주식을 강탈한 후 주식시장에 내다 파는 등의 수법으로 자금을 마련하고 공화당 창당작업에 나섰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화당을 통해 박정희가 대통령에 출마하였고 당선된 것이다.
중앙정보부와 박정희 정권의 역사는 이후로도 18년간 더 흘러가게 되며, <남산의 부장들>은 그 길고 복잡한 세계를 물경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전달한다.

<남산의 부장들>은 동아일보에 1990년부터 1992년까지 연재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87년 민주화 항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후, 김영삼과 김대중의 분열로 인해 노태우가 당선되어버린 바로 그 시점에, 저자 김충식은 중앙정보부와 박정희 정권에 대한 초대형 기획 연재를 진행한 것이다.

본문의 첫 문장은 “전두환 대위의 등장이 빠르다”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두환, 노태우 및 육사 11기들이 시도한 63년 쿠데타 음모가 등장한다. 물론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아무튼 ‘살아있는 권력’들의 행적을 직설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 개정증보판이 출간되었으며, 이 책의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인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민주화 이전의 대한민국을 살아온 사람들이 아닌, 나처럼 민주주의가 너무도 당연한 사람들을 위해 필자는 이 북리뷰를 쓰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은 물론 민주주의와 헌법의 원리를 위배한 도전이며 일탈이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신생 국가의 역사를 놓고 볼 때, 그런 시도가 없었던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국가정보원은 아직도 중앙정보부 시대의 권력을 휘두르고 싶어하는 듯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남산의 부장들>을 다시 펼쳐들고 우리가 겪어온 어두운 역사를 곱씹는 것은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닐 것이다.

<노정태 번역가·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