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조장한 ‘북한 판타지’ 기원 ‘김진명,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 입력
- 2020-07-26 10:00:01
- [사바나]
● 여권 지지자 정신세계 속 ‘김진명 유니버스’
● 남북 힘 합쳐 외세 무찌르자는 민족합체물
● 국뽕, 반일, 반미로 점철된 1990년대 대중문화
● 북핵 용납해 日에 ‘본때 보여주자’는 ‘뜨거운’ 정념
● 소설·영화 속 北은 ‘낯설지만 南에 힘 되는 존재’
● 현실 속 北은 ‘고의로 南 인명 해치는 유일한 국가’
● 젊은 세대 대북觀 잘 반영하는 쪽은 장강명
● 민족합체물 대체 못하는 보수·중도의 빈곤한 대북담론
2018년 9월 14일 남북 고위 관계자들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했다. 그로부터 1년 9개월여가 지난 6월 16일 북한은 사무소를 폭파했다(왼쪽).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북한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인 중 상당수는 ‘김진명 유니버스(Universe)’에 살고 있다. 게다가 그런 사람들은 문재인 정권의 탄탄한 지지층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 민족에게는 잠재된 무한한 에너지가 있지만, 그것은 일본과 미국 등 외세에 의해 빼앗기거나 가로막혀 있으며, 남과 북이 힘을 합쳐 그 장벽을 넘어설 때 ‘우리’는 세계 초강대국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단순한 서사다. 그것이 상당수의 대중, 특히 여권 지지자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므로 ‘김진명 유니버스’를 이해하는 것은 현실의 북한에 대한 구체적 사실관계 몇 가지를 챙기는 일보다 남북관계를 읽는 데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식의 구호를 좋아하는 여권과 그 지지층의 성향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남북통일만 하면 하루아침에 일본도 미국도 넘보지 못할 주체적인 초강대국으로 거듭난다는 판타지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북정책과 외교에 미치는 영향을 알 필요가 있다.
김진명 소설 속 ‘일본 응징 시나리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줄거리를 요약해 보자. 재미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를 모티프로 삼은 이용후 박사는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천재다. 그는 박정희의 부름을 받아 핵개발에 참여했지만 1978년 의문의 교통사고로 숨졌다. 물론 그것은 사고가 아니라 살인이었다. 범인은 폭력조직 잔나비파의 두목 박성길. 반도일보의 기자 권순범이 취재를 시작하자 박성길 역시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권순범이 도달한 결론은 박정희 정권의 핵개발을 미국이 주도한 국제 신디케이트가 가로막았다는 것이었고, 미스터리를 끝까지 추적한 끝에 청와대에 놓여 있던 청동 코끼리상에 플루토늄이 감춰져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남과 북은 핵무기를 개발하고 상대의 동의를 구해야 발사 가능하도록 견제 장치를 걸어놓는다정통 미스터리 스릴러의 형식을 띤 소설 그 자체도 인상적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소설 속의 소설로 등장하는 일본 응징 시나리오다. 남·북한과 러시아를 잇는 송유관이 완성되자 미국과 일본은 불안감을 느낀다. 일본 극우 단체가 독도에 상륙해 할복 퍼포먼스를 벌이고 독도를 점령한다. 한국은 공군을 동원하지만 일본의 압도적인 전력을 이겨낼 수 없다. 미국은 뒷짐 지고 방관한다. 일본은 한국을 완전히 꺾어놓기 위해 포항제철을 공습한다. 우리에게는 핵이 있으니 공격을 중단하라는 경고를 일본은 무시한다. 한국의 대통령은 북한에 핫라인으로 연락하고, 일본의 무인도를 향해 핵폭탄을 쏴서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 미리 말해둘 필요가 있겠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출간된 것은 1993년이었고, 당시 대중문화는 (그때는 그런 용어가 없었지만) ‘국뽕’과 반일, 반미로 점철돼 있었다. 가령 만화가 이현세는 스토리작가 야설록과 힘을 합쳐 1994년 ‘남벌’이라는 작품을 내놓았다. 중동에 발생한 무력 분쟁으로 인해 석유 수입에 곤란을 겪은 일본이 인도네시아를 무력 점령하면서 한국인들을 억류하고, 이에 양국 간 갈등이 커져 전쟁으로 비화하는데, 결국 한국이 이긴다는 내용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북한의 공헌이 지대하다. 한국이 제공한 장비를 이용해 북한 기술자가 일본의 전파를 교란하면서 “남조선에서 넘어오는 TV 전파를 매번 차단하고 있던 터라 기술력이 좋다”고 너스레를 떤다거나, 고도로 훈련된 북한 특수부대가 한국에 노하우를 전수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일본을 무찌르는 이야기 구조 자체가 일종의 ‘원형 서사’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나가 된 남북의 저력은 고작 일본만 이기고 말 수준이 아닐지도 모른다. 김경진의 소설 ‘데프콘’ 시리즈에 따르자면 그렇다. 통일 한국의 국력에 위기감을 느낀 중국은 대만을 무력으로 병합하고 베트남까지 위협하던 중 통일 한국에까지 총부리를 겨눈다. 외세에 의해 분단됐을 때에는 주변 열강에 치이는 신세였지만 하나가 되고 나니 우리 민족은 정말 강했기에, 개성과 서울에 핵폭탄을 맞고도 중국을 이기고 유리한 조건에서 휴전협정을 체결한다. 이것이 1996년 처음 출간된 ‘데프콘’ 시리즈 1부 ‘한중 전쟁’의 내용이다. 통일 한국은 일본과도 싸워서 이기고, 심지어 태평양 건너 미국과도 전쟁을 해서 그들의 콧대를 보기 좋게 꺾어놓고 만다.
‘북핵, 南에 위협 아니다’라는 민족합체물
2017년 개봉한 영화 ‘강철비’는 북한 핵무기 절반을 한국이 넘겨받으면서 끝난다. [와이웍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와 같은 이야기 구조를 지닌 작품들을 통틀어 ‘민족합체물’이라고 불러보자. 로봇이 합체·변신해 막강한 악당을 물리치는 아동용 애니메이션의 내용을 연상하면 된다. 민족합체물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력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심각하다. 단지 대중소설이나 영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민족합체물은 하나의 전제를 공유한다. 북한의 핵은 우리에게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북통일 후 우리의 소유가 되거나, 설령 통일되지 않더라도 북한이 겨냥하는 적은 미국 혹은 일본이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사실관계를 조금만 떠올려 봐도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바로 얼마 전 북한은 개성공단 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해전, 1990년대로 돌아가면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등도 떠올려볼 수 있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북한 중 군사력을 동원해 고의로 한국의 인명을 해치고 재산상 피해를 유발하는 국가는 북한이 유일하다. 그러므로 북한의 핵은 우리에게 위협이 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럴 것 같지만, 나의 상식이 다른 사람의 상식과 꼭 같으리라는 법은 없다. 적어도 ‘김진명 유니버스’에 사는 이들의 상식은 그렇지 않다. 나는 지금 소수의 대중문화 애호가들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게 아니다. 2017년 갤럽에서 14개국을 대상으로 수행한 비교 조사에 따르면 북한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에 대해 ‘가능성 있다’고 답한 사람의 비율은 미국 46%, 일본 45%, 한국 35%로 나타났다. 고작 2년 전인 2015년 북한에서 비무장지대에 매설한 목함 지뢰에 우리 군인 두 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이 벌어졌지만, 65%의 한국인은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없다고 믿고 있었다.
단 한 편의 소설이 이런 거대한 착시를 불러왔다고 말한다면 이는 분명 과대평가일 테지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이후 쏟아진 민족합체물이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대중적 인식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본다면 그 또한 대중문화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북한의 도발이 있건 없건 한국인의 일상은 끊이지 않고 흘러간다. 그런 상황에서 대중문화 콘텐츠 속의 북한은 언제나 ‘낯설지만 결국 우리에게 힘이 되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으니, 65%의 국민이 북한의 핵 사용 가능성을 ‘없다’고 생각하는 게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물론 북한의 핵을 우리가 넘겨받음으로써 핵보유국이 되는 시나리오는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다. 김진명 스스로가 2019년 11월 ‘중앙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인정한 바다.
“자칫 잘못 생각하면, ‘통일하면 우리 건데’라고 할 수 있는데, 그건 아닙니다. 한국은 결심만 하면 핵무기를 만들 수 있어요. 한국이 핵무기를 만드는 건 미국이 동의할 때입니다. 한국이 핵을 만드는 건 미국하고 바로 적이 되는 것인데, 어리석은 것이죠.”
장강명과 ‘최선의’ 北 붕괴 시나리오
소설가 김진명(63)은 1993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초판을 출간했다. 이 소설은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외세의 벽을 넘어설 때 초강대국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서사를 갖고 있다. [조영철 기자]
그렇다. 일본에서 반도체 제작 공정의 핵심 소재인 불화수소 수출을 막았을 때 문재인 대통령이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사에 내놓은 발언에서 따온 것이다. 심지어 책 표지에는 문 대통령과 김정은의 캐리커처가 각각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그려져 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 소개의 한 문장을 읽어보자. “일본의 독도 침략과 경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이 책은 변화된 지금의 국제 관계를 냉정히 직시해 보자는 생각으로 기획 제작되었다.”
북한과 힘을 합쳐 일본을 핵무기로 굴복시킨다는 폭력적 쇼비니즘(맹목적·호전적 애국주의)이 담긴 내용으로 무엇을 ‘냉정히 직시’하자는 것일까? 알 길이 없다. 대신 분명한 사실 하나가 남는다. ‘민족합체물’의 소비자에게 허구와 현실의 경계는 매우 희박하거나 없다. 설령 현실이 그들의 허구에 맞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허구가 아니라 현실이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꿈은 이루어지고, 길은 처음부터 나 있는 게 아니라 걷다 보면 만들어지며,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표현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선량한 시민으로서, 설령 민족합체물이 소비의 대상에 머무는 게 아니라 북한 전반에 대한 국민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들 그것을 문화계 외부의 힘으로 밀어내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해법은 현실에 입각해 혹은 보편적인 가치를 지향할 수 있는 더 나은 서사 구조를 만들고 그것을 대중적으로 소비해 ‘대세’를 바꾸는 것이다. 문제는 그 방법을 펼치기가 현재로서는 매우 묘연한 상황이라는 데 있다.
가령 소설가 장강명의 2016년 작 ‘우리의 소원은 전쟁’을 펼쳐보자. 이야기는 ‘최선의’ 북한 붕괴 시나리오에서 시작한다. “김씨 왕조가 평화적으로 무너졌고, 국지전이 발발하지 않았고,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지 않았고, 중국 군대가 북한에 주둔하거나 북한 일부가 중국에 편입되지도 않았다.”
이것을 최선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은 북한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 없는 사람이다. 추정컨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다소 거품이 껴 있긴 하지만 120만여 명의 병력이 존재하지만, 군사 영역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철저히 실패하고 망가진 곳이 바로 북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압록강과 두만강 너머에는 미국과 패권을 다투며, 티베트와 신장위구르를 병합한 전례가 있는 중국이 있다. ‘북한 붕괴로 인한 통일’이라는 사건이 소설의 묘사처럼만 벌어진다면 실로 역사적 행운일 수밖에 없다.
일본에 핵 쏘는 군국주의 판타지
그럼에도 ‘우리의 소원은 전쟁’의 줄거리는 암울하기 짝이 없다. 주인공 중 한 사람인 강민준이 군대에 두 번 가게 됐기 때문만은 아니다. 북한의 치안을 한국이 주도하는 평화유지군이 도맡게 됐다는 상황 자체가 문제적이다.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를 지나 건국된 대한민국에서 사는 국민들은 자신들이 타국에 군대를 보내 치안을 유지하고 통치하는 상황 자체를 잘 상상하지 못한다. 그런 현실을 반영하기라도 한 듯,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병력과 자원을 투입해 북한의 치안과 행정을 수립해야 할 테지만, 소설 속에서는 한국 정부에 그런 의지가 없는 상황이 제시된다. 결과는 예상할 수 있는 바다. “김씨 왕조 시절의 북한은 불량 국가, 막장 국가였다. 김씨 왕조가 붕괴된 뒤 북한은 좀비 국가가 되었다. 국가라는 탈을 간신히 쓴 약육강식의 무정부 사회였다.”
독자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하자면 ‘우리의 소원은 전쟁’은 재미있다. 액션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 장르 소설을 처음부터 지향하고 만든 작품이다. 김씨 집안의 세습 독재가 끝난 후 디스토피아가 돼버린 북한 지역은 그러한 이야기의 무대로서 완벽하게 작동한다. 작가는 미국의 전직 군인이자 탐정 캐릭터인 ‘잭 리처’를 오마주한 전직 북한 특수부대원 ‘장리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래서인지 독자의 반응도 좋았고, 비록 실제 제작되지는 않고 있지만 영화 판권도 금세 팔렸다. 하지만 ‘우리의 소원은 전쟁’은 제2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거듭나지 못했다. 두 작가가 등에 업고 있는 대중적 정념의 차이 때문이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북한의 핵을 용납하고서라도 일본에 ‘본때를 보여주고’ 싶은, 말하자면 ‘뜨거운’ 정념을 바탕에 깔고 있는 소설이다. 일제강점기를 직접 겪어본 적도 없거니와, 저비용항공의 출현 이후에는 돈 몇 푼만 생기면 국내 여행 대신 일본 여행을 택하던 젊은이들이 불현듯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인증 샷을 올리던 지난해 이맘때의 광경을 떠올려보자. 초대 대통령 이승만부터가 지지 기반이 약해졌다 싶으면 반일감정을 부추겨 동력으로 삼았을 만큼 광복 이후 이 땅에서 반일주의는 실패한 적 없는 대중 동원 코드다.
반면 ‘우리의 소원은 전쟁’에는 ‘차가운’ 정념이 깔려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울하다. 김씨 일가가 정당치 못한 방식으로 권력을 틀어쥔 채 북한 주민을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북한을 해방시키기 위해 군사 행동도 불사하자고 목청을 높이자니 ‘틀딱’(노인을 비하하는 말)처럼 보일 것 같고, 전쟁은 더더욱 피하고 싶고, 그렇다고 북한이 붕괴하는 것도 딱히 원치 않는, 끝없는 ‘판단 보류’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 최선의 북한 붕괴 시나리오를 전제하더라도 디스토피아 속에서 벌어지는 액션 활극은 일본에 핵을 쏘는 군국주의 판타지를 능가할 만한 말초적 쾌락을 안겨주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북한의 현실뿐 아니라 그 북한을 바라보는 국민, 특히 젊은 세대의 시각을 한결 더 잘 반영하는 쪽은 장강명이다. 최근 통일연구원이 수행한 ‘통일의식조사 2020’을 보면 “북한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20대와 30대 모두 65% 이상이 ‘관심 없다’고 답했다. 연령대를 전체로 넓혀놓고 봐도 61.1%가 ‘관심 없다’고 한다. 심지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믿는 이는 응답자 중 10.5%에 불과했다.
덜 군국주의적이며 더 휴머니즘적인
국민 중 절반 이상은 사실 북한에 관심이 없고, 전쟁만 나지 않으면 만족할 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렇듯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무관심하거나 방관하는 사이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모험적인 대북정책이 연이어 시도됐고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대중 서사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민족합체물’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현실의 대북정책은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정전협정 체제를 종식시키자는 민족합체물에 더욱 가까워졌고 말이다.민족합체물을 대체할 만한 북한 소재 서사가 없다는 점은 보수 및 중도 진영이 북한 관련 어젠다 설정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북한을 절대악으로 삼는 반공주의 서사는 원래 인기가 없었고 질이 낮았기에 시장에서 자연스레 퇴출됐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진보 진영에서 민족주의적 열망을 고스란히 흡수해 민족합체물이라는 형식을 만들고 숙달하는 동안 보수·중도 진영은 대체 뭘 하고 있었나.
그 결과 대한민국은 국민의 90%가 김정은을 믿지 않으면서도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대통령 지지율이 껑충껑충 뛰어오르고, 북한이 원치도 않는데 남북철도를 놓겠다고 설쳐도 정치적 타격을 받지 않는, 이상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한 북한 문제를 피할 수 없다. 북한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의 이야기 속에 북한이라는 존재가 등장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말과도 같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변화한 현실에 맞는 대북정책 뿐만이 아니다. 북한을 바라보고 우리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민족합체물’보다 덜 군국주의적이며 더 휴머니즘적인 어떤 사고와 서사의 양식이 절실히 요구된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