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2

[신동아] 조국·윤미향·최강욱 공통 QR코드 마오쩌둥 ‘모순론’

조국·윤미향·최강욱 공통 QR코드 마오쩌둥 ‘모순론’

帝国主义要的矛盾国家内部各阶级的一切矛盾要和服从的地位(마오쩌둥)
*제국주의가 주요 모순일 때 국가 내부 각 계급의 모든 모순은 부차적 복종적 지위로 추락한다

●반미주의자 딸의 미국 유학, 형사 피의자의 큰소리
●국가보안법보다 악랄한 민주당 ‘역사왜곡금지법’
●“주요 모순 결정적, 기타 모순 부차적”…졸작 ‘모순론’, 운동권 원리로
●‘토 달지 말고 따르라’는 권력투쟁 레토릭
●‘모순론’ 번안물 조성오 ‘철학에세이’는 스테디셀러
●불변의 주요 모순 “‘쟤들’이 더 심하지 않아?”
●‘친일파가 친미파 거쳐 지금도 기득권’이라는 역사소설

한때 순수했던 청년들이 나이를 먹고 권력을 잡으니 타락하고 말았다. 그들 스스로가 외치던 정의로운 도덕과 윤리를 내팽개친 채 자신들이 싸우던 상대와 다를 바 없는 기득권이 됐다. 현 정권이 들어선 후 너무도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비판이다.

가령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모두가 개천에서 벗어나 용이 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고, 가재·붕어·개구리로 살아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내와 함께 본인들의 자식만큼은 어떻게든 스펙을 쌓아주고 의학전문대학원에 부정 입학시켰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미국의 중재로 이루어진 2015년 위안부 협상을 뒤집어엎은 반미 성향의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기 딸을 미국에 유학 보내놓고 있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조 전 장관의 아들에게 허위로 인턴 증명서를 발급해 준 혐의로 형사 고발을 당한 피의자인데, 재판 중 당 대표로서 기자회견에 참석해야 한다며 퇴정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물론 판사는 요청을 받아주지 않았다.

민주당과 ‘열린 사회의 적’


그 정도는 약과다. 현재의 여권은 야당 시절 국가보안법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이라고 비판하며 폐지를 요구해 왔다. 하지만 제21대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되자 양향자 의원을 대표로 한 여당 의원 31명이 ‘역사왜곡금지법’을 발의했다.

그 내용을 보면 국가보안법보다 더 악랄하다. 일제 식민통치 주장에 동조하거나 그들을 찬양·고무한 경우 징역형을 때리겠다는 거다. “일제 식민통치 옹호단체”를 대통령령으로 정해 판단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 철학자 카를 포퍼가 말한 ‘열린 사회의 적’이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사람들을 옹호하는 이가 적지 않다는 데 있다.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60%를 넘나들고 40% 이하로 떨어진 일이 드물다. 여당 지지율 역시 야당과는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경제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두었던 구(舊)여권과 달리 현재의 집권 세력은 민주주의와 인권, 공정 사회 같은 가치를 자신들의 핵심 어젠다로 내걸고 있다.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그런 가치를 내팽개친다. 하지만 그들의 지지층은 여전히 굳건하다.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이중 잣대를 휘두르며 상대방을 겁박하는 여당과 청와대, 그리고 그 지지자들의 행태는 단순한 ‘내로남불’이 아니다. 그 내역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대학 시절 배웠거나 적어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공산주의 철학, 특히 마오쩌둥(毛澤東)의 ‘모순론’을 발견할 수 있다.

‘모순론’은 마오쩌둥이 1937년 8월 옌안 항일군사 정치대학에서 한 강연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국공합작을 통해 일본군을 물리친 후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과 마오쩌둥의 공산당은 다시 전쟁에 들어갔다. 적은 안팎으로 있었다. 소련에서 교육받고 온 다른 공산당원들과 노선 투쟁을 벌여야 했던 것이다.

“사물의 모순 법칙, 즉 대립물의 통일 법칙은 유물론적 변증법에서 가장 근본적인 법칙이다.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변증법의 본래 의미는 대상의 본질 자체에 있는 모순을 연구하는 것이다.’”

‘모순론’의 첫 문장이다. 세상 모든 것에는 보편적으로 모순이 내재하고, 그 모순 각각은 개별적인 상황과 맥락에 따라 특수성을 지닌다. 하나의 사물이나 과정에 모순이 하나만 있으라는 법은 없다. 여러 모순이 있을 테고, 그중 어떤 것은 다른 것보다 중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유명한 ‘주요 모순’과 ‘기타 모순’의 구분법이 여기서 등장한다. 마오쩌둥의 말을 직접 읽어보자.

“따라서 어떤 과정이든지 그 속에 여러 모순이 존재한다면 그중에 반드시 주요 모순이 있어 지도적·결정적 작용을 하며, 기타 모순은 부차적이고 종속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과정이든지 모순이 두 개 이상 존재하는 복잡한 과정을 연구할 때에는 주요 모순을 찾아내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주요 모순을 파악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얼핏 생각해 보면 딱히 반박할 구석이 없는 지당한 말처럼 들린다. 가령 자동차가 여러 군데 고장 났다고 가정해 보자. 와이퍼가 작동하지 않고 블랙박스에 전원이 들어오지 않으며 엔진이 툴툴거린다. 엔진이 고장 나면 자동차가 멈춰버릴 테니, 카센터에 가면 엔진을 가장 유심히 살필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면 와이퍼 고장이 주요 모순으로 등극할 수도 있고, 접촉사고라도 난다면 블랙박스가 안 켜진 것이 가장 뼈아픈 일이 될지도 모른다.

운동권 원리와 독재자 논리 사이
마오쩌둥이 이런 논리를 개발한 이유는 간단하다. 국민당과 내전을 벌이다 일본과 싸우기 위해 국공합작을 펼쳤고, 일본군을 쫓아내고 난 후 다시 국민당과 싸우는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한발 더 나아가, 공산당이 점령한 지역 내에서는 계급 해방을 앞세우지 말고 당면한 주요 모순인 국민당과의 전쟁에 집중하라고, 내부 분파들을 단속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모든 모순을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 되며, “주요 모순과 부차적인 모순 양자를 구별하고, 주요 모순을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마오쩌둥의 모순론은 이후 거의 모든 운동권 담론의 바탕에 깔린 원리가 됐다. 1980년대를 뜨겁게 달구었던 ‘사회구성체 논쟁’을 떠올려보자. 한쪽은 대한민국의 성격을 ‘식민지 반(半)봉건사회’로 보았고 다른 쪽은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로 파악했다. 전자는 미군 철수 및 통일운동을 주요 모순으로 보았고, 후자는 신식민지 주변부 파시즘의 극복을 주요 모순으로 설정한 셈이다. 아주 거칠게 말하면 전자는 NL(민족해방), 후자는 PD(민중민주)의 세계관이다.

모순론은 운동권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기타 모순은 잠시 미뤄두고 주요 모순에 집중해야 한다는 논리는 내부의 이견을 묵살하려는 독재자에게 악용될 여지를 늘 안고 있다. 국내외로 명망 높은 독립운동가였던 이승만은 반일주의를 무기 삼아 야당과 시민사회를 탄압했다. 박정희와 그 뒤를 이은 군사정권은 반공주의를 대한민국의 주요 모순으로 설정하고는 인권, 민주주의, 법치주의, 경제적 평등 따위는 기타 모순으로 취급하거나 그런 요구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중국 본토의 사정은 상상을 초월했다. 마오쩌둥은 국민당 정권을 대만으로 쫓아내더니 ‘내부의 모순’을 찾겠다며 눈을 번뜩거렸다. 학자마다 추산이 다르지만 공산당이 집권한 1949년 이후 중국 대륙에서는 7000만~8000만여 명이 정치투쟁으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대한민국과 북한의 인구를 합한 숫자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모순론이 내용 없는 형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주요 모순을 파악하고 그에 집중하라는 말은 ‘중요한 문제를 중요하게 취급하라’는 소리와 사실 다를 바 없다. 평범한 자기계발서, 가령 스티븐 코비의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 같은 책에서도 볼 수 있는 이야기다.

차이가 있다면 마오주의(Maoism)는 모순의 해결 방법 중 하나로 폭력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마오쩌둥은 “적대는 대립을 해결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라고 돌려서 말하고 있다. 폭력이 갈등 해결 방법 중에서 배제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마오쩌둥의 어록을 뒷주머니에 꽂은 홍위병들이 죽창을 들고 설친 건 우연이 아니다.

철학 텍스트로서 ‘모순론’은 졸작이다. 아무리 좋게 말해도 미완성작이다. ‘무엇이 주요 모순이고 무엇이 기타 모순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판단의 원리를 전혀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모순은 서로 연결돼 있다”는 둥, 사물을 구체적으로 바라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둥, 중언부언이 이어질 뿐이다.

그 허술함은 의도된 것이다. 무엇이 주요 모순인지 미리 정해서 글로 써놓으면 마오쩌둥 본인의 권위가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주요 모순을 결정하는 것, 일관성 없이 뒤바꾸는 것, 기타 모순에 집착하는 분파주의자를 지목해 숙청하는 것, 그것이 마오쩌둥이 휘두른 권력의 본질이었다. 결국 ‘모순론’이라는 텍스트는 ‘내가 제시하는 모순이 주요 모순이고, 네가 주장하는 의제는 기타 모순이니, 토 달지 말고 지도부를 따르라’는 뜻이다. 영화 ‘곡성’의 유명한 대사처럼, “뭣이 중헌디!”를 외치며 상대의 입을 다물게 만드는 레토릭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다.

“아, 알았어, 알았다고, 근데 쟤들은?”


문제는 이 내용 없는 형식이 198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 다양한 방식으로 유통되면서, 이제는 대학가를 넘어 일반 교양 차원에서 비판 없이 소비되고 있다는 데 있다. 1983년 초판 출간 이후 지금껏 꾸준히 팔리고 있는 조성오의 책 ‘철학 에세이’가 대표적이다. 리영희가 쓴 ‘전환시대의 논리’, 송건호 등이 지은 ‘해방전후사의 인식’,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영화 ‘변호인’을 통해 한층 더 유명해진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등과 더불어 386세대의 정신세계를 규정지은 대표적인 저작물로 꼽히는 이 책은, 마오쩌둥주의를 구어체로 풀어쓴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셋째 마당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모순론’의 번안물에 가깝다. 주요모순이라는 개념이 소개되고, 중국혁명과 만주사변, 국공내전 등이 사례로 제시되기까지 한다. 그 결과 도출되는 결론은 앞서 인용한 마오쩌둥의 말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

“이처럼 우리는 주요 모순을 생각함으로써 비로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심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모든 모순을 일시에 전부 해결하려 한다면 우리의 노력은 분산되어 문제의 해결이 극히 어려워질 것입니다. 지금 현재의 상황에서 어떤 문제를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애초 익명으로 출간됐던 ‘철학 에세이’는 1993년 저자 조성오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다시 나왔다. 동구권의 몰락과 북한의 경제적 붕괴로 인해 기존의 운동권 사상은 힘을 잃는 듯했고 사회구성체(사구체)와 혁명을 논하던 왕년의 이론가들은 노마드(nomade·유목민)와 탈주를 외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로 탈바꿈했다. 그러한 변화 속에서 ‘철학 에세이’는 내용이 거의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새롭게 열린 논술 사교육 시장의 주요 입문 서적으로 소화됐고, 오늘날까지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 담긴 내용이 마오쩌둥의 모순론이며, 모순론은 철학적으로 완성도가 낮은 권력투쟁의 레토릭에 더욱 가깝다는 사실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물론 나는 자유주의를 내 삶의 신조 중 하나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에 ‘철학 에세이’의 판매와 유통 등을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특정한 성향의 출판물을 비판 없이 수용해 왔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며, 그 내용에 대해서도 열린 자세로 토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86세대, 혹은 그보다 더 젊은 고학력층에서 흔히 관찰되는, 여당과 청와대에 대한 ‘묻지마 지지’의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결국은 ‘모순론’의 사고방식과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직 감성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렬 지지층이 아닌, 지적이고 사회적 지위를 갖추고 있는 교양인이면서도 선거 때마다 현 여권에 표를 던지는 사람과 정치 이야기를 해본 적이 있는가. 아마 상대방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걸 경험했을 것이다. “그래도 쟤들 찍을 수는 없잖아.” 여기서 ‘쟤들’이란 당연히 현재의 미래통합당, 그 이전의 자유한국당, 과거의 새누리당, 그보다 앞서 존재했던 한나라당 등이다.

현 정권의 핵심 지지층에게 저 계보로 이어지는 ‘쟤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하고 가능하다면 존재 자체를 말살해야 마땅한 절대악으로 간주된다. ‘쟤들’을 이기는 것이 주요 모순인 셈이다. 따라서 다른 모든 요소는 기타 모순으로 격하된다. 정경심 교수가 표창장을 위조했건 말건, 청와대가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했건 말건, 김경수 경남지사가 드루킹과 댓글 조작을 했건 말건, 윤미향 의원이 위안부 할머니를 앞세워 자기 통장으로 성금을 모아놓고 어디에 썼는지 오리무중이건 아니건, 다 눈감아버린다. 아무리 입 아프게 떠들어봐야 돌아오는 건 이런 반응뿐이다. “아, 알았어, 알았다고, 근데 쟤들은 더 심하지 않아?”

‘쟤들’의 어떤 부분이 문제냐고 물어보면, 광주에서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군사독재 세력이기에 용납할 수 없다는 답이 가장 흔히 등장한다. 이미 김영삼 정권에서 전두환과 노태우를 법정에 세웠고, 그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김대중이 두 사람을 사면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판단을 바꾸는 데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친일파가 미군정 시기를 거치며 친미주의자로 탈바꿈했고, 그 친미주의자들이 한국 사회의 기득권층을 형성했으며, 오늘날까지 힘을 잃지 않았다는 일종의 역사소설을 주요 모순의 주춧돌로 삼고 있기에, ‘쟤들’은 뭘 해도 나쁘고, 우리 편은 뭘 해도 ‘쟤들’보다는 낫다. 선악 이분법에 근거한 사고방식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는 셈이다.

한마디로 말이 안 통하는 상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철학적 차원에서 보자면 두 가지 해법이 있다. 첫째, 주요 모순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질 들뢰즈로 대표되는 일군의 현대 철학자들이 구좌파에 가까운 철학자들과 대립하는 과정에서 택한 경로이기도 하다.

돈이 썩은 나라는 다 썩게 돼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앞서 말했듯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갈 곳을 잃은 왕년의 운동권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장식 삼아 둘러대는 일이 많았다. 애초에 서양 현대철학의 복잡한 논쟁으로 들어가는 것부터가 어려운 일인 만큼 노력에 비해 소득이 크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을 테다.

더 효과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우리 사회의 주요 모순을 새롭게 설정하는 것이다. 윤미향과 정의연의 비리 혐의가 터져 나온 이후의 상황을 복기해 보자. 한국 운동권의 집단주의와 민족주의에 그토록 비판적이던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가 팔을 걷고 나섰다. 윤미향과 정의연을 공격하는 것은 전쟁을 부추기는 한미일 동맹을 이롭게 하는 것이니, 주요 모순인 반미주의를 위해 횡령 같은 기타 모순은 잠시 접어둬야 한다는 소리다. 저런 말을 하는 사람, 저런 소리에 동조하는 사람들에게, 윤미향의 ‘내로남불’을 아무리 지적해 봐야 소용 있을 리가 없다.

여론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가치를 담보하는 의제를 선점하고 지켜내야 한다. 이 경우는, 결국 돈 문제다. 2020년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땀 흘려 번 한 푼의 가치를 안다. 등산 소모임을 해도 회비 걷고 쓴 내역을 정리해서 카카오톡으로 공유하는 게 일상화된 나라다. 돈에 대해 대놓고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하던 분위기도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시민들은 돈 문제가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논의돼 자신이 낸 세금과 기부금 등이 좋은 곳에 소중하게 쓰이는 나라에 살고 싶어 한다.

개인적인 삶에서는 그토록 탐욕스럽게 재산을 긁어모으면서도 공적인 발언의 장에서는 청빈과 자본주의 극복 따위를 떠들어대는 저들이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국민은 공산주의도 전민(全民) 항쟁도 원치 않는다. 도덕을 사유화한 특권 계층만 잘사는 위선과 모순의 나라가 아닌, 지금보다 좀 더 공정하고 여유로운 자본주의 국가를 원할 뿐이다.

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고 나라는 백성을 하늘로 삼는다. 오늘날의 백성에게는 돈이 곧 밥이고, 밥이 곧 돈이다. 돈이 썩은 나라는 다 썩게 돼 있다. 건강하고 투명한 회계에 바탕을 둔 좋은 자본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싸움, 그것이 우리 사회의 주요 모순이 돼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원문: 신동아 2020년 7월호(https://shindonga.donga.com/3/all/13/2088738/1)

2020-06-09

마이클 델, 이재용, 오너의 책임 경영

마이클 델이라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이 잘 모르면서 회사에서 지급하는 컴퓨터나 모니터로 많이 쓰는 델 컴퓨터의 오너다.

마이클 델은 컴퓨터를 값싸게 조립하여 판매하는 생산 라인을 확보했지만, 오프라인 판로를 뚫지 못했다. 그는 거기서 좌절하는 대신, 온라인으로 컴퓨터 견적을 맞추고 주문하여 물건을 받는, 20세기 말로서는 가히 획기적이었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서 대박을 터뜨리고 델 컴퓨터를 상장한 후 소위 '엑싯'을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델 컴퓨터는 기나긴 침체와 방황을 겪었다. 컴퓨터 산업에 대해 비전도 없고 꿈도 없고 그냥 숫자로 나오는 실적만 예쁘게 해서 자기들 수당 챙기는 것에 혈안이 된, 소위 '경영충'들의 놀이터가 되고 만 것이다.

다행히도 마이클 델은 투자 수완이 좋은 사람이었다. '엑싯'으로 번 돈을 허공에 날리지 않고 이리저리 굴려서 덩치를 더 키웠다. 그렇게 만든 시드 머니로 그는 희대의 결정을 했다. 자신이 상장했던 회사 주식을 다시 사들인 후 비상장기업으로 만들어 의사결정권도 독점한 것이다. 말하자면, '오너의 귀환'인 셈이다.

그 후 나온 첫 작품이 Dell XPS 13이었다. 랩탑에 관심이 좀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텐데, (충격과 공포의 노란 봉투) 맥북 에어 이후 애플과 비벼볼만한 노트북으로 윈도우 계열에서 나온 첫 제품이라고 흔히들 평가한다. 극단적으로 베젤 크기를 줄여 거의 11인치 노트북에 가까운 본체 크기와 무게를 구현했다. Dell XPS 15는 15인치 화면을 13인치 크기에 우겨넣었다.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렇게 한번 되찾은 프론티어의 위상을, 델 컴퓨터는 이제 내려놓지 않고 있다. 올해는 17인치 화면을 15인치의 본체 크기에 끼워넣은 Dell XPS 17도 나왔다. 오너가 만들고, 상장했다가 '경영충'의 놀이터가 되어버렸던 과거의 혁신 기업을, 오너가 되찾은 후 혁신의 DNA를 재주입한 멋진 사례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오너 경영'이 꼭 나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건 1) 어떤 '오너십'이냐 2) 그 '오너'에게 정말 비전이 있느냐 3) 그 '오너'의 '오너십'에 경제적, 법적으로 투명하고 확실한 근거가 있느냐이다.

많은 사람들이 함부로 말하는 것과 달리, 삼성의 미래에 대해 이재용만큼 근심하고 진지한 결정을 내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국민연금이 대주주가 된 후, 낙하산 타고 내려와 한탕 하고 사라질 정권의 수족들보다는, 소위 '경영권'이라는 것을 이재용이 행사하는 편이 삼성의 미래에, 더 나아가 한국의 경제 전체의 미래에 바람직할 가능성이 크다. (포스코라는 반례를 보면 너무도 분명하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재용이 편법 상속을 위해 동원한 다양한 '테크닉'에 대해 공정한 법적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들이 반대하는 것은 '오너 책임 경영' 그 자체가 아니다. 소위 '오너'라는 사람들이 주주의 이익을 실현시키지도 않고, 경영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기업의 의사결정과 이익만을 독점하는 잘못된 구조가 문제다.

삼성전자의 덩치가 너무 커져서 과연 '합법적'인 방법으로 '경영권' 방어가 될 수 있을지 미지수이지만,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회사를 이재용 부회장이 올바른 방식으로 정당하게 키워나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법은 만인에게 공정해야 하고, 그것이 바로 시장경제의 초석이니 말이다.

2020-06-06

[노정태의 시사철] 폐기 처분된 '행복한 왕자'처럼… 소녀상이 울고 있다

[아무튼, 주말]

폐기 처분된 '행복한 왕자'처럼… 소녀상이 울고 있다
마사 누스바움과 '대상화'


한 도시에 어떤 슬픔도 모른 채 살다가 죽은 왕자가 있었다. 평생 '행복한 왕자'라고 불렸던 그는 아름다웠던 모습 그대로 시내 광장 한복판에 우뚝 선 동상이 되었다. 겨울이 왔다.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갈 때를 놓친 제비 한 마리가 추위를 피하다가 왕자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시의 가난과 비참 때문이었다. 제비는 왕자의 명을 받아 처음에는 칼자루의 루비를, 나중에는 사파이어로 만든 왕자의 눈을, 마지막에는 왕자의 몸을 덮고 있던 금박을 하나씩 벗겨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렇게 흉한 모습이 되자 도시의 시장과 권위 있는 관계자들은 동상을 철거해버리고 만다. 오스카 와일드가 쓴 '행복한 왕자'의 내용이다.

일러스트 = 안병현
대부분은 이 이야기를 동화책에서 읽었을 것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어야 한다는 일종의 교훈담으로 말이다. "틀렸다"고 할 수야 없겠지만 오스카 와일드의 의도와는 다른 해석이다. 그는 "예술은 오직 예술적 가치만을 추구해야 한다"는 유미주의자였다. '행복한 왕자' 또한 같은 맥락 위에 있다. 그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상화라는 개념에 대해 알아보아야 한다.

대상화는 현대 철학, 특히 페미니즘 및 탈식민주의 이론에서 아주 빈번하게 사용되는 개념이다. 그 기원을 따지고 올라가면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비롯한 페미니즘의 여러 고전을 만나게 되지만, 여기서는 미국의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논의에 기대보도록 하자. 그가 학술지 '철학과 사회 문제(Philosophy & Public Affairs)' 1995년 가을 호에 기고한 논문 "대상화(Objectification)"가 오늘날까지도 교과서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누스바움은 고전 소설과 통속물, 잡지를 넘나들며 텍스트 여섯 개를 발췌한다. DH 로런스의 '무지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제임스 핸킨슨이라는 철학자가 로런스 세인트 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쓴 하드코어 에로 소설인 '이사벨과 베로니크', '플레이보이' 1995년 4월 호, 영국 작가 앨런 홀링허스트가 남자 동성애자들의 성생활을 다룬 '수영장 도서관', 헨리 제임스의 '황금 그릇'이 그것이다. 그 각각을 검토하며 대상화의 특징을 도구성, 자율성의 부정, 수동성, 대체 가능성, 침해 가능성, 소유권, 주체성의 부정이라는 일곱 가지로 분류했다.

말은 어렵지만 요지는 간명하다. 대상화란 인간 존재가 하나의 대상이자 사물로 취급되는 현상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고 어떤 수단을 위한 도구로, 혹은 사고팔 수 있는 재화로 취급하며, 때로는 약탈하고 어떨 때는 예찬하기도 하는 행위를 대상화라 부른다. 특히 여성을 상대로 한 대상화가 주로 문제가 된다. 여성을 성욕 해소의 도구로 삼고, 인신매매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숭배'하는 모습을 떠올려보면 어렵잖게 파악할 수 있다.

저 일곱 분류가 수학 공식처럼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맥락에 따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가령 DH 로런스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서로를 쾌락의 도구로 이용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면 양자가 합의하에 계급적 위계를 뛰어넘는 성적 대상화이기에 그리 나쁘지 않을 수 있다고 누스바움은 판단한다. 반면 '플레이보이'가 여성을 다루는 방식은 해로운 대상화에 속한다. 이웃집 여자, 여비서, 학교 선생님 등 어떤 범주를 통째로 성적 대상화함으로써 여성을 인간이 아닌 성적 대상으로 비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왕자'로 돌아가 보자. 왕자를 행복의 아이콘으로 삼아 성 안에 가둬놓고 있었던 도시는, 왕자를 섬기면서 동시에 대상화하고 있었다. 죽은 후에도 동상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우는 아이에게 "저 행복한 왕자처럼 웃으라"고 훈계한다. 도덕적 교훈 전달의 도구로 삼았던 것이다. 도시의 고위 관료들은 동상이 보기 좋고 예쁘니 쓸모가 없어도 괜찮다며 자신들의 취향을 뽐내지만, 정작 왕자가 흉측해지자 쓸모가 없어졌다며 폐기 처분해버린다. "아름답고 보기 좋은 장식품"으로 대상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윤미향과 정의연이 주도하여 전국에 세워진 소녀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소녀상은 일제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착취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일차적으로는 대상화에 맞서는 예술인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소녀상은 각자의 삶과 목적과 꿈을 지니고 있었던, 정의연에 동의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던 그 모든 위안부 피해자를, '한복 입은 소녀'라는 단일한 이미지로 치환했다.

앞서 누스바움이 제시한 대상화의 일곱 유형 중 특히 '소유권'이 의미심장하다. 대상화하는 자는 대상화된 자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 소녀상 제작자가 소녀상에 대해 저작권을 주장하며 다른 조각가의 모방을 금하는 현실은 무엇을 뜻할까. 정의연이 일제에 의한 강압적 성적 대상화를 고발한다는 대의명분을 내걸고 위안부 피해자들을 반일 운동의 도구로서 대상화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젊은 시절 일제에 의해 성적으로 대상화되었고, 훗날에는 같은 민족에 의해 이념적으로 대상화되고 있었다.

대상화에 저항하는 자는 폭력과 처벌을 당하게 마련이다. 관부재판을 통해 일본에서 위안부의 존재와 피해 사실을 법적으로 확인받은 고 심미자 할머니의 이름이 남산 '기억의 터'에서 배제된 것은 우연이라 보기 어렵다. 정의연이 자신들의 뜻대로 대상화되지 않는 피해자에게 '기록말살형'을 내린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들은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할머니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다. 상당수의 기성 여성주의자들은 운동과 조직을 지키겠다며 피해자의 절규를 외면한다. 여성주의의 이름으로 여성을 대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영혼의 위안을 위해 다시 '행복한 왕자'를 펼쳐든다. 와일드는 주장한다. 예술은 도덕적이거나 아름답거나 유용한 무언가가 아니다. 그런 대상화를 거부함으로써 예술은 참다운 가치를 얻는다. 쓰레기가 되어 소각로에 처박혔지만 왕자의 심장은 불 속에서도 녹지 않았다. 신은 죽은 제비와 그 심장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들을 천국으로 불러들인다. 대상화를 거부하며 존엄해지는 것은 예술만이 아닐 것이다. 보석과 금박을 나누어주던 행복한 왕자처럼, 소녀상에 갇히기를 거부한 피해자가 스스로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5/2020060502224.html

2020-05-31

고작 회계 문제? 돈이 곧 윤리다

정의연 건에서 가장 중요한 건 회계 문제다. 회계 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나머지, 가령 뭐 운동의 대의가 어쩌고 활동가의 선의가 저쩌고 따위는 모두 부차적이다. 장부에 돈 거래를 제대로 써놓고 투명하게 거래하는 것은 운동권 뿐 아니라 모든 사회가 공유하는 가장 기본적인 규칙과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평범한 시민들은 돈을 벌고 있다. 혹은 내일의 돈벌이를 위해 쉬고 있다. 돈을 번다는 건 그렇게 지엄한 일이다. 돈을 벌어서 그 기록을 투명하게 남기고, 내야 할 세금을 내고, 사장이라면 직원 월급 밀리지 않고, 회삿돈을 잘 관리하는 것 등은 모두 우리 삶의 기본이면서 가장 숭고한 영역인 것이다.

생각해보자. 민주주의를 왜 하는가? 민주화운동을 왜 했는가? 성실하게 일해서 먹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안온하게 잘 살기 위해서이다. 남을 속이지 않고 권력에게 휘둘리지도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런 세상이라면 당연히 모든 회계는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 반대로, 그 어떤 아름다운 대의를 갖다 댄들, 회계를 속이는 자들이 권력을 쥐고 있는 한, 그 사회는 투명할 수도 건강할 수도 민주적일 수도 없다.

'그깟 회계 문제'를 운운하는 자들아, 입 닥쳐라. 너희들은 지금 '그깟 회계'로 계산되는 '그깟 푼돈' 벌겠다고 새벽에 눈꼽 떼고 일어나 직장으로 일터로 택배 상하차 물류센터로 향하는 그 모든 평범한 생활인들을 모욕하고 있다. 너희들의 운동이 대체 뭐가 그렇게 고상하고 굉장하기에 이 모든 사람들이 목숨 걸고 싸우는 돈 문제를 이토록 얕잡아 본단 말이냐. 그토록 돈 문제를 우습게 보면서 어쩌면 네놈들 뒷주머니만은 알뜰하게 채워넣고 있단 말이냐.

돈 문제다. 이건 돈 문제고, 바로 그렇기에 가장 투명하고 엄정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반미주의니 반일주의니 거대한 헛소리 다 집어치워라. 돈이 깨끗하지 못한 나라가 어떻게 제국주의로부터 '독립'할 수 있단 말이냐. 이 숭고한 회계 문제 앞에서, 피해자와 활동가의 윤리가 어쩌고 저쩌고 지껄이는 배부른 운동권 족속들, 그 역겨운 아가리들을 다 닥치란 말이다.

2020-05-28

[신동아] ‘보수 박정희’ 아닌 ‘진보 박정희’ 되찾아라!

* <신동아> 2020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신동아 홈페이지네이버 뉴스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보수 박정희’ 아닌 ‘진보 박정희’ 되찾아라!

[사바나] 30대 논객이 미래통합당에 告함

● 5·16에는 ‘밥’도 있었지만 ‘시(詩)’도 있었다
● 1960년대, 각자도생 아닌 ‘모든 사람 위한 개혁’의 서사
● 이승만 시대와 다른 합리적·근대적 삶의 꿈
● ‘누구나 재벌’, 그 실낱같지만 불가능하지 않은 기회
● ‘우리도 함께 잘살아 보세’에서 ‘우리가 남이가’로 전락
● 양주 마시던 박정희에 가까워진 오늘의 보수 정치

‘사바나’는 ‘사회를 바꾸는 나, 청년’의 약칭인 동아일보 출판국의 뉴스랩(News-Lab)으로, 청년의 삶을 주어(主語)로 삼은 이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입니다. <편집자 주>



노동운동가 주대환은 “나는 4·19의 시(詩)만 읽은 게 아니라 5·16의 밥도 먹고 자랐다”고 즐겨 말한다. 이승만의 농지개혁과 박정희의 산업화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이런 현실 인식에 터를 잡고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를 펴낸 후 그는 진보진영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주대환은 따돌림과 배척을 무릅쓰고 한국 현대사의 어떤 진실을 말했다.

하지만 저 표현은 불완전하다. 주대환의 잘못은 아니다. 5·16과 박정희에 대한, 혹은 박정희가 한반도의 역사에 불러온 변화에 대한 그릇된 통념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을 뿐이다. 4·19에는 시가 있었고, 밥은 없었다. 하지만 5·16에는 밥만 있었던 게 아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한 가지 지적해 두자. 아직 한국 사회는 위선적이다. ‘시’와 ‘밥’을 대조해 논하면, 시가 더 고결하고 밥은 세속적이며 천박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그렇지 않다. 많은 경우 시보다는 밥이 더 중요하다. 시가 밥보다 더 도덕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밥을 먹기 위해 모든 시를 억압해도 되는 것 또한 아니다.

5·16에는 밥도 있었지만 시도 있었다. 군사정변, 권력을 잡고 강화하기 위해 벌인 헌정 질서 문란 행위, 민주화운동에 대한 탄압 등이 정당했다는 뜻은 아니다. 5·16은 가치중립적인 의미에서 정신사적 사건이기도 했다는 말이다. 그 의미를 새기고, 배울 건 배우되 반성할 건 반성해야 보수진영, 더 나아가 진보 그리고 대한민국에 미래가 있다.

5·16의 잘살아 보세, ‘혼자 말고 함께’


1962년 어느 날, 음악평론가 이상만이 방송작가 한운사를 찾아왔다. 5·16 1주년 기념행사가 열리는데 많은 사람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랫말을 하나 지어달라는 것이었다. 이상만을 통해 작사가를 물색한 이는 김종필 당시 공화당 총재. 훗날 자서전에서 한운사는 “지금 국민은 당신들을 지켜보고 있다. 한번 외쳐볼라나.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고.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가난의 보따리를 팽개치자고. ‘잘살아 보세’라는 제목이 떠올랐다”고 술회했다. 그렇게 한운사는 김희조 당시 경희대 음대 교수가 만든 가락에 가사를, 즉 시를 붙였다.

‘잘살아 보세 / 잘살아 보세 / 우리도 한번 / 잘살아 보세.’ 설령 그 시절을 살지 않았더라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안다. 5·16 1주년 기념행사에서 초연됐으니 그야말로 ‘5·16의 시’다. 과연 우리는 이 노랫말을(시를) 제대로 알고 있을까.

‘잘살아 보세.’ 말 그대로, 잘살아 보자는 이야기다. 저 대목만 놓고 보자면 그리 특별할 게 없다. 하지만 박정희 시대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마음을 열면 감동을 준다. 진보적 관점에서 한국의 대중문화를 살피는 대중문화평론가 이영미는 ‘동백아가씨는 어디로 갔을까: 대중문화로 보는 박정희 시대’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잘살아 보세’의 핵심 구절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 하는 대목은 묘하게 가슴을 울린다. 이 구절에서 징글징글하게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이를 벗어나고 싶은 절실함이 함께 확인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저 가사의 마법은 ‘잘살아 보세’에 있지 않다. ‘우리도 한번’이 핵심이다. ‘우리’가 함께 잘살아 보자는 말은, 그냥 ‘내가 잘살면 좋겠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 있다. 잘 먹고 잘살고 싶은 욕망이라면 늘 있어왔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대 초, 인기 절정의 배우가 등장했던 신용카드 광고 문구를 떠올려보자. “여러분, 부자 되세요!”

하지만 ‘부자 되세요’는 ‘잘살아 보세’만큼의 감동을 주지 못한다. ‘우리도 한번’이 없기 때문이다. 5·16의 노랫말에는 ‘우리’가 있다. 이승만 정권의 부자들이 그랬듯, 대대로 물려받은 전답이나 미군정에서 불하받은 적산가옥이나 미군 원조를 독식하는 식으로, 혼자만 잘살자는 게 아니었다. 성실한 노력과 노동을 통해 함께 잘살자는 목소리였다. 새 시대를 각자도생이 아닌 우리의 힘으로 일궈보자는 긍정적이고 역동적인 에너지가 분출하고 있었다.

박정희는 보수인가 아니면 진보인가?


그러한 경향성은 4·19와 5·16을 전후해 등장한 대중문화 작품 속에서 고루 발견된다. 이영미에 따르면, 당시 인기를 끌던 TV 드라마이자 영화로도 제작된 ‘신입사원 미스터리’와 ‘억세게 재수 좋은 사나이’는 공히 “근대적 기술의 힘을 지닌 개혁적이고 실천적이며 성실한 청년이 낡고 비윤리적인 기득권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긴다는 대립 구도”를 지녔다.

신상옥 감독의 1963년 영화 ‘쌀’도 마찬가지다. 물이 부족해서 쌀농사를 짓지 못해 배고픈 마을이 있다. 지주이자 정치인인 송 의원은 젊고 실용적인 차용이 마을 사람들을 이끌어 저수지 공사를 하는 것을 방해한다. 결국 ‘합리적’으로 말이 통하는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차용의 뜻은 이루어진다.

이에 대한 이영미의 평가가 흥미롭다. “어느 면으로 보아도 이 작품은 정권 홍보의 의도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너무도 명료한 영화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노골적인 정권 홍보 영화지만 나름의 감동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 중학생 시절, 한국 고전 명작 영화를 TV에서 방영할 때 ‘쌀’을 처음 본 필자 또한 같은 감동을 느꼈다. 자연환경의 제약을 넘어, 고루한 인습과 기득권의 틀을 깨뜨리고, 모든 사람을 위한 개혁을 달성해 내는 서사 구조에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의 대중은 바로 그런 것을 원했다. 주대환뿐 아니라 필자 본인을 포함한 지식인들은 그 무렵의 시대정신을 애써 모른 척해왔다. 대신 현실의 부조리함을 알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스스로의 한계에 진저리를 내고, 그러면서 술이나 마시고 신세 한탄을 하고, 푸념하고, ‘광장’의 주인공처럼 중립국을 외치다 죽거나 김수영 시의 한 구절처럼 “작은 것에만 분노”하는 자아상을 탐닉해 왔다. ‘4·19의 시’란 그런 것이었다.

정작 그 시대를 살았던 대다수 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전근대적인 잔재를 일소하고 근대적인 합리성을 장착해 가난을 극복하고 잘살아 보자는 에너지가 사회 전반에 넘치고 있었다. 박정희와 육사 8기로 대변되는 3공 세력은 그와 같은 대중적 분위기를 자신들의 것으로 삼았고, 놀라운 경제 발전의 첫 시동을 걸었다.

여기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5·16은 한반도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오늘의 시발점이 됐다. 그 이면에는 밥뿐만 아니라 시도 있다. 어쩌면 밥 그 자체보다, 합리적이고 계획적이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실용적이고 성실한 인물상을 그려낸 시의 출현이 더 중요한 사건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적어도 1960년대에 한정해서 이야기해 볼 때, 박정희는 보수인가 아니면 진보인가?

박정희 시대는 박정희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도록 만든 에너지가 있었고, 박정희가 대통령으로서 만들어낸 결과가 있었다. 양자를 완벽히 나누기란 쉽지 않고 사실상 불가능할 테지만, 구분을 포기해야 할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그 구분은 유의미하며, 꼭 필요하다. 한국 보수 진영이 몰락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어서다.

누구라도 재벌이 될 수 있는


이승만 시대, 1950년대는 ‘사바사바’하지 않으면 취직할 수 없고, 취직해도 ‘빽’이 없으면 버틸 수 없는, 비합리와 전근대의 시대였다. 당대인들은 그렇게 느꼈다. 그 시절을 배경에 둔 수많은 문학, 영화, 드라마 등에서 확인되는 바가 그러하다. 박정희는 억눌린 젊은이들에게, 적어도 이전에 비해서는 합리적이고 근대적인 삶을 살 수 있으리라는 꿈과 희망을 줬다. 그리하여 군사정변 이후 선거라는 형식을 통해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지식인들을 위한 4·19의 시가 아닌 대중을 위한 5·16의 시는 더욱 널리 퍼졌고, 애창됐고, 시대정신이 됐다. 경제는 고도성장을 시작했고 온갖 진통을 겪으면서도 한국인은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달려가며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다. 물론 성공을 만들어내기 위해 동원된 방식이 전적으로 공정하지만은 않았다.

김우중의 대우그룹이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김우중 회장부터 모든 임직원이 상상하기 어려우리만큼 열심히 일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대우의 급성장은 김우중이 박정희와 맺고 있던 돈독한 인연이 없다면 성립할 수 없었다. 국민 모두가 잘살아 보겠다는 열망을 품었고, 실제로 거의 대부분이 절대 빈곤으로부터 탈출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가장 크고 달콤한 과실은 결국 권력과의 거리에 따라 분배됐다.

오늘날 보수 정치는 박정희 시대가 만들어낸 재벌그룹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실제로는 아닐 수도 있지만, 적어도 국민은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 바로 그 점이 보수 정치가 네 차례 연이어 패배한 이유일 테다. 박정희가 권력을 잡던 시절, 그의 정치는 국민 모두가 잘살고 싶은 열망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반면 지금은 국민 모두가 잘사는 나라가 아닌, 이미 잘살고 있는 사람들만 잘사는 나라를 위하는 것처럼 보인다.

1960년대의 국민이 박정희를 지지한 까닭은 누구라도 재벌이 될 수 있는, 실낱같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은 기회를 나눠줬기 때문이었다. 2020년 현재 보수 정치는 과연 국민에게 그런 꿈을 꾸게 하는가?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긍정적인 답을 기대하기 어렵다. 보수 정치인과 언론이 “이렇게 복지 퍼주기만 하다가는 나라가 베네수엘라 꼴이 된다”고 외쳐도 국민들이 듣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국민들이 ‘빨갱이’가 돼서가 아니다. 보수 정치가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 정신을 내팽개친 채, “우리가 남이가”라고 외치는 기득권 패거리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남 탓을 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국민은 현재 보수 정치를 건강한 시장경제의 수호자로 여기지 않는다. 구멍가게에서 시작해 재벌그룹까지 도달할 수 있는 공정한 게임의 규칙 따위는 더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흙수저’는 ‘흙수저’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데, 복지 예산 좀 축내는 게 뭐가 대수인가?

민주노총이냐 대기업 임원과 오너냐


조국 전 법무장관이 한 유명한 말을 떠올려보자. “우리들 ‘개천에서 용 났다’류의 일화를 좋아하지만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용이 되어 구름 위로 날아오르지 않아도,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 소위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경제적 역동성과 그로 인한 사회계층 변화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대신 각자 자리에서 안분지족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듯한 모습이다.

많은 이가 저 트위터 발언의 후안무치함을 지적했지만, 이번 총선 결과가 보여주다시피 그렇다고 국민이 더불어민주당 대신 미래통합당을 택하는 일은 없었다. 통합당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사고방식 역시, 대놓고 말을 안 하고 있다 뿐이지, 조국과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이 국민 기층에 깔려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주지하다시피 민주당은 민주노총이라는 노동계의 기득권과 한편에 서 있다. 하지만 통합당은 그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다니는 대기업의 임원 및 오너 등의 이익을 대변한다. 평범한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현실을 놓고 볼 때, 나 혹은 내 자식이 민주노총에 들어갈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대기업 임원이나 재벌 총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유권자로서는 누구를 지지하는 게 더 합리적인 선택일까?

누구나 자신의 손으로 더 나은 내일을 개척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다면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어 한다.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살아가는 게 더 낫다고 말하는 조국조차 딸에게 더 나은 미래를 선사하기 위해(재판 중인 사안이긴 하나) 매우 의심스러운 방법으로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시키지 않았던가.

그러한 욕망은 모두가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제공할 때 사회는 건전해진다. 자유시장경제 이론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신비한 힘을 역설했다. 대한민국의 경제적 성공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증거다. 6·25전쟁 직후 어떤 영국 언론인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건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과 같다고 조롱했지만, 우리는 기어이 꽃을 피워내고 말았으니 말이다.

동력은 분명하다. 국민 모두 잘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열망을 헛되이 하지 않고,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라고 외치며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스스로 자신과 자녀들의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하는 ‘우리’로 호명됐고, 보수 정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문제는 보수가 성공에 도취한 나머지 자신의 근본을 잃어버렸다는 데 있다. 박정희가 처음 집권할 당시 그들은 보수가 아니었다. 혁신적인 젊은 피였고, 이전에 비해 공정하고 활기찬 시장경제를 선사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으며, 그 약속을 지켜냈다. 상대적으로 보자면 오히려 진보에 가까웠다. 영국에서 유학하고 온 인류학 박사 윤보선과 달리 박정희는 논두렁에 앉아 농민들과 막걸리를 마셨고 온 나라에 새로운 정신을 불어넣었다.

양주잔 내려놓고 막걸리 마셔야


오늘날의 보수 정치는 시바스 리갈을 마시던 박정희에 훨씬 더 가까워져 있다. 오직 그런 모습만 떠오를 뿐이다. 국민들로서는 박정희 시대의 추억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거나, 지역적 연고가 강하거나, 박정희 체제의 직접적인 수혜자가 아닌 다음에야, 보수 정당을 찍을 이유가 없다. ‘여당 프리미엄’마저 이제는 민주당이 누린다. ‘이기는 편 우리 편’이라며 중도층이 찍어주는 정당은 통합당이 아니라 민주당이라는 말이다.

언필칭 청년 진보 논객으로 불려온 필자가 노년층이 지지하는 보수 정당을 향해 고언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지금 한국에는 올바른 시장경제와 합리적인 법치주의를 목표로 삼는 정당이 필요하다. 많은 국민은 통합당 혹은 넓은 보수 진영을 그저 ‘늙은 기득권 정당’으로만 바라본다. 그런 인식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정치는 자신의 핏속에 진보의 DNA가 섞여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 유전자를 깨울 때, 젊은이들의 지지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은 돈이 아니라 꿈을 보고 투표한다. 모든 이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며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사회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언제든 표심은 돌아올 수 있다. 양주잔을 내려놓고 막걸리를 마셔야 할 때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등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