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0

직업윤리 저버린 권력자들로 ‘대한민국號’가 위태롭다

 [아무튼, 주말][노정태의 시사哲]
美 조종사 설리가 보여준 ‘직업윤리란 무엇인가?’

체슬리 설렌버거, 일명 캡틴 ‘설리’. 40년 경력을 자랑하는 조종사다. 이 남자는 기적을 이루어냈다. 두 엔진을 모두 잃고도 희생자 단 한 명도 없이 완벽한 비상착륙을 해낸 것이다.

일러스트=안병현
2009년 1월 15일 뉴욕에서 있었던 실화다. US 에어웨이스 1549편이 이륙 직후 새 떼에 부딪혀 동력을 잃었지만 허드슨강에 무사히 착륙했다. 체감온도 영하 20도의 혹한에 일부 승객이 강물에 빠졌지만 전원 무사 구조되었다. 승무원과 승객을 포함해 총 155명이 생환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은 이렇게 감동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직업윤리란 무엇인가?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설리가 잘못 판단했을 가능성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설리에게는 승객을 안전하게 모실 의무가 있었고, 자신의 역할을 완수했다. 직업윤리의 영웅이다. 반면 NTSB는 사고 원인과 전개 과정을 정확히 파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언론이 설리를 영웅으로 떠받들고 있다고 해서 그를 검증하지 않을 수는 없다. 승객 전원을 무사히 보호해낸 설리는 이제 NTSB 앞에서 자신의 명예와 경력을 지켜야 한다. 두 직업윤리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에서 청문회에 불려나온 캡틴 설리(톰 행크스·왼쪽)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대표작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펼쳐보자.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이나 르네상스 시대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의 은행가였던 야코프 푸거 등은 수많은 조언을 남겼다. 정직해야 하고, 친절해야 하며, 절제해야 하고, 이웃이 믿을 수 있는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신뢰받는 상인으로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돈을 뭐 하려고 벌까? 이들은 ‘적당히 벌었으니 사치스럽게 놀고 먹자’는 식의 사고방식에 빠지지 않았다. 죽는 그날까지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하며 자본을 축적해 나갔다. 돈에 대한 욕심은 인류 공통이지만, 경건한 태도로 돈벌이에 임하는 것은 오직 서구의 근대에서만 발견되는 현상이다. 이들에게 일이란 윤리의 최고선(summum bonum)에 다가가는 방법이었다. 베버는 그런 사고방식을 자본주의 정신, 혹은 직업윤리라고 불렀다.

근대 이전까지는 직업으로 사람의 귀천을 나누었다. 동서양 모두가 그랬다. 조선이 사농공상 논리로 작동했다면 서양의 중세는 성직자와 기사 계급이 상공업자와 농민들을 착취하며 지배하는 사회였다. 그런 사고방식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러서 뒤집혔다.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어떻게’ 하느냐가 핵심이다. 사람은 성실하고 근면하게 일함으로써 스스로 고귀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오늘날 당연하게 여기는 직업윤리의 요체다. 모든 직업이 평등하다는 것. 그러므로 어떤 일이건 성심성의껏 해나가야 한다는 것. 이는 곧 모든 사람이 평등하며, 동시에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는 말과도 같다. 직업윤리는 자본주의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직업윤리라는 개념이 국민적 화두로 떠올랐다. 지난 15일 조선일보에 실린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의 인터뷰 때문이다. 특수통 검사 한동훈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 정권을 겨냥한 소위 ‘적폐 청산’ 수사의 일선에 섰고 ‘꽃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조국 일가를 수사하면서 문재인 정권과 맞섰고 세 차례에 걸친 좌천성 인사를 감내하며 대가를 치르고 있다. 눈 딱 감고 조국 수사를 안 했다면 계속 승승장구했을 텐데 왜 사서 고생할까? 한동훈의 대답은 간명했다. “그냥 할 일이니까 한 겁니다. 직업윤리죠.”

한동훈과 그의 상관인 윤석열이 지나치게 가혹하고 무리한 수사를 해왔다는 비판도 있다. 일리가 없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직업과 사회적 역할이 존재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 검찰을 통제하는 것은 법원 몫이다. 마치 설리를 철저하게 검증하던 영화 속 NTSB처럼 말이다.

이 지점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의 직업윤리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대법원장은 한 사람의 판사이면서 동시에 사법부 전체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삼권분립은 그의 직업적 소명의 핵심이다. 판사들이 정치적 외압에 휩쓸리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그러한 본분을 다하기는커녕, 정치권에서 탄핵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니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고 말하는 대법원장을, 국민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다. 공적 차원에서 거짓말을 했으니 판사로서도 실격이다. 사퇴해야 마땅하다.

베버는 자본주의 정신과 직업윤리의 기원을 개신교에서 찾았다. 자본주의 자체는 세계 각지에서 발생한 현상이었지만 자본주의의 바탕에 소명 의식과 직업윤리를 도입한 것은 개신교 문화권의 서구에서만 벌어진 일이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벤저민 프랭클린은 대체 왜 “사람에게서 돈을 짜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아버지가 가르쳐준 성경 구절을 통해 대답한다. “네가 자신의 직업에 충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그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서리라.”

이러한 서구 개신교 중심적 설명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 논쟁만 따로 떼어내도 별개 학문이 성립할 지경이다. ‘서구’에 속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이론이다.

하지만 그 기원이 어찌 됐건 직업윤리는 ‘우리의 윤리’다. 2021년의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며 자본주의 체제를 택하고 있으니 말이다.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직업윤리가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다. 캡틴 설리 또한 그 점을 잘 알고 있기에 NTSB에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부기장을 다독여준다. ‘그들은 자기 일을 하고 있을 뿐이야.’

US 에어웨이스 1549편의 이륙에서 착륙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208초. 캡틴 설리의 신속한 판단과 행동이 155명을 구했다. 5000만명이 탑승한 대한민국호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경건한 태도로 상공업에 힘쓰는 대신 권력을 이용해 한탕 하려는 자들, 근대적 직업윤리를 파괴하고 전근대적 사농공상 체제로 퇴행하려는 자들이 조종간을 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 늦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도 않다.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2021-02-14

안중근 사형선고일? 여성해방의 날!

2월 14일, 언론에 또 그 타령이 실렸다. 발렌타인데이가 아니라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그런 소리 말이다.

2월 14일을 안중근 사형선고일이라고 떠벌이며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짓는 것은 '인터넷 밈'이었다. 자신에게 여자친구가 없다고 한탄하는 남자들이 인터넷의 구석에서 시시덕거리던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언론은 품위에 대한 인식이 없는 관계로, 그런 헛소리를 슬슬 지면이나 방송을 통해 다루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2월 14일에는 엄숙한 표정을 짓자'는 주장은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는 추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좀 더 엄숙하게 나가보는 건 어떨까 싶다. 매년 2월 14일을 '여성해방의 날'로 기념하는 것이다. 근거는? 미군정 시대, 1948년 2월 14일, 공창제가 폐지되었기 때문이다.

김말봉, 박현숙 등 10여 명의 여성단체 지도자들은 공창폐지연맹을 조직하여 기왕에 발표된 법령 제70호는 단지 인신매매 금지령일 뿐이므로 시급히 공ㆍ사창을 폐지하게 하는 법령을 제정해 달라고 입법의원에 건의하였다.41)

이를 받아들여 입법의원은 1947년 10월 28일 전격적으로 공창폐지법을 통과시키고 즉시 미 군정 장관의 추인을 요청하여 이듬해 2월 14일 공창제 폐지를 실시하는 법령을 공고하게 되었다.42)

개정판 | 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2 | 강준만 저

안중근의 인생 중 생일도 아니고 사형집행일도 아닌 사형'선고일'을 기념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반면 공창제 폐지는, 물론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대한민국 여성 인권 운동의 첫 단추로서 매우 뜻깊은 사건이었다. 

2월 14일이 발렌타인데이인 것이 그렇게 못마땅하다면, 2월 14일을 '여성해방의 날'로 기념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여성들이 자기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것 역시 일종의 해방된 자의 행위로 이해할 수도 있을테니 기존의 전통과도 충돌하지 않을 듯하다.

박정희는 독재자지만 설 전통까지 날조하진 않았다

 [노정태의 뷰파인더㉑] 코로나, 차례와 제사 쇄신 기회였는데…

● ‘홍동백서, 조율이시’ 근본 없는 상차림?
● 홍동백서는 예부터 세시풍속의 한 양식
● 일제 잔재도 박정희 ‘창조’도 아냐
● 문헌상으로도 100년 넘는 전통
● 산업화·도시화와 밀접히 연관
● 女 억압하는 전통 개선할 숙제는 남아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명절 때마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등으로 대표되는 ‘전통 차례상’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하지만 홍동백서는 과거 식민지 조선인들에게도 낯선 개념이 아니었다. [김재명 동아일보 기자]
매년 언론에서 두 번씩 꼭 다루는 소재가 있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등으로 대표되는 소위 ‘전통 차례상’에 근거가 있다거나 없다거나, 그저 소박하게 마음으로 조상님께 정성을 보이면 충분하다거나, 뭐 그런 이야기 말이다. 

이번 설은 다소 예외적이다. 5인 이상 집합 금지가 내려졌고 언론도 정부 정책 방향에 부응하기 위해 해묵은 ‘차례상에 전통은 있는가’라는 주제를 꺼내들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부터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하반기에 마무리된다면 추석에는 익숙한 레퍼토리를 또 듣게 되지 않을까 싶다.

박정희가 유교 이데올로기 심으려 했다?
2017년 1월, “설은 남녀노소 모두 노는 날…차례상엔 떡국이면 충분”이라는 제목으로 발행된 ‘연합뉴스’ 기사를 되짚어보자. 이제는 친숙하다 못해 식상해진 내용이다. 기사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차례상은 원래 간소하게 차린다”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성균관 박광영 의례부장은 “홍동백서니 조율이시니 하는 규칙은 주자가례 같은 예서(禮書)에 나오는 게 아니고, 약 40년 전부터 내려오는 민간 관습”이라고 설명했다. 홍동백서는 주자가례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의 전통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이야기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같은 기사를 보면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차례상 기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결정적으로 박정희 정부가 유교 이데올로기를 심으려고 ‘가정의례준칙’을 발표해 제사 상차림 기준을 정했다.” “원래 유교 예법에는 뭘 놔라, 뭘 놓지 말라 하는 게 없다. 떡국 하나만 놓아도 충분하다.” 

두 가지 논의를 합치면 이런 이야기가 된다. 첫째, 홍동백서 조율이시 등은 주자가례에 적혀있지 않은, 말하자면 ‘근본 없는’ 상차림이다. 둘째, 그러한 의식이 전통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배경에는 어떤 외부 요인이 있다. 셋째, ‘근본 없는 상차림’이 전통 행세를 하게 된 원흉은 박정희의 ‘가정의례준칙’이다. 

역사를 보면 그런 주장에 근거가 없는 것 같지는 않다. 19341111일, 조선총독부가 ‘의례준칙’을 발표하여 관혼상제와 관련된 조선의 다양한 세시풍속에 기준을 제시했다. 이후 1955년 ‘의례규범’, 1961년의 ‘표준의례’를 지나, 196812월 7일 박정희 정권에 의해 ‘가정의례준칙’이 공표되고 이듬해인 1969년부터 시행됐다. 

가정의례준칙을 비롯해 그때까지 발표된 준칙은 법적 강제력을 지니지 않는 권고조항이었다. 박정희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1973년 3월, 가정의례준칙을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로 바꾸어 강제성 있는 규범으로 끌어올렸던 것이다. 이렇듯 민간 가정의례를 법령으로 제도화하여 권고를 넘어 강제한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의례준칙’은 일제에 의해 처음 도입됐다. 박정희는 그것을 아예 법으로 못 박았다. 이렇게만 써놓고 보면 만주군 장교 출신 박정희가 우리 고유의 전통과 미풍양속을 깡그리 깔아뭉개고, 그 자리에 홍동백서니 조율이시니 하는 것들을 갖다 놓은 것만 같다. 앞서 인용한 기사처럼 그런 건 “약 40년 전부터 내려오는 민간 관습”일 뿐 ‘진정한 전통’은 아니지 않을까?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인들도 알았다
홍동백서는 ‘우리의 전통’이 맞다. 적어도 40년보다는 오래되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통해 옛날 신문을 뒤져보면 알 수 있는 내용이다. 홍동백서로 대표되는 양식화된 상차림은 192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확인할 수 있다. 

1920년 6월 26일 ‘조선일보’에 실린 “조선유림에게 고함 (2)”라는 글을 읽어보자. 

“今之儒者(금지유자)가口(구)로눈禮樂射御書數(예악사어서수)라能言(능언)하지만은其實(기실)은能通(능통)한者(자)一有(일유)타言(언)하기不能(불능)이니禮(예)의糧粕卽喪服(양박즉상복)의前三後四(전삼후사)와祭需(제수)의紅東白西等(홍동백서등)이나主張(주장)하야知禮者(지례자)로自爲(자위)하는普通儒者(보통유자)를多見(다견)하얏지만은...” 

이는 ‘요즘 주나라 예법에 정통하다고 말하는 유생이 많지만 실은 능통한 사람이 한 명 있다 하기도 어렵고, 상복을 어찌 입어야 하는지 제수를 차릴 때 홍동백서가 어쩌니 저쩌니 말하며 자신이 예를 잘 안다고 하는 평범한 유생들을 많이 보았지만...’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를 통해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홍동백서라는 개념은 그리 낯선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제가 강제한 국적 불명의 풍속 같은 것도 아니다. 홍동백서는 유교의 예법에 대해 대단한 지식과 식견을 가지고 있지 않은 ‘보통유자’들도 입에 담으며 거들먹거리는 흔한 지식이었다. 대중에게 널리 퍼져 있는 세시풍속의 한 양식, 즉 전통이었던 것이다. 

올해가 2021년이니 홍동백서의 전통은 문헌으로 확인되는 것만 봐도 무려 100년이 넘는다. 박정희가 가정의례준칙을 제정하기 전이었던 1961년의 신문 기사에서도 홍동백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1961년 2월 16일자 ‘조선일보’ ‘만물상’의 한 대목이다. 

“祭床(제상)의 陳說法(진설법)은 까다롭고 또이른바 『家家禮(가가례)』라, 집집마다 禮法(예법)이 다를수있지마는 大體(대체)로 基本法則(기본법칙)은 『紅東白西(홍동백서)』요 『棗東栗西(조동율서)』다.” 

박정희가 가정의례준칙을 발표한 해는 1968년이다. 그러니 박정희가 홍동백서라는 허구의 전통을 날조하여 공권력을 이용해 민간에 강요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홍동백서는 일제시대와 박정희 이전에도 한반도에 있었고 그 후로도 사라지지 않았다. 

1969년 4월 12일자 ‘동아일보’, 197712월 2일자 ‘경향신문’을 보면 집집마다 지내는 기제사나 차례가 아닌 마을 공동의 거릿제 등에서도 홍동백서에 따라 상을 차린다는 기록이 나온다. 한반도에 거주하는 수많은 이들이 영적 존재와 소통하는 유교적, 혹은 무속적 상차림을 할 때 홍동백서에 따랐다. 홍동백서를 전통이 아니라고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도시의 삶과 온갖 전통의 위축
설을 일주일 앞둔 2월 4일 경기 성남시의 한 전통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제수용품을 구매하고 있다. 코로나19와 한파로 인해서 시장은 한산한 모습이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가정의례준칙은 한국의 산업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늘날은 명절 및 제사가 가장 큰 사회적 논쟁거리로 남아있지만, 1960년대 무렵만 해도 ‘조국 근대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긴 장례식이었다. 부모가 세상을 떴을 때 자신의 효심 및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5일장, 7일장을 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던 시절이다. 

농경 사회라면 장례가 길어진다 해도 큰 문제가 없다. 다들 비슷한 곳에 살면서 농사를 지으니 탄력적으로 업무와 장례를 조율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정희가 추구하는 근대화된 공업 국가는 그런 식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박정희의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나 정해진 날짜만, 최대한 짧게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 공장과 사무실에서 일해야 했다. 박정희는 그리하여 ‘준칙’을 배포하였지만 모두가 순순히 말을 듣지는 않자 아예 법을 만들어버렸다. 

강경한 ‘조국 근대화’의 흐름은 1980년대가 되면서 한풀 사그라졌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집권의 정당성이 부족했기도 하거니와, 전두환 자신이 박정희처럼 ‘조국 근대화’에 집착하지 않았다. 전두환은 1984년 가정의례준칙 규제를 줄이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전두환이 직접 나서지 않았더라도 적어도 도시를 기준으로 할 때는 3일장이 정착되어 가는 분위기였다. 긴 시간을 들여 많은 손님을 받고, 임권택 감독의 영화 제목처럼 ‘축제’를 벌이는 식의 장례를 치를만한 환경 자체가 역사의 유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1987년 ‘동아일보’에 실린 이 기사는 급변하고 있던 당시의 풍속도를 희극적으로 보여준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가끔 코미디에서나 나오는 것 같은 현실을 목격한다. 며칠 밤새 시끄러운 것이야 공동 생활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해하지만, 아파트의 이삿짐을 운반하기 위해 사용되는 곤돌라가 수선을 피우며 관을 올리고 내리는데 사용될 때마다 남의 초상집이지만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 

이제 한국인은 집에서 죽기 어려워졌다. 병원에서 죽고 장례식장으로 간다. 이렇듯 ‘죽음’과 관련된 의식을 가정이 아닌 병원 같은 공적 공간에서 처리하게 된 것은 한국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다. 프랑스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가 ‘죽어가는 자의 고독’에서 잘 묘사했듯이, 모든 국가와 문화권은 근대화 과정에서 죽음의 공간과 삶의 공간을 분리한다. 또 친족의 죽음을 처리하는 의식을 가족 외의 누군가에게 ‘아웃소싱’한다. 

즉 한국인이 흙으로 담을 쌓은 초가집과 기와집을 버리고 아파트로 대표되는 도시의 삶을 택하면서, 관혼상제를 비롯한 온갖 ‘전통’은 위축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조선인’에서 ‘한국인’으로
1969년 2월 15일 가정의례준칙에 서명하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 [동아DB]
박정희는 독재자였다. 그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박정희의 철권통치와 강요가 없었더라면 관혼상제의 문화적 변화가 이렇게까지 빨리 벌어질 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변화의 토대에는 경제 성장과 도시화가 있다. 여기에도 박정희의 영향은 지대했다. 결국 박정희가 원인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박정희가 ‘진짜 전통’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홍동백서 같은 근본 없는 가짜 전통’을 집어넣었다는 식의 서술은 옳지 않다. 박정희는 가정의례준칙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민속학자, 국어학자, 역사학자 등 자문을 구할 수 있을법한 국학자(國學者)들에게 폭넓게 자문을 구했다. 

자문위원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일제시대에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국어학자 일석 이희승이다. 그는 가정의례준칙 제정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취지를 국민에게 설득하기도 했다. ‘이희승 전집’ 9권에 수록되어 있으며, 1969년 3월 9일 ‘주간중앙’을 통해 발표된 ‘가정의례준칙’이라는 기고문에서 이희승은 이렇게 말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번에 정부로부터 가정의례준칙이라는 것을 제정하여 일반에 공포하였으니, 종래의 관습으로 볼 때에, 좀 소홀하다고 느껴질 점도 없지 않을 것이나, 이는 여러 위원들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나 장래를 고려·전망하면서, 고래의 예절을 가능한 한 존중한 것이니, 누구나 비판보다 앞서 실천하여 보면, 그 제정의 동기와 진의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가정의례준칙을 국가에서 배포하고 심지어 법으로 강제한 것은 여러모로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례적이라는 게 꼭 ‘비정상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가정의례준칙의 제정과 배포 및 시행 과정을 둘러싼 논란은 구한말 이후 한반도의 거주민이 시달려야 했던 숱한 역사적 부침, 그리고 광복과 한일수교 이후 겪었던 급격한 근대화의 부산물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조선인’이 아닌 ‘한국인’이 되었고, 지금도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 글은 홍동백서와 가정의례준칙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산술적으로 모든 집안이 양반 가문일 리는 없다. 그럼에도 집집마다 차례와 제사를 지내는, 특히 여성에게 억압적인 이 전통을 오늘에 맞게 개선해 나가자는 게 이 글의 취지다. 

그러자면 일단 감정적인 반응을 잠시 접어두고 그 양면적인 속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같은 상차림 규칙을 박정희가 온 국민에게 가르친 것은 맞다. 그렇게 보자면 오늘날의 차례와 제사 문화는 ‘만들어진 전통’이다. 

하지만 그것을 박정희가 ‘창작’했다고 말하는 건 옳지 않다. 가정의례준칙 중 일부는 적어도 192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반도의 전통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 원문을 읽어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싶은 주자가례보다는 모든 이가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홍동백서가 우리의 ‘전통’에 더욱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제는 전통이 오늘의 상황과 맥락에 부합하느냐다. 5일장이나 7일장으로 치러지는, 시끌벅적한 축제를 방불케 하는 장례식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국인은 이제 아파트 혹은 도시의 마당 없는 주택에 산다. 집에는 관을 두고 염을 하고 손님을 맞이할 공간 자체가 없다. 생의 막바지의 투병과 임종은 대부분 병원에서 맞이하게 되며 곧장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결혼 역시 마찬가지다. 요즘에도 ‘전통혼례’를 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 경우도 예식장 혹은 별도의 장소를 빌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1960년대로부터 고작 수십 년이 지났을 뿐인데, 집에서 치르는 혼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워졌다. 남자의 성인식을 일컫는 관례는 아예 형해화됐다. 관혼상제 중 남은 것은 제례, 즉 차례와 제사뿐이다. 제사는 결혼이나 장례와 달리 상업화하기 어려운 분야다. 그러므로 없애건 고치건 오늘날에 맞도록 갱신하려면 사회가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의식적으로 분위기를 바꿔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여전히 ‘시월드’ 속에서
이 시점에서 문재인 정권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권은 출범 초기 페미니스트 정권을 표방했다. 그렇다면 일찍부터 각계각층의 국민을 불러 모아 올바른 차례와 제사 문화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공론의 장을 열 필요가 있었다. 다수의 여성이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대목이 바로 명절이니 말이다. 

논의가 제때 제대로 이루어졌다고 가정해보자. 그랬더라면, 코로나19라는 전 지구적 위기는 오히려 차례와 제사라는 가정의례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쇄신할 수 있는 역사적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는 박정희를 뛰어넘어 ‘가정의례준칙’의 큰 기조를 수정했다는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업적으로 역사에 기록됐을지도 모른다.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페미니스트 대통령’ 문재인은 1960년대의 가정의례준칙과 관련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코로나19가 닥쳐왔다. 코로나19 사망자와 유족들은 제대로 된 작별과 애도의 기회도 얻지 못하고 있다. 결혼식장은 줄폐업을 하고 하객들은 마스크를 썼다 벗었다 하느라 바쁘다. 그럼에도 차례와 제사는 남아, 이번 설에도 며느리들은 ‘시월드’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고민하고 갈등했다. 위기를 극복하고 한 단계 도약할 기회를 덧없이 놓친 셈이다.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좋은 정치가 절실하다.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2021-02-07

英이코노미스트, K방역에 “他 민주국가에 적용 어렵다” 쓴 이유

 [노정태의 뷰파인더⑳] “韓 권력은 시민 사생활에 아주 작은 비중 둔다”

● 설 명절 가족 모이면 신고 당할까 걱정
● 고통 분담 당연시, 의료진 희생…‘방역의 정치화’
● 韓 방역당국은 어벤져스이자 CSI?
● 개인정보 거리낌 없이 들여다보는 국가
● 공격적인 ‘추적-검사’(track and test)
● 갤럽 조사, “韓 80% 방역 위해 권리 희생”
● 같은 조사 상위권 베트남, 조지아, 이라크
● 세계는 K방역에 열광하지 않았다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9월 11일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센터에서 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차관급)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세계 모범으로 인정받은 K방역의 영웅 정 본부장이 초대 질병관리청장으로 임명된 것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청주=청와대사진기자단]
2020년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져나가던 무렵. 인터넷 커뮤니티와 단체대화방(단톡방) 등에서 어떤 글이 떠돌기 시작했다. ‘코로나사태에 따른 각국의 대응방식’이라는 제목으로 중국, 일본, 영국, 미국, 이탈리아, 대만, 북한, 한국의 코로나 대응을 비교한 글이었다. 

아마 이 칼럼을 읽는 분들도 한 번쯤은 접해보셨을 것이다. 중국은 “가둬 놓고 조용히 죽게 둔다”, 일본은 “남몰래 조용히 죽길 바란다”, 미국은 “총으로 세운나라 총으로 지키려고 총포상으로 몰려가 총과 실탄을 싹쓸이 한다”, 이탈리아는 “발코니에 모여 박수치고 노래하며 베토벤의 장엄미사처럼 사를 찬미한다”던 그 글이다. 

대체로 재미있다고, 웃자고 그 글을 여기저기 퍼 날랐지만 나는 웃음이 나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서 코로나로 사람 죽는 걸 농담거리로 삼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 한국인이 쓴 게 맞는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대만에 대한 서술이 그랬다. 처음부터 성공적이었던 대만의 방역을 ‘봉쇄’와 ‘배급’으로 일축하며 “가택연금 수준의 자가 격리 조치를 내리고 어기면 4000만 원의 벌금 폭탄을 투척하고, 마스크는 배급제로 해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이 하나의 중국임을 입증한다”고, 그 카톡 글은 말하고 있던 것이다.

K방역 예찬론에 취해 놓친 것
물론 이것은 검증 불가능한 의혹이다. 누가 썼는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썼는지 알 방법은 없다. 하지만 대만의 방역을 보면서 “양안이 하나의 중국임을 입증”한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애초에 ‘양안관계’(兩岸關係)라는 외교 용어를 농담에 동원할 한국인 자체가 흔치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전혀 관심사가 아니니 말이다. 코로나 사태를 보며 생판 남의 나라인 대만과 중국의 관계를 떠올린다는 것부터가 퍽 이상한 일 아닌가. 

더 큰 문제는 그 글에서 한국의 방역을 칭송하는 방식이었다. 이 대목은 심각하게 문제적일 뿐 아니라 이 글의 주제와 직접 관련이 있다. 길게 인용해보도록 하자. 

8. 한국: 조용히 죽고 싶어도 체계적인 국가 시스템 때문에 도저히 불가능하다. 코로나를 생화학전으로 규정하고 첨단 진단키트와 방호복으로 무장한 유능한 어벤저스들이 나타나 순식간에 상황을 반전시킨다. 

그들은 CSI(과학수사대)처럼 현장과 동선을 탐문하고, CIA(미국 중앙정보국)처럼 GPS 위치를 추적하고, (서울시청 세금징수과) 38기동대처럼 구매내역까지 조회해서 조용히 숨어서 죽겠다는 신천지 환자들까지 기어이 찾아내고야 만다. 많이 아픈 자는 음압병실로 데려가서 정성껏 무료로 치료하고, 조금 아픈 자는 레저시설 같은 곳으로 보내 돈까지 주면서 쉬게 한다. 그리고 이들의 헌신으로 여전히 국민들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박탈된 일상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코로나로 죽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 

이 글이 인터넷에서 널리 퍼지게 된 것과 당시 분위기 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처음에는 문재인 정부가 방역에 실패했다는 비판론이 나왔지만, 미국·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코로나가 산불처럼 번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반응이 일순 달라졌다. ‘한국이 선방하고 있다’는 인식을 넘어, 소위 ‘K방역’에 대한 자화자찬이 시작됐다. 우리 스스로도 몰랐던 한국인의 어떤 대단한 면모 덕분에 우리는 코로나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지난해 4‧15 총선이 치러졌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건으로 국민 여론이 대단히 나빠졌던 시점에서의 선거였다. 코로나도 처음에는 여당의 악재로 여겨졌다.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문재인 정권에게 코로나란 마치 일본에 상륙한 몽고·조선의 군대를 쓸어버린 신풍(神風, 카미카제)과도 같은 존재였다. 정권 심판론을 ‘K방역’ 예찬론이 덮어버렸다. 세월호 유가족을 겨냥한 너무도 상스러운 막말 등 야당이 자초한 문제와 맞물려, 21대 총선은 180석을 얻은 범여권의 압승으로 귀결됐다. 

즉 코로나와 방역 문제는 처음부터 정치와 분리해서 논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총선을 앞둔 시점에는 그러한 비판을 가한다는 것이 ‘방역을 정치로 방해하는’ 행위로 여겨지기 십상이었다. 이제는 백신이 나왔고, 국내에도 곧 도입될 예정이라고 하니, 복기를 해볼 때가 됐다. ‘K방역’에 대한 다양한 해석, 특히 예찬론은, 무엇을 말하고 있었으며 또 무엇을 놓치고 있었을까?

유발 하라리와 언론의 ‘국뽕 장사’
1월 14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에서 코로나19 타격으로 사실상 폐업절차를 밟고 있는 한 가게에 ‘장사하고 싶다’는 글귀가 붙어 있다. [홍진환 동아일보 기자]
앞서 인용한, 출처를 알 수 없지만 인터넷에서 유행한 글이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K방역’의 구성 요소는 두 가지였다. 첫째, 의료진의 헌신. 둘째, 카드 사용 내역을 비롯한 개인 정보를 아무렇지 않게 들여다보는 국가.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국가가 국민의 정보를 들여다보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국민 혹은 시민사회. 

요컨대 지난해 봄과 여름 한국인들의 ‘국뽕’을 충족시켜준 ‘K방역’은 곧 공격적인 ‘추적-검사’(test and trace)와 같은 말이었다. 그것이 감염병의 초기 확산을 막는데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 중국, 베트남 등 동아시아 국가를 제외하면 그런 길을 택한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인권, 특히 프라이버시에 대한 민감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0년 3월 무렵 국내 언론은 이 점을 그리 중점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다. 대신 ‘해외 석학들도 한국의 방역에 경탄’ 같은 식의 보도를 쏟아내기 일쑤였다. ‘유발 하라리-폴 크루그먼 등 세계적 석학 “한국 배워라”’ 같은 제목의 기사를 매일같이 접하지 않을 수 없던 시절이었다. 

문제는 외신 혹은 외국 석학의 논평과 국내 언론의 보도가 어느 정도, 혹은 상당한 왜곡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방금 제목을 인용한 기사에는 유발 하라리가 2020년 3월 20일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고한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의 세계’(the world after coronavirus)라는 칼럼이 소개됐다. 한국 언론은 내용을 이렇게 전했다. 

“반면 투명한 정보 공개와 시민들의 협조로 감염 확산을 저지한 성공적인 사례로는 한국을 들었다. 하라리 교수는 ‘한국은 일부 접촉자 추적시스템을 이용하긴 했지만, 광범위한 검사와 투명한 보고, 정보를 잘 습득한 대중의 자발적인 협조에 의존했다’고 지적했다.” 

이것은 왜곡 보도라고 할 수 있다. 유발 하라리가 쓴 원문을 읽어보면 그와 같은 성공 사례로 한국 뿐 아니라 대만과 싱가포르가 동시에 언급되고 있다. 한국 언론은 유발 하라리가 말한 코로나 대응의 성공 사례에서 대만과 싱가포르를 고의로 누락시켰다. 마치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가 대한민국을 향해 ‘따봉’을 날리며 기립박수를 치는 것 같은 심상을 독자에게 전달해 조회 수를 긁어내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소위 ‘국뽕 장사’를 하고 있던 셈이다. 

반면 한국의 방역 관행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지 않는, 혹은 그런 식으로 포장할 수 없는 외신은 소개되지 않았다. 가령 2020년 3월 5일 발행된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권의 ‘추적-조사’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했다. 물론 이와 같은 비판을 국내 언론은 실시간으로 전하지 않았다. 

“한국의 권력은 시민의 사생활에 아주 작은 비중을 둔다. 한국의 대응 중 일부는 다른 민주 국가에 적용되기 어려울 것이다(South Korea has powers that put very little weight on its citizens’ privacy; some aspects of its response might be hard to mount in other democracies).” 

서구의 방역 당국도 동아시아 국가들처럼 사생활 침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추적-조사를 할 수 있기를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지역사회 감염이 만연한 상태에서 추적-조사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또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자국민들의 여론을 무시할 수도 없다. 결국 각국은 자신들에게 맞는 최적의 방안을 택했을 뿐이다. 세계는 ‘K방역’에 열광하지 않았다.

한국인 80% “내 개인 권리 기꺼이 희생”
1월 1일 서울의 한 식당에서 고객이 전자출입명부(QR코드) 인증을 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지난해 1216일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공개한 ‘코로나19와 백신 관련 인식-Gallup International 다국가 비교 조사 (4차)’는 우리가 ‘K방역’에 대한 자화자찬에 취해 놓쳐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202010월부터 12월까지 47개국 성인 총 4만4796명을 대상으로 전화, 온라인, 면접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 중 80%는 ‘방역을 위해서라면 내 개인적 권리 일부를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는 질문에 대해 ‘예’라고 응답했다. 이는 조사 대상인 47개국 가운데 11위로, 47개국 평균인 70%를 훌쩍 웃도는 수치다. 

이 질문에 대해 한국보다 순위가 높은 나라는 베트남(96%), 조지아(90%), 코트디부아르(88%), 이라크(87%) 등이다. 소위 ‘서구 선진국’ 중에는 오직 독일만이 80%의 긍정 응답으로 한국보다 한 순위 앞서 있을 뿐이다. 

표 한 장을 두고 너무 많은 해석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가령 갤럽의 해당 여론조사는 ‘방역을 위한 개인적 권리 희생’에 가장 부정적인 나라가 일본이라는 결과를 내놓고 있는데(긍정 31%, 부정 47%), 내용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가 요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본의 다소 의아한 결과를 제외하고 나면 어떤 ‘경향성’이 보이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가 그렇다. ‘방역을 위한 국가 간 여행 제한’의 수용에서도 베트남이 긍정 99%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개인의 자유에 대한 인식과 소위 ‘철통 방역’간에는, 분명하지는 않더라도 느슨한 ‘음의 상관관계’가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뉴질랜드, 대만 등 코로나 방역을 가장 잘 한 나라들이 모두 개인의 자유를 억압했기에 그런 성과를 거두었다는 식의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코로나가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한지 1년도 더 지난 지금, 이제는 좀 더 침착하게 이 질병과 그것의 통제에 대해 공정한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확진자 수를 놓고 국가별 우열을 가리고 선진국이니 후진국이니 손가락질하는 것 자체가 ‘후진국’적인 사고방식이다. 한국의 확진자 및 사망자 숫자가 적은 것을 오직 ‘K방역’의 덕으로만 볼 수는 없다. 우리가 프라이버시를 무시한 탓이라고만 할 것도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바이러스 자체가 한국인과 같은 동아시아인에게 덜 퍼지거나 덜 치명적일 가능성도 있다. 

영국에서 202011월 현재까지 수집한 통계에 따르면 흑인 남성은 백인 남성에 비해 네 배 높은 사망률을 보인다. 흑인이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사회적 열위에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나은 인도계 이민자들 역시 백인 남자에 비하면 코로나 사망률이 두 배 높았다. 코로나의 확산과 치명성이 인종에 따라 달리 작동한다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무관하다고 단언할 수도 없는 셈이다.

‘방역의 정치화’와 ‘착한’ 국민
필자는 소위 ‘밤 도깨비’ 같은 체질이다. 해가 진 다음에 글을 쓰는 게 편하다. 글이 잘 안 써지면 종종 밤 산책을 한다. 오후 9시 이후 영업 제한으로 인해 텅 빈 거리를 걷다보면 깜짝 놀라곤 한다. 아무도 없는 길에서도 굳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을 참 많이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야외에서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 질병관리청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그렇다. 다른 사람과 2m 이상 거리를 두면 된다. 길거리에서 흡연자를 피하듯이 피하면 코로나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단, “다중이 모이는 집회·시위장, 500인 이상 모임·행사 등 행정명령 대상 장소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 산책을 하는 필자가 마주치는 사람 열 명에 아홉 명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참으로 ‘착한’ 국민들이다. 

문제는 국민은 착한데 국가가 나쁘다는 데 있다. 마스크를 쓰라면 쓸 필요가 없는데도 쓰고, QR코드를 찍으라면 단 한 사람도 거부하지 않고 찍는 국민들이다. 그런데 국가는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확실한 강제성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직 ‘권고’만을 남발한다. 왜일까? 강제력을 지니는 영업 제한을 하면 공식적으로 손실 보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명령’하는 대신 ‘권고’한다. 손해를 보겠지만 그 손해는 너희가 알아서 감당하라는 것이다. 

게다가 일부 지자체는 선거를 앞두고 1인당 10만원씩 현금 살포를 또 하겠다고 한다. 코로나 국면에서 장사가 안 돼 문자 그대로 생사의 기로에 놓인 사람들이 있고, 일부에서는 돈이 남아돌아 부동산과 주식 시장을 활활 불태우고 있는데, 그런 차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죽어나가건 말건 대기업 정규직과 공무원들에게도 1인당 10만 원씩 용돈을 뿌리겠다는 이 나라에, 과연 정의는 있는가. 

지난해 봄 정부는 중국발(發) 외국인의 입국을 막지 않았다. 진작부터 단호하게 대응한 대만, 뉴질랜드, 호주 등은 2021년 2월 현재 확진자가 0으로 수렴하고 있다. 똑같이 반도체 호황을 맞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GDP(국내총생산)는 적자인 반면 대만은 3/4분기 기준으로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대만은 내수까지 살아났기 때문이다. 진정한 ‘방역 성공’은 그런 것이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 길고 고통스러운 시절을 강요하는, 설 명절에 다섯 명 모이면 이웃에게 신고 당할까봐 걱정해야 하는 우리는, ‘방역 성공’을 입에 담을 자격이 없다. 

한국 정부는 의료진의 희생을 쥐어짰고, 국민의 고통 분담을 당연한 것인 양 만끽하면서, 선거에서 톡톡히 재미를 본 후 ‘덕분에 캠페인’을 벌이며 공공의대 설립에 반대하는 의사들을 적폐로 몰아갔다. ‘방역의 정치화’를 가장 심하게 했고 지금도 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문재인 정권이다. 코로나 확산 1년, 이제는 차분하게 잘잘못을 따지고 책임을 물을 때가 됐다.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2021-01-31

[노정태의 뷰파인더⑲] 문재인 팬덤에서 보이는 친박연대의 그림자

 ‘부족주의’에 끌려 다니는 한국정치

●우상호·박영선의 ‘文대통령 생일축하’
●애착·동일시·모방·투사로 이어지는 팬덤
21세기는 다시금 ‘부족의 시대’
●아이돌 팬클럽 닮은 정치인 팬클럽
●부족 본능은 배제 본능, 敵이 필요
●투표용지와 스마트폰 통한 패싸움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2017년 4월 27일 경기 성남시 야탑역 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집중유세에서 지지자들이 문 후보의 연설에 호응하고 있다. [동아DB]
1월 24일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라디오에 출연해 “오늘은 문 대통령님의 69번째 생신”이라며 “축하드린다”고 했다. 같은 날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페이스북에 “오늘 문재인 대통령님 생신. 많이 많이 축하드립니다.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입니다!!! 벌써 대통령님과 국무회의에서 정책을 논하던 그 시간이 그립습니다”라고 썼다. 

두 사람 모두 여당 내 무게감 있는 정치인이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생일 축하를 주고받는 사적 친분이 있지는 않다. 그들은 왜 이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경선 때문이다. 일반 유권자 50%와 권리당원 투표 50%를 합쳐 후보를 결정하는데, 투표에 나설 만큼 적극적인 당원들은 문 대통령의 열혈 팬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문재인 팬덤’에게 잘 보여야 하는 것이다. 

정치인이 당선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것을 타박할 수는 없다. 정치인이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는 나라가 눈치를 보는 나라보다 좋은 나라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민주당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경선에 임하는 정치인이 문 대통령 팬덤의 호의를 얻고자 하는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지 않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집단을 조율하는 정치 제도다. 유권자는 연령, 지역, 학력, 소득, 성별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분된다. 정치인은 자신이 중요시하는 의제와 유권자가 원하는 의제를 조율해 선거의 승리를 꾀한다. 하지만 팬덤 정치는 이와 같은 통상적 기준과 사뭇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겉보기에는 민주적인 듯 하지만, 민주주의를 내부로부터 파괴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느슨한 애착에서 완전한 몰입까지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월 27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에서 열린 ‘민주당 정책엑스포 in 서울’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필자는 세상 속 온갖 주제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다. 스포츠 팀을 응원하는 팬의 심리가 그 중 하나다. 

스포츠가 주는 즐거움을 모른다는 뜻은 아니다. 가령 손흥민이 멋진 골을 넣는 모습을 보면 즐겁고 흥분된다. 하지만 손흥민의 소속팀인 토트넘 핫스퍼를 응원하며 승패에 일희일비하고, 라이벌 팀인 아스날에 분노하며 적개심까지 드러내는 행태는 잘 이해하지 못 하는 편이다. 

스포츠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수 팬, 영화 팬, 드라마 팬, 수많은 팬이 뭉쳐 서로 화를 내고 공격한다. 왜 사람들은 자신과 거의 무관한 집단에 가상의 소속감을 느낄까? 본인의 충성심을 드러내기 위해 돈과 시간을 쓰고, 정서적 에너지를 쏟아 부으며, 때로는 폭행이나 그보다 더 심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는 걸까? 

영국의 사회학자 앤드류 튜더(Andrew Tudor)는 팬덤이라는 대중문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1969년 학술지 ‘스크린’(Screen)에 ‘영화와 그 영향의 측정’(Film and the Measurement of its Effects)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대중문화 소비자가 팬으로서 받는 영향을 네 가지 모델로 정리했다. 

첫째, 정서적 애착(emotional affinity). 대중은 특정한 스타를 향해 느슨한 애착을 느낀다. 둘째, 자기 동일시(self-identification). 영화의 관객이 스스로를 영화 속 등장인물과 동일시한다. 셋째, 모방(imitation). 영화 밖 현실에서도 영화의 등장인물을 모방한다. 넷째, 투사(projection). 영화 속 등장인물의 외모와 행동을 모방하는 차원을 넘어, 심리적인 차원에서 완전히 몰입한다. 

이러한 고전적 분석틀은 20세기 중후반까지 상당히 큰 설득력을 발휘했다. 가령 엘비스 프레슬리가 스타가 되자 젊은 남자들이 엘비스 프레슬리의 이른바 ‘군함머리’를 흉내 냈다거나,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본 후 오드리 햅번처럼 검은 스커트에 진주목걸이를 하고 머리를 틀어 올린 여자들이 대거 출현했다거나 하는 현상을 이해하는 데 요긴했다.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 스티븐 핑커는 그의 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제임스 딘이 주연한 ‘이유 없는 반항’의 흥행 이후 청소년 사이에 칼싸움과 난폭운전이 늘어났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국내의 경우에도 비슷한 사례는 흔히 발견된다. 지금도 연예인 누가 입었다는 옷이나 들고 행사장에 나타났다는 가방이 품절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이 다반사다. 애착, 동일시, 모방, 투사로 이어지는 팬덤의 고전적 해석 모델은 여전히 어느 정도의 설명력을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미래 예견한 1988년作 ‘부족의 시대’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20세기까지는 저 모델만으로 충분한 설명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21세기의 팬덤 문화를 모두 이해하기에는 부족하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같은 취향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상시적으로 의사소통하고 있다. 이에 같은 ‘부족’을 형성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앤드류 튜더의 설명은 스타와 팬의 1:1 관계를 전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팬덤 현상의 특징을 이해하려면 팬덤 상호간의 관계를 눈여겨봐야 한다. 좀 더 과감하게 말하면 스타와 팬의 관계보다 팬덤과 팬덤 사이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면모를 잘 보여준 작품이 ‘응답하라 1997’이다. 주인공 성시원(정은지 분)은 고등학교 2학년이자 H.O.T의 열혈 팬이다. 당연히 H.O.T 팬클럽에 속해 있다. 하지만 그가 H.O.T, 그 중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토니 안과 맺는 정신적 관계는 앤드류 튜더의 설명처럼 직선적이지 않다. 수많은 다른 H.O.T 팬, 그리고 젝스키스 팬클럽과의 관계 속에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두 아이돌 그룹의 팬들은 서로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고, 험한 말을 주고받으며, 끝나지 않는 자존심 싸움을 벌인다. 이에 따른 감정의 앙금은 성인이 되어서까지 남아 있다. 대체 팬이 뭐라고, 팬클럽 활동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자신을 한 집단에 동일시하면서 동시에 다른 집단을 적대시한단 말인가.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간은 거대한 현대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근본을 이루는 바탕은 150명 내외의 부족 사회를 이루고 있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프랑스 사회학자 미셸 마페졸리가 쓴 책의 제목을 빌리자면 21세기의 우리는 다시금 ‘부족의 시대’에 살고 있다. 

1988년 발행된 ‘부족의 시대’는 미래를 예견한 책이다. 오늘날의 사회는 국민국가라는 추상적이면서 공식적인 정치 기구와, 개별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경험하는 개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이 근대의 세계관이다. 하지만 마페졸리는 그런 근대적 구도가 곧 허물어지고 대신 감성을 공유하는 소집단, 즉 ‘부족’으로 나누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개인은 사라지고 대신 ‘부족원’만 남는 셈이다. 

과거의 부족은 씨족과 혈통을 중심으로 구분됐다. 오늘날의 부족은 문화, 스포츠, 성별과 성적 정체성, 종교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결정된다. 또 원한다면 (고통스럽겠지만) 탈출해 다른 부족의 일원이 될 수도 있다. 마페졸리는 개인주의가 쇠퇴하고 “다원주의, 수평적 네트워크, 감성적 연대, 촉각적 관계”에 기반하고 있는 신부족주의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어른의 짐을 벗어던진 어린아이가 돼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게 그의 ‘포스트모던’한 입장이었던 셈이다.

‘바보 노무현’에서 ‘친박연대’까지
2008년 3월 31일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서 서청원 당시 친박연대 대표와 총선 출마자들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의 사진을 넣은 유세차량을 세워놓고 합동 유세를 하고 있다. [동아DB]
문제는 팬클럽의 시대, 부족의 시대가 문화·예술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데 있다. 21세기가 되자 아이돌 팬클럽의 작동 방식을 참고해 만들어진 정치인 팬클럽의 시대가 열렸다. 그 주인공은 지역감정과 맞서 싸우며 낙선에 낙선을 거듭한 ‘바보 노무현’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급부상할 무렵, 갓 대학교에 들어갔던 필자 역시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참여했다. 노란색 돼지저금통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인터넷에 노무현에 대한 좋은 소식을 퍼다 나르며 글을 쓰는 등 ‘노무현 부족’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당시는 언론 뿐 아니라 기성 정치권 모두가 그 파급력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노무현은 수없이 많은 ‘각본 없는 드라마’를 쓰며 대통령이 됐다. 

‘바보 노무현’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대중 동원과 조직 모델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팬덤에 서 꽃을 피웠다. 박근혜의 팬덤 정치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그가 탄핵당한 지금은 실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200818대 총선에서 ‘친박연대’가 거둔 성과를 돌이켜보자. 정당득표율 13%, 지역구 6석을 당선시켜 총 14석의 의석을 얻었다. 정작 박근혜 본인은 당시 한나라당에 적을 두고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바깥에서 박근혜의 이름을 걸고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이 당선될 정도로 강력한 팬덤 정치가 작동했다. 

팬클럽은 한국 정치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매김했다. 달리 표현하면 오늘날의 한국 정치는 공적 조직인 정당, 그리고 개인으로서 판단하고 투표하는 유권자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보다는 누구 팬의 숫자가 가장 많은지, 누구 팬이 가장 극성맞은지, 누구 팬클럽 간에 싸움이 붙었는지 말았는지 같은 요소가 가장 중요해져버렸다. 우상호와 박영선이 문재인 팬클럽의 눈치를 보며 ‘대통령 생신 축하’를 크게 외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가 인간인 이상 부족주의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정치는 가장 공적인 영역이자 많은 이들의 이해관계가 드러나고 조율돼야만 하는 분야다. 정치가 부족주의에 끌려 다니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바람직하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을 보며 충격을 받은 미국의 지성계가 치열한 성찰 끝에 얻은 결론이기도 했다. 예일대 로스쿨 교수인 에이미 추아는 ‘정치적 부족주의’의 서문을 열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간에게는 부족 본능이 있다. 우리는 집단에 속해야 한다. 우리는 유대감과 애착을 갈구한다. 그래서 클럽, 팀, 동아리, 가족을 사랑한다. 완전히 은둔자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수도사도 수사도 교단에 속해 있다. 하지만 부족 본능은 소속 본능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부족 본능은 배제 본능이기도 하다.” 

마지막 문장이 핵심이다. 부족 본능은 배제 본능이다. 부족 본능에는 필연적으로 ‘우리’와 ‘저들’을 갈라놓는 세계관이 반영돼있다. 그러므로 토트넘 핫스퍼의 팬과 아스날의 팬은 서로 반목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한 ‘적’을 필요로 한다. 

부족주의의 작동 방식은 나치를 옹호했던 독일의 헌법학자 칼 슈미트의 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칼 슈미트는 그의 주저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서 “정치란 적과 친구를 나누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칼 슈미트의 세계관 속에서 정치에는 상위의 목적이 없다. 너는 내 편이냐 아니면 적이냐, 이 질문을 던지며 편을 갈라 싸우는 게 정치의 본질이고 그것이 전부다. 정치를 현실적으로 묘사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정치 허무주의’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돌멩이와 곤봉 대신 투표용지와 스마트폰
팬덤에 의해 유지되고 작동하며 끌려가는 정치가 위험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정치는 스포츠가 아니다. 응원하는 팀이 이기는 것을 보고 즐기기 위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해결해야 할 수많은 현실의 안건이 있다. 설령 다수가 아닌 소수의 의견이라 해도 경청하고 존중해야 한다. 또 소수자, 아니 인간으로서 저질러서는 안 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 해도 보호받아야 할 인권을 갖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법치주의와 다원주의가 필요하다. 선거에서 졌든 이겼든 누구에게나 빼앗길 수 없는 인권이 있다. 또 모든 정치 행위는 법에 따라 이루어진다.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멸문지화’를 당하지 않는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권력을 가진 자들은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민주주의를 내부로부터 파괴하려 들 것이다. 온갖 폭력과 불법적 수단을 동원해 민주적으로 집권한 나치가 적에게는 민주주의를 허락하지 않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 편과 남의 편을 나누고, 선거를 통해 우리 편이 더 많다는 점을 확인하여, 이긴 쪽이 진 쪽의 의사를 완전히 묵살하고 자기 멋대로 하는 것.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돌멩이와 곤봉 대신 투표용지와 스마트폰을 손에 쥔 부족주의자들의 패싸움일 뿐이다. 물론 모든 정치의 근간에는 적과 친구의 구분이 깔려 있다. 하지만 특히 우리는 북한이라는 안보의 위험을 무릅쓰고 있으며 대외적인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 한국정치는 여야를 막론하고 적용될 수 있는 공공선을 발견하고 추구하기 위한 도구로 작동해야 한다. 그러자면 법치주의에 뿌리를 두고 다원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해야만 한다. 

문 대통령 팬클럽의 환심을 끌기 위해 여당의 중진급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생일 축하 메시지를 쏘아 보내던 모습을 보며, 우리의 소중한 민주주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던 이유다. 한국 정당정치에 팬덤 문화와 부족주의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basil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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