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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9

주류 교체? 꼰대 교체!

이번 총선을 ‘주류 교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꼰대 교체’가 더 맞는 표현입니다. 왜 꼰대냐고요? 말이 안 통하니까 그렇습니다.

생각해보시죠. 1992년 총선, 그 유명한 ‘초원복집’ 사건이 터졌습니다. 지역감정을 유발시켜서 총선에서 이겨먹겠다는 내용이 담긴 녹음 테이프가 공개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습니까? 민주자유당이 이겼죠. 왜냐? ‘우리편’이니까 옳건 그르건 찍어준다는 꼰대들 덕분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황운하, 김남국, 최강욱, 이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울산선거 청와대 개입 사건이라던가, 팟캐스트 여성 모욕 발언이라던가, 이런 게 국민들에게 다 알려진 상태에서도 그렇습니다. 왜일까요? 올드 꼰대들이 주춤한 사이, 뉴 꼰대들이 묻지마 투표를 해서 아니겠습니까?

왕년의 꼰대들에게도 할 말은 있었습니다. 빨갱이들은 안 돼, 김대중이는 안 돼, 뭐 그런 것 말이죠. 그들은 그런 소리를 찍찍 내뱉고는 다짜고짜 1번을 찍으러 갔습니다.

지금의 꼰대들과 다를 게 없죠. 새누리당은 안 돼, 쟤들은 수꼴이니까 안 돼, 안철수도 안 돼고 심상정도 안 돼고 다 안 돼, 아 몰라 나는 청와대가 선거개입했다는 증거가 수두룩해도 문재인한테 힘을 실어줄 테야…

한심스러운 상황입니다. 어째 나라 수준이 1992년과 다를 바 없을까요. 황운하가 국회의원 당선되는 2020년이, 정형근이 국회의원 당선되던 1996년과, 뭐가 그렇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런지요.

불과 5년 전만 해도 저는 제가 이런 세상에 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힘을 가지면 좀 더 나은 세상이 될 줄 알았죠.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최근 뼈저리게 배워나가는 중입니다. 그래도 웃으며, 힘내서 살아봅시다.

2020-04-16

아직 개표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2004년 총선, 노회찬이 소수점 차이로 김종필을 꺾고 국회에 입성했던 그때를 아직도 기억한다. 당시 나는 민주노동당이 급성장하여, 마치 영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리버럴 파티를 압도하고 보수당과 양당 구도를 이루는 미래를 꿈꿨다.

어린 시절이었다. 하지만 당시 내가 아무리 원숙했다한들, 정의당이 된 민주노동당이 NL 주사파 주류가 떼어준다고 꼬여낸 비례 의석 몇 개에 눈이 팔려, 원칙이고 뭐고 다 갖다바치며 공수처같은 악법에 동의할줄은 몰랐을 것이다.

개표 결과가 최종적으로 어찌되건, 이미 내 피는 식었다. 내가 현실 정치에서 희망을 보던 나날은 여기서 마무리되는 듯하다.

2020-04-12

21대 총선 과정에서 확인된 몇 가지

  • ‘소수 정당을 우대하는 제도’ 같은 것은 불가능하다. 제도를 어떻게 만들어도 결국 정치 지형은 정치인과 유권자가 만든다.
  • 우리가 잊고 있던, 단순다수대표제에 기반을 둔 소선거구제의 장점.
    1. 선거에 참여하는 모든 유권자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2. 선거에 참여하는 모든 후보자가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3. 유권자에게 ‘저 인간 떨어뜨리기’의 권리가 주어진다. 반면, 비례대표제의 경우, 유권자는 무슨 수를 써도 타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를 떨어뜨릴 수 없다.
  • 애초에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을 촉진하는 제도’가 왜 필요한지부터 물어봐야 할 시점이다. 그것이 왜 당위적 선으로 여겨지는가? 어차피 국회에 보내놓으면 거대 여당/야당 따까리 짓이나 하는데?
  • 소선거구제이며 비례대표 따위 없는 영국의 정치.
    • 한국보다 훨씬 역동적이다.
    • UKIP이나 스코틀랜드 국민당 같은 소수 정당이 출현하여, 대중을 설득하고, 민심을 움직여, 소선거구제를 뚫고 의석을 얻어낸다.
    • 그 역동적 과정 속에서 영국은 새로운 정치적 의제와 대립 구도를 얻었다(그 의제가 좋은 의제라는 뜻은 결코 아님).
  • 반면 한국은, 제도만 신나게 뜯어고쳤지, 5년 전과 다를 바 없는 대립 구도 속에서, 현재의 국면에 걸맞는 정치적 의제를 내놓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
  • 왜 한국의 정치인들은 ‘정치’를 하지 않는가? 왜 ‘제도’ 탓이나 하는가?
  • 이것은 정치인들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생각하기로.

2020-04-06

2000년대 초, 인터넷과 페미니즘에 대한 단상

무리한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이유는 촬영자와 모델의 갑을 관계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전문가이든 아마추어 동호회원이든 ‘촬영을 거부한 모델’이라는 소문이 나면 사진 업계에 발을 붙일 수 없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 관계를 악용해 모델을 성적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비공개 촬영회가 2000년대 초반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게 곽씨의 증언이다.

허정헌, ‘모델이 신었던 스타킹 나눠 드려요’ 도 넘은 촬영회, 한국일보, 2018년 5월 21일. http://m.hankookilbo.com/News/Read/201805211066365076

2000년대 초반. 디씨 부흥기. 월드컵 하고 세상 다 ‘우리 거’라고 믿던 때. 페미니즘이 여성만이 아닌 ‘모두’의 것이던 시절.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부장관을 ‘흑미추녀’ 같은 식으로 조롱하는 영상을 만들고 유포해도 ‘진보적’으로 괜찮다고 여겨지던 시절. 여자니까 박근혜를 지지할 수도 있다던 최보은을 김규항이 두들겨 패놓은 탓에, ‘젖녀오크’ 같은 언어 성폭력에 감히 반발하지 못하던 시절. 다함께 여혐하던 시절.

발기탱천한 진보남들의 부랄발광에 여성들이 장단맞춰주고 남성적 언어의 외피를 둘러쓰고 같이 놀았던, 혹은 그러지 않을 수 없었던 시절. 그게 존나 쿨한 줄 알았던 시절. ‘우리’가 이 시점에 ‘힘을 몰아주지’ 않으면 수꼴들이 부활한다는 협박이 날아오던, 그런 시절에 만들어진 여혐 템플릿들.

우파 남자들은 국가의 개입이 싫지만 남자의 성욕은 본능이라서, 좌파 남자들은 시장주의가 싫지만 가난한 여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라면서, 성매매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고 ‘이대 부르주아 꼴페미’를 욕하던 시절. 성매매도 일종의 서비스업이라고 ‘좌파 남자’들이 진보 사이트에서 히죽대던 시절.

* 일러두기: 표현이 다소 거칠지만 기록 및 공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예전에 썼던 트윗 타래를 블로그에 적어둡니다.

2020-03-31

무기력증을 치료하는 기적의 알약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어서 먹다가 만 건강보조제 말이다. 글루코사민이 됐건 밀크시슬이 됐건 비타민 ABCDEFG가 됐건 오메가 3가 됐건, 그냥 그거. 그게 무기력증에 정말 효과가 있다.

몇 알 먹다가 까먹거나 방치하고 있는 그 알약을, 하루에 하나씩 먹으면, 무기력증이 치료된다. 단, 끝까지 먹어야 한다. 한꺼번에 다 먹어치워도 안 된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데’ 싶은 것들이 머릿속에 쌓여 있으면 사람은 무기력해지기 때문이다. 뭔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그 뭔가를 해야 한다. 그런데 막상 하려니 너무 사소하고 시시한 일 같아서 안 하게 된다. 안 하면 안 하는 일이 쌓이고, ‘해야지 해야지’가 되어서, 정작 아무것도 못 하도록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그러므로 ‘사놓고 안 먹는 건강보조제’가 마법의 알약인 것이다. 그냥 내버려두고 있으면 우리의 정신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반대로 차근차근 먹어치우면 아주 작고 시시하지만 성취감이 생긴다. 그 성취감이, 특히 요즘처럼 사람들이 하염없이 집에 갇혀 보내는 시절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준다.

나 자신의 경험이기도 하다. 뭐였더라, 빈 통을 버린 다음 아예 까먹어버려서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사놓고 안 먹던 어떤 무의미한 알약을 매일밤 하나씩 해서 다 먹었다. 그랬더니 문득, 화장실에 걸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샀지만 설치 안 하던 수건걸이도 설치했고, 나사못이 빠져 기울어져 있던 천장 등도 5분만에 뚝딱 고쳤다.

이제는 역시 사놓고 안 먹던, 300알 넘게 들어있는 묵직한 종합비타민제를 비우는 중이다. 매일 밤, 자기 전, 하나씩. 이걸 먹고 내 컨디션이 좋아진다면 그것은 비타민의 힘이 아니다. 작지만 뭔가를 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긍정적인 활력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사람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든다. 이럴 때일수록 뭐라도 해야 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나서 내 경험을 적어보았다. 읽는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2020-02-12

박완서 (1)

박완서의 소설 "서글픈 순방"의 한 대목. 화자인 새댁은 적금 50만원에 문간방 전세금 40만원을 합쳐 90만원이라는 거금을 손에 넣었다. 그걸로 어디 변두리에 땅을 사고 움막을 지어 살면서, 벽돌이니 뭐니 하는 걸 하나씩 사모아 집을 짓자고 계획한다.

1975년에 발표된 소설에 묘사된 그 무렵의 주택 사정도 놀랍거니와, 더 놀라운 것은 '움막살이'를 대수롭지 않은 선택지 중 하나로 받아들이는 그 태연함이다. 1970년대의 어느 계층에게 움막살이는 인생이 폭싹 망해야만 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미래를 위해 참고 견딜 수 있는 어떤 디딤돌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20세기 중후반 고도성장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때로 너무 의아할 때가 있다. 그 무렵에는 모두 행복했고, 모두에게 꿈이 있었고,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진 것인 양 말하는 그 물결 속에서 소외감을 느낀다. 1983년에 태어나 90년대에 자란 내 기억만 보더라도, 우리의 20세기는 전혀 그런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시 박완서를 펼쳐보자. 영동고속도로 현장에 취직한 조카를 만나러 간 여성의 이야기인 "카메라와 워커"를 통해 그 시절로 돌아가볼 수 있다. 화자는 조카를 '임시직' 신세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회사 윗사람에게 '와이로'를 찔러주어야 하나 노심초사한다. 고도성장기에는 마치 비정규직이라는 게 없었던 것처럼, 일자리가 지천에 널려있고 청년의 꿈이 공정하게 펼쳐질 수 있었던 것처럼, 2020년 대한민국이 흠뻑 빠진 가짜 노스탤지어에 찬물을 끼얹는다.

내 짧은 견문의 한계일 수도 있고, 고도성장기의 단물을 받아먹었다는 어떤 집단 속에서 내가 성장기를 보내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내가 커온 세상은, 요즘 사람들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떠올리는 '쑥쑥 크던, 모두가 절로 부자가 되던' 그런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박완서의 단편들 중 툭툭 등장하는 묘사들 속에서 나는 대한민국의 20세기를 실감나게 재회한다.

아무튼 중요한 건 20세기의 한국이 그렇게 공정한 곳도 아니었고, 모두에게 잘 살 기회를 열어주고 있던 유토피아는 더더욱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많던 싱아를 먹던 사람들은 따로 있었고,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배고팠다. 심지어 그 시대를 나보다 오래 살았던 40대, 50대, 60대들 사이에서도 '옛날에는 우리나라가 살기 좋았다', '취업하기 좋았다' 같은 소리가 마치 사실인 양 오가는 모습을 의아하게 여기던 차에, 새삼스레 박완서를 읽다가 한 마디 적어본다.

2019-12-14

박하사탕(1999)

나는 이 영화가 개봉 후 한창 화제를 끌 때에도, 이창동이 영화감독을 넘어 문화부장관으로 승승장구할 때에도 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KBS에서 매주 금요일 방송하는 '한국영화 100년 더 클래식'을 통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돌아가고 싶다. 내가 <박하사탕>을 안 봤던 그 시절로.

<박하사탕>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단 한줌의 윤리적 자의식도 보여주지 않는 영화다. 아니, 그럴 수가 없다. 오프닝 크레딧이 뜰 때부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시간의 역순이라는 핑계를 대고 서사적 구성이 전혀 맞지 않는 '억울한 나님'들의 현란한 전시로 꽉 채워져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남들 때문이고, 여기서 그 '남들'은 대부분의 경우 여자이며, 여자 중에서도 특히 첫사랑인 순임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보면서 죽어라고, 정말이지 죽어라고, 여자 탓을 한다. 그가 80년 광주에 진압군으로 투입된 후 트라우마에 빠진 건 집에 돌아가고 싶었던 여고생 때문이다. 때문인가? 물론 영호의 자기 서사 속에서는 본인은 착하게 여고생을 집에 보내주고 싶었지만 뒤에 다른 군인들이 다가와서 쫓아내기 위해 허공에 총을 쏘다가 잘못 맞았다. 그러므로 영호는 피해자다. 영호가 피해자면 누가 가해자인가? '비극적인 현대사' 탓이기도 하지만 그 순간 그 자리에 나타났던 그 여자 탓이 없다고도 하지 않는다. 허공에 대고 총을 쏘는 그 쉬운 일조차 제대로 못 해놓고서(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사실, 순임이 겹쳐보이는 그 여고생을 영호가 일부러, 혹은 미필적 고의로 쏘아 죽인 것은 아닌지 의심해보아야 하지 않나?) 세상 모든 고통과 아픔을 짊어진다.

그의 인생에 나타나는 회상과 반추가 모두 이딴 식이다. 1984년, 신참 형사가 된 그가 본격적으로 타락의 길로 접어든 것은 또 어떤가. 고참들이 강요해서 고문을 하다 손에 똥이 묻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첫사랑 순임이 자신을 찾아와, 영호에게 '착한 손을 가졌다'는 둥 그의 상처받은 마음을 들쑤시는 소리를 한다. 그래서 평소에 본척만척하던 식당 종업원 홍자의 엉덩이를 더듬는다. 순수한 영혼이 상처를 받아 일부러 위악적 행동을 하며 순수한 그녀를 지켜주기 위한 행동인가?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어쨌건 이창동이 만든 영호의 서사란 '나는 울고 싶은데 네가 나타나서 내 뺨을 때려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호가 삐뚤어진 것에는 순임의 탓이 있다.

잘 따지고 보면 영호는 죽을 때까지 순임 탓을 한다. 혹은, 영호가 죽은 것에는 순임의 책임이 없지 않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짜여져 있다. 대체 어떻게, 마치 고르고13처럼 생긴 순임의 남편은 영호가 인생 최악의 위기에 몰려 있는 그 시점에 영호를 찾아낸 것인가? 전날 밤까지 의식이 있었다던 순임은 대체 왜 영호가 자신을 찾아오자 의식을 잃었나?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영호는 이해받지 못한 상처받은 영혼'이라는 억울억울 열매의 재료일 뿐이다. 그래서 영호는 죽는다. 순임과의 추억이 어린 그곳에서.

이렇게까지 순수하게, 100%의 네 탓으로, 100%의 억울함만으로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이창동은 그걸 해냈고, 특히 남자 관객들은 이 영화를 '크 캬 커' 소리를 내며 보았을뿐더러, 지금까지도 내 인생의 영화라는 둥 치켜세우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2000년대 초에 이런 영화를 보며 엄지척 눈물 주르륵 하던 남자들이 지금 한국 영화계의 어엿한 중견들이다. 한국 영화판에 온통 억울한 남자들이 가득하고, 다들 '씨-발'이나 외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 시발점이 바로 <박하사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나는 돌아가고 싶다. 이 영화를 모르던 그 순수의 시대로. 하지만 이미 봐버린 것을 어쩌겠는가. 영호라던가, 영호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1999년 무렵의 이창동과 달리, 나와 이 글을 읽을 당신은 스스로의 행위와 그 행위가 낳은 결과에 대해,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의 몫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며 결국 앞으로 나아가는 윤리적 주체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박하사탕>보다 더 나은 이야기를 보고, 읽고, 만들어가며 살아갈 자격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2019-09-29

'과거를 청산한다'는 말의 의미에 대하여

독일 재벌 가문 중 ⅓ 가량은 자손이 성년(16세-18세)이 될 무렵 서약서를 쓰게 한다. 지분 소유와 경영 개입이 주된 골자지만, 종교적 원칙에 충실한 삶을 산다거나, 공적으로 사진 찍혀 노출되지 않는다거나, SNS를 안 한다거나, 언론과 인터뷰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포함된다.

사실 독일은 미국 중국 다음으로 슈퍼리치가 많은 나라다. 하지만 이렇듯 부자들이 극히 몸을 사리는 문화로 인해 존재감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독일이 잘 사는 나라니 부자가 많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진짜 질문'은, 대체 왜 독일 부자들은 미국 부자들과 달리 자기현시욕을 억누르며 살고 있느냐일 것이다.

그 이유는 복잡하지만 간단하다. 1세대 부호들이 탑 랭커인 미국과 달리 독일 부자들은 대부분 기존 자동차/부품/유통업체의 상속자들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기업들은 직간접적으로 나치 시대에 협력자였다.

독일 (특히 북부) 특유의 경건한 개신교 분위기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이런 역사적 이유 때문이다. 나치 시대부터 재벌이었던 가문의 자손들이 바로 독일의 현재 상위 부호들이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 가능한 사실이 두 개 있다. 첫째, 독일을 '나치/과거 청산'의 모범적인 사례인 양 떠들어대는 국내의 분위기는 사실과 제대로 부합하지 않는다. 구체제에 협력하거나 그 일부였던 다양한 분야의 엘리트가 전쟁 이후에도 거의 같거나 비슷한 지위를 차지하고 살았던 것은 독일, 일본, 그 외 모든 전범국에서 마찬가지였다.

둘째, 돈의 역사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역사적 죄악'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따라서 새로운 사업 영역이 생겨나고 자본주의가 역동적으로 굴러가는 사회가 보다 낫다고 볼 여지가 있다.

IPO로 한탕 하고 '엑싯'하는데 혈안이 된 젊은 사업가들이 득시글거리는 자본주의 소굴 미국을 고까워하는 이들은 유럽, 독일을 어떤 이상적인 사회의 모델처럼 칭송하곤 한다. 하지만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등은 모두 자신이 창업자로서 부를 쌓은 1세대 슈퍼 리치이며, 이런 이들이 큰 부와 사회적 발언권을 확보한 나라가 미국이기도 하다. 이는 남의 눈을 피해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도 나치 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내려온 부를 간직하며 암암리에 정치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독일식 부자 모델보다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세상사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우리를 정답으로 이끌어주는 원칙은 있을 거라 믿는다. 사람이 노력한만큼 벌어서 먹고 사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다. 물려받은 부가 대대로 이어져 사실상 신분제로 고착되는 세상은 나쁜 세상이다. 혹은, 나쁜 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

과거를 '청산'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자본주의의 역동적 힘이 끓어오르지 않는다면, 대를 이어 내려오는 '묵은 돈'이 젊은 창의력과 에너지를 짓누르는 세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참고 기사: “Germany’s business barons are finding it harder to keep a low profile”. The Economist, 2019년 6월 15일.

2019-08-28

남학생 교육도 페미니즘의 문제인가

여학생들에 비해 남학생들이 집중 못하고 성적 떨어지고 사고 치는 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님. 사회적으로도 고민해볼만한 문제. 하지만 그것이 '페미니즘'이 해결해야 할 문제인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여성주의를 남성인권운동으로 만들어버리는 결과를 낳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애초에 여성을 구조적으로 차별하고 배제할 때에는 몰랐지만, 여성들에게 동등한 교육과 참정권을 제공하고 나니, 지식/산업사회의 구조에 남자보다 여자가 더 적합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음.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동등하고 공정한 대접을 받도록 하는 것. 낙오되는 남자들 부둥켜안는 건 별개의 문제.

남자가 공부 못하는 건 맞는데, 대학 전공에서 돈 되는 STEM은 또 남초임. 이것도 세계 공통. 페미니즘 교육의 주안점은 '얌전히 앉아있으면 칭찬받는 여자애들한테 밀려서 공부 못하는 불쌍한 남자애들'이 아니라, '공부를 잘 하는데도 돈 안 되는 학과를 강요받는 여자애들'에게 쏠려야 하지 않을까.

남자애들이 공부 못 하는 건 전 세계적인 현상인만큼, 그것을 '한국의 페미니즘'이 해결하려 드는 것은 어불성설. 반대로 말하면, 여자애들은 어릴 때부터 몇십분씩 책상에 앉아 공부하기에 적합할만큼 억압받으며 자란다. 문명화 과정에 적응 못하는 남성성의 문제. 그 현상을 다루고 있는 이코노미스트의 기사 "The Weaker Sex"는 그 자극적인 제목에 힘입어 널리 인용되고 있다. 저 기사의 논조에 전적으로 찬성하지는 않더라도, 한번쯤은 읽어봐야 함.

'학교에 적응 못하는 남자'라는 어떤 자연 상태에 가까운 생명체를 어떻게 현대 사회에 적합한 시민으로 재탄생시킬 것인가. 나도 관심이 많은 주제고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이기도 함. 하지만 이걸 '페미니즘'이 짊어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 개인적 입장. '남자 문제'는 남자의 문제고, 결국 남자들이 해결해야 한다.

참을성 없고 공부 못하고 말 안 듣는 남자애들이 여학생 여선생에게 끼치는 피해는 페미니즘 이슈. 하지만 그 남자애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하며 개선시킬 것인가는 페미니즘과 직접적 관련이 없음. 현실은 그런 남자애들이 '역차별' 안 당하게 근대 교육을 형해화시키자는 분들까지 나오는 지경. 페미니즘에 대한 반동적 역습, 이른바 '백래시'는, 바로 그렇게 '소외 계층 보듬기'의 탈을 쓰고 도래하고 있다.

2019-08-20

지행합일에 관하여

포이에르바흐에 대한 열한번째 테제는 하이게이트 묘역의 마르크스의 묘비에 새겨져 있다. “철학자들은 각기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해왔을 뿐이다. 문제는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이 테제는 일반적으로 철학의 영향력은 중요하지 않으며, 혁명적 실천이 관건이라는 식으로 독해되었다. 전혀 그런 종류의 뜻이 아니다. 마르크스가 말하고자 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수동적으로 해석하는 것만으로는 철학의 문제들이 해결될 수 없으며, 세계 속에 내재되어 있는 철학적 모순을 해결하는 것은 세계를 다시 주조하는 것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철학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세계를 바꿔야만 한다는 것이다.
43p, Singer, Peter, Marx: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University Press.

여기서 마르크스가 제기하는 문제를 '지행합일의 문제'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행합일이란, 통상적으로 그렇게 여겨지는 것과 같이 앎의 목표도 아니고 실천의 목표도 아니다. 그것은 앎과 행동함의 공통된 대전제인 것이다.

왜 실천하는가? 여기서 피터 싱어가 말하는 마르크스에 따르면 철학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실천하지 않는다면 철학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한층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세계에는 철학적인 문제 따위가 존재하는가? 아무튼, 우리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다면 그 해답은 우리의 손에 있지 않고, 해답이 없기 때문에 결국은 실천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앎과 실천의 문제를 이와 같이 엮어놓는 한, 실천하지 않을 경우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통속적인 지행합일에 대한 관점과 이 해석은, 비슷해보이지만, 사실은 같지 않다. 일반적으로 한국어에서 누군가에게 지행합일을 요구한다는 말은, 어떠한 윤리적 당위를 전제하고 있으며, 그 당위로부터 연역되는 기준에 삶을 맞춰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통상적인 의미에서 지행합일이란 '지'와 '행'의 분리 및 양자 사이의 닿을 수 없는 간극을 전제한다.

반대로 피터 싱어가 해석하는 마르크스의 철학은 '지'와 '행' 사이의 분리를 궁극적으로 부정하기 위해 지행합일을 주장한다. 물론 이것은 마르크스가 공부했던 헤겔 철학의 어떠한 해석을 통해 도출되는 당연한 결론이지만, 이 경우 우리는, 설령 그렇게 합일에 도달한다 해도, 그 '지'나 '행' 혹은 양자의 변증법적 종합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 진리에 대한 대응론적 관점에서는 검증할 수 없다. 이 경우 남는 것은 그저 막연한 '정치' 뿐이라는 비판이 가능해진다.

2019-07-16

바벨의 언어

바벨의 언어


나는 알고 있다
많은 끔찍한 일들은 보편적이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 없다.

(090427 0455)

2019-07-01

어딘가에서 어떤 주제에 대해 한 이야기의 편집본

북한 비핵화는 이제 물 건너갔습니다. 설령 김정은 정권이 핵무기를 포기할 의향이 생겨도, 평범한 북한 인민들에게 핵무기란 민족적/국가적 자존심의 상징물이 되었기에,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트럼프의 무계획적 충동과 그에 발맞춘 대한민국 청와대가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습니다.

북한 인민들에게 핵무기 보유란, 자신들이 경제 제재를 견뎌가며 얻어낸 일종의 보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박정희 하면 한국인들이 좋건 싫건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을 떠올릴 수밖에 없듯, 북한 인민들은 이제 아무리 김정은이 미워도 핵무기에 대해 애증 섞인 감정을 갖게 됩니다. 이제 북한의 핵 포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한국 내에서는 자체 핵무장을 하자는 목소리가 점점 커질 것이며, 저처럼 원론적인 평화주의적 입장에서 한국의 핵무장이 가져올 군비 경쟁의 심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대항할 논리가 마땅치 않게 됩니다. 일본도 무장을 가속화해나갈 것이고, 동북아 군비 경쟁은 점점 치열해져, 현 정권의 레토릭과 달리 평화는 더 멀어질 전망입니다.

미국 대선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달린 일이긴 하지만, 이란과 북한은 좋은 반대 사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란처럼 평화적으로 핵을 내놓으면 더 큰 수모를 당하지만, 북한처럼 핵을 들고 버티면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로 번개 하자고 하고 와서 사진 찍고 농담따먹기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모든 Rogue States에게 아주 좋은 선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판문점을 통해서건 중국을 통해서건 북한 영토에 잠깐 들어가는 게 어려운 일이어서 지금까지 미 대통령들이 안 하고 있던 게 아닙니다. 해봐야 미국이 얻을 국익 상 이득이 없고, 북한에게는 미국 대통령이 들어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막대한 홍보 이득이 되기 때문에, 제정신을 가진 미국 대통령은 아무도 그런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걸 트럼프가 하고, 한국 대통령이 enabling 하는군요.

실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그 역사 속에서 우리 한국인들이 승자가 아닌 패자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북한 인민들도 깨달았겠죠. 90년대 이후 겪은 그 모진 가난과 배고픔이 이 승리를 위한 것이었구나! 굶더라도 핵을 갖길 잘했다! 앞으로 저들이 어떤 감언이설로 꼬드겨도 절대 내놓지 말자! 이런 인식이 깔리면 설령 독재국가라 해도 민의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북한 비핵화는 종결됐습니다. 경제 제재를 백날 천날 해봐야 소용 없고, 만에 하나 전쟁을 해도 애국심 넘치는 북한 인민들이 자발적으로 핵을 감춰줄 것입니다. 정말이지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역사의 패배자가 되는 것이 바로 이런 기분임을 실감합니다.

'김정은은 핵을 원하지만 인민들은 쌀을 원한다' 같은 한국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본다면, 어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사람이 견디지 못하는 것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닙니다. 목적 없는 고통입니다. 어제 트럼프의 깜짝 방북으로 인해, 대북 경제 제재를 감내하는 북한 인민들에게도 '경제 제재를 참아야 할 목적'이 생겼습니다.

트럼프가 북한에 얼마나 큰 승리를 안겨줬는지, 그리고 그게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암담할 뿐입니다.

북한 체제의 기본 정당성 원리는 '배는 고파도 자존심을 세워준다'입니다. 한국 대통령을 꾸짖고, 한국 대통령은 찍소리도 못하고, 트럼프와 만나라고 중간에 다리 역할만 해주었으며, 미국 대통령까지 만났는데, 이 모든 것이 핵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북한 체제는 정당성을 얻었습니다. 수십만을 굶기건 수만명을 수용소에 보내건 말건, 북한의 내적 붕괴 가능성은 훨씬 줄어들었다고 해석하는 게 옳지 않을까 합니다.

이렇게 이념적/이데올로기적/종교적 장치가 국가의 기층 단위에서 한번 작동하면, 설령 상부구조를 무력으로 무너뜨려도 해당 지역을 평정하고 지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우리만치 어려워집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이슬람교에 기반한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그것이 기층에서 수용되고 나니, 미국이 아무리 애를 써도 밑에서부터 저항이 들끓고 진압이 안 되는 것을 연상해보시면 될 것입니다. 북한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주체사상이라는 유사종교가 그렇게 된 거죠.

지금까지 한국 경제란 미국의 군사적 보호와 핵우산을 전제로 해도 위험하다는 것, 그래서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적용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의 초기 출범 당시 북한 위험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에 주식시장이 쭉 렐리를 했는데, 이제 북한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두루 퍼지기 시작하고, (적어도 트럼프의) 미국은 이전처럼 한국을 군사적으로 보호할 의향이 없거나 매우 적다는 것도 잘 알려지고 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어찌 될까요?

2019-02-28

3.1 운동을 기념하여 고종의 장례 행렬을 재연한다?

'3.1 운동은 만세운동이 아니라 실은 고종 장례식이었다'는 말을 내가 처음 들은 것은 고등학교 때 한 교사의 입을 통해서였다. 그 맥락은 3.1 운동을 칭송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망국의 백성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것은 자주 독립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 고혈을 빨아먹은 왕의 죽음을 슬퍼해서라고 비아냥거리기 위해 그는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3.1 운동은 고종 장례식이었을 뿐'이라는 말은 실제로 그렇게 활용되어 왔다. 한국의 모든 것을 비하하며 일본을 칭송하는 이들이 즐겨 입에 담는 소리였다는 말이다. 고양이가 죽었는데 쥐들이 슬퍼하며 거리에 나섰고, 그걸 나중에 독립운동인양 포장했다, 조선인들의 '민도'는 예나 지금이나 그 모양 그 꼴이며 그렇게 선동에 놀아나는 우매한 것들이다, 이따위로 찍찍 내뱉는 소리. 그런 발언의 하나가 바로 '3.1절은 고종 장례식' 타령이었다.

그런데 대관절 어째서, 민족 정기 우뚝 세우기를 그렇게 좋아하고, 친일 잔재 청산에 목숨을 거는 현 정권에서, 고종의 장례 행렬을 재연한다고 나서고 있는 것일까? 한반도 거주민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폄하하고 깎아내릴 때 쓰던 레퍼토리를 왜 대한민국의 정부가 앞장서서 재연하고 있는 것일까? 대체 그들이 말하는 '올바른 역사인식'이란 무엇인가?

3.1 운동은 기념할만한, 기념해야 할 사건이다. 죽은 왕의 시체를 밟고 주권자로서의 국민이 탄생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내내 차별과 멸시의 대상이었던 평안도 사람 함석헌이 회고했던, 왕이 아닌 국민이 주권자로 재탄생한 날이 바로 3.1절이다. 이렇게 말이다.

그런데 함석헌의 이야기를 꺼낸 건 국가나 민족과는 다른 차원에서 만세운동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도 그때 들었어. ‘여러분이 다 나라의 주인이니까 누굴 믿지 말고 다 일어서서 만세를 불러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 독립이 됩니다.’ 그런 말 사천 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들어본 소리거든요. 단군이 계실 땐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국가라고 이름을 걸고 한 이후에 언제 그런 말을, 더구나 평안도 놈들이 들어봐요?” 함석헌은 당시 이승훈의 연설에서 사람들이 받은 충격을 그렇게 요약했다. 그때 사람들이 처음 들어본 것은 ‘나라의 독립’이 아니라 ‘당신이 주인’이라는 말이었다.
고병권, "함석헌이 겪은 3·1운동", 《경향신문》, 2019년 2월 24일.

3.1절에 고종의 장례 행렬을 복원하겠다는 사람들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4.19 기념 행사에서 이승만을 추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1919년 3월 1일은 한반도의 거주민들이 왕정을 떨쳐내기 시작한 날이다. 그걸 '죽은 왕을 기억하는 행사'로 바꾸고 싶어하는 자들은, 민주주의자 행세를 하는 왕당파에 불과한 것 아닌가.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며, 왕족과 귀족을 용납할 수 없는 평민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만 '대한독립만세'는 진정한 의미를 지닌다.

2019-02-03

<로마>에 대해 이것저것

  • 당연히 결말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1.

<로마>는 한 가정부,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식모의 눈으로 바라보는 어떤 가족의 한 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서사의 중심에 선 인물은 식모로 일하는 클레오이지만, 작품의 눈높이는 어린 시절의 감독 본인에게 맞춰져 있다. 아마도 막내아들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2.

한국어로는 작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성체축일 대학살'이 언제인지에 대해서조차 알기 어렵다. TIME지의 기사에 따르면 1971년 6월 10일, 정부가 훈련시킨 깡패 집단인 로스 알코네스(Los Halcones, 영어로는 Falcons(매))가 시위 현장에 투입되었다. 마치 다른 학생운동 정파인 것처럼 위장하여 살인극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클레오의 남자친구였고 그를 임신시킨 후 외면해버린 페르민이 티셔츠 차림이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씨네21>은 로마를 마치 별도의 도시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알폰소 쿠아론이 택한 영화의 재료는 1970년대 초 멕시코의 한 도시, 로마에서 살던 당시 3년간의 기억이었다." 그런데 사실 로마는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 내의 한 구역의 이름이다. 물론 나도 가본 적은 없지만, 구글 지도로 확인되는 정보만 놓고 봐도, 멕시코시티의 한복판에 위치한, 옆에 큰 공원을 끼고 있는 멋진 곳이다. 구글 지도의 스트리트 뷰로 둘러볼 수 있다.

2019년인데, 인터넷으로도 확인 가능한 정보를 찾지 않은 채 기사를 쓴다. 다른 이들은 그런 기사를 보고 베낌으로써, 한국어로 유통되는 정보의 질은 나아지지 않는다.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지겹다.


3.

그래도 국내에 나온 기사를 통해 알게 된 정보들이 도움이 되긴 한다. 가령, 알폰소 쿠아론 본인이 직접 촬영까지 했다고 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카메라는 타일이 깔린 바닥을 보고 있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클레오가 물을 붓고 청소를 한다. 어떤 곳에는 물이 고이고 다른 곳에는 물이 빠진다. 거품이 일어나고 부서지고 흘러간다. 고인 물 위로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가 비춰 보인다. 이 단순한 쇼트부터 너무도 아름다워서, 이것만 두 시간을 보고 있어도 만족할 수 있겠다는 기분이 들 지경이다. 물, 그림자, 거품. 극도로 단순한 구성 요소들을 섬세하게 담아낸 화면이 실로 압도적이다.

<로마>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 마스킹(영사기가 빛을 쏘지 않는 스크린을 암막으로 가리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마스킹이 없다면 화면 바깥에서 허옇게 빛이 일어난다. 극중의 1970년 12월 31일 밤 11시 무렵 발생한 산불의 디테일 같은 것이 온전히 전달되기 어렵다.

알폰소 쿠아론 본인이 연거푸 강조했다시피 이 영화는 돌비 애트모스 시스템이 갖춰진 극장에서 봐야 제대로 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돌비 애트모스 시스템이 갖춰진 명필름아트센터에서 관람해본 결과, 그 말이 사실이었다. 돌비 애트모스 시스템은 전방 뿐 아니라 측면과 후방, 심지어 극장의 지붕에도 별개의 스피커를 설치하여 바닥을 제외한 모든 방향에서 사운드를 제공하는 방식인데, 영화를 보면 마치 <로마>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로마>는 멕시코시티를 주요 무대로 삼는 작품이며, 멕시코시티는 소음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로마>는 카메라가 찍어낸 화면 뿐 아니라 마이크로 담아낸 사운드를 통해서도 관객을 압도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멕시코시티를 가득 채우고 있던 소음을 담아낸 후 그것을 다시 설계하여 배치하는데, 다른 극장에서 볼 경우 이런 감상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집에서 본다면 더더욱 그렇다. 아이들의 어머니 소피아가 큰 차를 몰고 가다가 어떤 소음을 만들어내는데, 돌비 애트모스 시스템이 갖춰진 극장에 앉아있으면 그 고통을 거의 온전하게 전달받을 수 있다.

작품의 결말이자 하이라이트인 대목에서 몰려오는 파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로마>의 힘은 거기서 나온다. 알폰소 쿠아론은 아주 소박한 소재를 통해 엄청난 숭고의 체험을 전달할 수 있으리라는 비전을 갖고, 확고하게 실행에 옮겨, 성공했다.


4.

그런데 나는 알폰소 쿠아론이 제공하는 숭고의 체험에 압도되지 않았다. '이 사람이 관객인 나에게 숭고함을 느끼게 하려 했다'는 사실만큼은 절감했고, 이렇게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장악하려 드는 영화를 본 것은 실로 오랜만이어서, 경탄했다. 하지만 나는 몰입하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작품의 소재와 이야기의 전개 자체가 계속 소격효과를 불러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클레오는 페르민에게 버림받았다. 소피아도 남편에게 버림받았다. 두 여성은 임신과 출산 과정을 거치며, 바다에서 빠져 죽을뻔한 아이들을 건져내면서, 단단한 연대를 이룬다. 바닷가의 그 장면은 실로 아름답다. 완벽하다. 숭고하다. 하지만 껄끄럽다. 계속 식모로서 살아가고 있는 클레오를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 자체에 내가 동감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멕시코의 원주민들은 스페인어를 쓰는 이주민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도시로 몰려와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간다. 때로는 농장주를 습격해 땅을 빼앗기도 하지만, 정복자의 후예들과 미국인들은 총 쏘는 연습을 하며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사격을 여성과 아이가 고루 참여하는 레포츠인 양 포장해서 말이다.

이러한 현실을 굳이 '빼앗는 자'와 '빼앗기는 자'로 양분해본다면 감독 자신은 의심할 여지 없이 '빼앗는 자'의 편에 서 있었다. 멕시코시티의 로마라는 곳에서 원주민 식모를 두고 살아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가 식모살이를 하던 원주민의 관점에서 1970년대를 돌이켜본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일종의 서사적, 혹은 윤리적 도박이 된다.

여기서 오해를 막기 위해 말하자면, 알폰소 쿠아론은 그 도박에서 잃지 않았다. 그는 '가진 자'의 눈으로 '못 가진 자'를 바라보는 이야기를 만들 때 빠질 수 있는 모든 함정을 영리하게 비켜나갔다. 그러나 실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성공했다는 말과 동일하지는 않다. 클레오와 소피아는 개인적이지만 큰 사건들을 겪으며 단단한 정서적 유대를 맺게 되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로마>의 서사는 그 어떤 비윤리적 선택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사랑으로 맺어진 그들의 관계는 여전히 식모와 고용인이다. 클레오는 여전히 바깥채에 살며 따로 밥을 먹고 빨래를 하며 개똥을 치울 것이다. 성인이 되고 헐리우드에서 스타 감독이 된 알폰소 쿠아론은 수십년만에 다시 고향에 돌아와, 본인의 어린 시절을 보살펴준 식모와 꼭 닮은 원주민을 찾아내어 카메라 앞에 세워 연기를 시켰다. 자신을 키워준 식모와 같이 <로마>를 보기까지 했다("클레오에 해당하는 실제 인물은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영화가 초연될 때 함께 <로마>를 감상했다고 한다."). 이 모든 과정을 비윤리적이라고 지탄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런데 과연 감동적인가?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감동'을 '향유'해도 되는 것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5.

그렇다면 대체 뭘 어쩌라는 것인가? 나 자신에게 수없이 질문을 던져봤는데, 잘 모르겠다. 너무 잘 찍었고 굉장히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냈다. 지금 시대의 제1세계 관객들이 불편해할 수 있을만한 함정은 전부 피하면서도, 멕시코의 현대사 뿐 아니라 코르테스의 아즈텍 제국 정복 이후 진행되어온 수탈의 역사까지 묵직하게 담아내고 있기도 하다. 이런 소재를 영화로 만든다면 이보다 잘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알폰소 쿠아론이 목표로 삼고 있는 관객이 아니다. 그 사실을, 영화를 보고 와서 곱씹는 지금까지도 실감한다.

우리가 영화를, 혹은 그 외의 창작된 서사를 소비하는 것은 그것이 완벽해서도 아니고 그 어떤 흠이 없어서도 아니다. 보는 이에게 일말의 불편함도 없게 하겠다는 의지로 충만한 몇몇 작품들(머릿속에 몇 개의 예시가 지나가지만 굳이 거론하지는 않겠다)일수록, '나는 정치적으로 완벽하게 올바른 작품의 팬이다'라고 우기는 소위 '팬덤'에 의해 문제가 발생하는 역설도 종종 발견되곤 한다. 윤리는 창작물이 아니라 창작물을 만들고 즐기는 사람의 몫일테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로마>는 가장 좋은 환경에서 볼 이유가 충분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라는 매체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여러 번 봐야 한다. 하지만 그 소재와 이야기의 전개 등을 되짚어보면, 단순하고 상쾌한 감동 따위는 점점 설 곳을 잃는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게 무슨 해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런 감상문을 남기는 것이기도 하다. 분명 나 말고도 비슷한 고민에 빠져든 사람들이 있을테고, 누군가는 말문을 열어야 하니 말이다.

2019-01-15

미세먼지 속에서 에너지 문제를 생각하다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은 어두컴컴한 날에 과연 태양광이라고 제대로 돌아갈까? 미세먼지 농도가 높으면 높은 확률로 바람도 잠잠하게 마련인데, 풍력발전기가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나 있나? 당연히 원자력밖에 답이 없다. 대중들이 진실을 깨달아가자 뻔한 허위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분들이 아직도 너무 많다.

4세대 원전 상용화를 최대한 빨리 이룩하고 최고의 속도로 전 지구에 보급하여, 운송수단에 투입되는 화석연료까지 모두 원자력과 기타 비탄소에너지로 전환하지 않으면, 100년 후 인류의 미래는 심히 암담할 것이다.

지금까지 통용되는 기존 '환경주의'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UC 버클리 캠퍼스 같은 곳에서 노닥거리던 히피들이 그 골자를 짠 것이어서,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과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에 둔감하다. 사람이 얼어죽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곳이 바로 그곳이니 말이다. 배부른 놈들이 되는대로 지껄여놓은 한가한 소리들...

어릴 때 미국에서 만들어져 일본 건너온 환경주의 책 보고 여러 면에서 황당했다. '잔디밭에 스프링쿨러로 물을 뿌리지 맙시다', '소다 캔 식스팩을 사면 딸려오는 고리를 잘라서 버립시다' 등, 미국에서나 하는 낭비를 제3세계 한국인더러 하지 말라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헛웃음만 나온다.

한국에서 탈원전합시다 원전 하나 줄여요 웅앵웅 하는 소리에 혹하는 것도 대체로 중산층이거나 그 이상, 내지는 문화적 자산이 충분한 계층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풍요가 그 어떤 경우에도 지켜진다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에, 산업적으로 발등 찍는 정책도 듣기에 그럴싸하면 지지한다. 미국의 상위 10%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우리는 질문을 해야 한다. 집집마다 광활한 잔디밭이 딸려있고 거기에 스프링쿨러로 잔디밭에 물 뿌리는 놈들이 만든 '환경주의'를 21세기에 중국발 미세먼지 퍼마시는 한국인들이 왜 곧이곧대로 따라야 하냐고.

캘리포니아 사는 여러분은 모하비 사막을 태양광으로 싹 덮던 말던 알아서 하시고, 여기는 원전 깔아야 한다. 그래야 가난한 노인들이 얼어죽지 않고, 어린 아이들이 나이 들어서도 견딜만한 기후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2018-01-06

〈1987〉은 여성을 배제하는 영화인가

나는 〈1987〉이 여성을 배제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586세대가 내뱉는 승리의 함성과도 같은 이 영화 속에서, 여성들은 온당히 받았어야 할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단지 87년 6월 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허구의 서사를 창작하는 일에 대한 인식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적인 현상이다.

장준환 감독과 김경찬 작가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그들이 여성 캐릭터에 대해 내린 판단을 보다 정확히 서술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픽션을 창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직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시점에서만 '현실'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 결과 있어야 할 여성들의 목소리는 사라졌고, 대신 남은 것은 '그 모든 민중'의 대변자인 연희(김태리 분)라는 '순수한 여대생' 뿐이다.

김경찬 작가와 이우정 제작자가 〈씨네21〉과 나눈 인터뷰의 한 대목. "나머지는 실존 인물들로부터 차용했다면 연희는 처음부터 끝까지 창작한 인물이다." 이우정 제작자도 그러한 인물 배치를 순순히 인정한다. "당시 사건에 말리지 않았던 일반인들의 표상이 연희였다."

요컨대 연희는 도구적 인물이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혹은 직·간접적으로 시위에 참여했던 남성들에게는 '시위 현장에서 마주쳤던 것도 같은 아련한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 87년 6월 항쟁을 모르거나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으며, 예정대로 작년 12월이 대선이었다면 '역사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계속 훈계를 들었을 젊은이들에게는, 쉽사리 감정이입할 수 있는 인물. 요컨대 피와 살을 지닌 개인으로서의 '사람'은 아닌 인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희는 좋은 캐릭터다. 외부로부터의 자극과 내면으로부터의 갈등이 차곡차곡 쌓이다가 폭발할 때, 배우 김태리의 단정한 용모와 선을 넘지 않는 연기 톤이 조화를 이루어 기대 이상의 설득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문제는 연희가 '죄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대학 새내기인 그는 이 세상의 악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 연희가 할 일은 그저 눈을 뜨고 거리에 나가 버스에 올라 깃발을 휘두르는 것 뿐이다.

더 크고 본질적인 문제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의 세상을 낳기 위해 무염시태(無染始胎)의 존재로 설정된 연희 말고는, 유의미한 여성 캐릭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심각한 문제는 감독을 포함한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그러한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씨네21〉 인터뷰를 통해 확인하고 나니, 나도 이 문제에 대해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6월 시위 장면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는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선창을 하는 목소리는 배우 문소리씨다. 어떤 역할이든 캐스팅을 하고 싶었는데 적당한 배역이 없어서 고민하다 결국 목소리만 썼다. <1987>은 여성 캐릭터가 거의 없다. 조금 더 조화롭게 여성 캐릭터가 나왔으면 좋겠다 싶어서 김정남의 배역을 여성으로 바꿔볼까 생각까지 했었는데 우리는 실화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판단했기에 어쩔 수 없이 많은 남성들이 나오는 영화가 되었다.

이 대답은 실로 문제적이다. 감독은 "팩트에 최대한 충실하면서 드라마적으로 윤택한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했다"면서, "한병용 같은 경우 실제로 편지를 빼내오고 전달한 교도관은 두분이었는데 두 인물을 하나로 합쳤다"라고까지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장준환 감독과 제작진은 극적 긴장감을 위해 실존인물 두 명을 하나로 합치는 선택을 할 수는 있어도, 역사에 공식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은 그 수많은 운동권 여성 캐릭터 한 두 명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고 그들 스스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교회건 절이건 성당이건 운동권이건, 어떠한 신념에 기반한 조직이 작동하려면 수많은 이들의 노력과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제공하는 이들 중 상당수, 때로는 대다수가 여성이지만, '공식적'으로 기록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남자들 뿐이라는 것을.

따라서 '공식 기록에 충실하려 한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은, 애초에 그 공식 기록으로부터 배제된 여성들을 끌어안지 않겠다는 선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준환 감독과 김경찬 작가, 이우정 제작자는 그러한 효과를 알면서도 선택을 했다. 현실 속에 존재했던 두 사람의 교도관을 하나로 합칠 때에는 '극적 재미'를 앞세우던 그들이, 마찬가지로 현실 속에 존재했지만 기록되지 않은 여성 캐릭터를 창조해내지는 않으면서 그 핑계로 '팩트'를 들이댄 것이다.

역사의 악역은 거의 모두 남자다. 왜냐하면 그들이 권력을 가졌으니까. 하지만 그 악과 맞서 싸우는 일에는 남녀가 없다. 따라서 역사의 선한 역할에는 남성과 여성이 고루 포진해야 한다. 문제는 그 싸움이 승리로 기록되건 패배로 기록되건, 역시 기록하는 자는 남성적인 시각을 전제하기 때문에, 여성들의 헌신과 희생은 기록되지 않고 사라진다는 것이다.

혹은 숫제 의도적으로 지워지기도 한다. 초기 기독교의 정착 과정에서 예수가 부활한 빈 무덤을 처음 확인한 막달라 마리아의 역할이 어떻게 축소되었는지, 예수를 따르던 그 수많은 여인들의 이름은 왜 남아있지 않은지, 대신 우리가 아는 것은 12명의 남자 제자들 뿐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라. 남자들끼리 뭉친 권력에 맞서 싸우는 이들은 여성들의 힘을, 마치 1단 로켓처럼 소진시켜버린 후 떨궈버리기 일쑤였다.

〈1987〉의 제작진이 확인한 '역사적 사실'에 여성의 이름이 부족한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지금 내가 설명하고 있는 바를 모를 리 없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건 조금만 생각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너무도 뻔한 소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해도 어차피 선택하는 과정에서 서사화가 이루어지지만, 특히 픽션을 창작하는 중이었다면, 그리고 스스로를 어떤 의미에서건 (왕년의?) '운동권'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1987〉에는 더 많은 여성 캐릭터가 등장해야 했다. 선량한 교도관의 수더분한 누이, 시대적 각성을 하는 주인공과 덩달아 운동권 서클에 들어가는 날라리 친구 같은 기능적 인물 말고, 그 스스로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내면의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유의미한 입체적 여성 캐릭터가 설 자리를 만들었어야 한다. '팩트'로 기록되지 않은 '진실'을 밝히는 것, 그게 바로 픽션의 임무 아닌가?

역사는 전두환, 노태우, 박처원, 박종철, 이한열, 이부영, 김정남, 함세웅 등의 이름만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들도 매일 밥을 먹었고 세탁된 옷을 입었다. 그러한 돌봄노동은 자연스럽게 운동권 여성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수많은 문건을 쓰고 몰래 인쇄하고 뿌리며 연락을 주고받던 것도 여성들이었고, 심지어 남자 운동권들의 자기 서사화와 달리, 여자들이야말로 용맹하게 돌을 던지고 전경들에게 얻어맞아가며 싸웠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고, 그런 기록의 부재를 〈1987〉의 제작진은 '팩트'로 받아들여, 영화로 만들었다.

이런 이중적 기준 앞에 나는 무슨 말을 덧붙여야 할지 모르겠다. 역사의 기록에서 배제된 자들을 픽션의 세계에서마저 지워버린다는 것은 너무도 부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 길게 말을 이어봐야 중언부언일 수밖에 없으니 시 한 편을 인용하면서 끝내도록 하자. 우리는 역사를 이런 식으로 기억해서도 안 되며, 이런 식으로 서사화해서도 안 된다.


어떤 책을 읽는 노동자의 의문
-베르톨트 브레히트

성문이 일곱 개나 되는 테베를 누가 건설했던가?
책 속에는 왕의 이름들만 나와 있다.
왕들이 손수 돌덩이를 운반해 왔을까?
그리고 몇 차례나 파괴되었던 바빌론
그때마다 그 도시를 누가 재건했던가?
황금빛 찬란한 리마에서 건축노동자들은 어떤 집에 살았던가?
만리장성이 준공된 날 밤에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던가?
위대한 로마제국에는 개선문들이 참으로 많다.
누가 그것들을 세웠던가?
로마의 황제들은 누구를 정복하고 승리를 거두었던가?
끊임없이 노래되는 비잔틴에는 시민들을 위한 궁전들만 있었던가?
전설의 나라 아틀란티스에서조차 바다가 그 땅을 삼켜 버리던 밤에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사람들이 노예를 찾으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젊은 알렉산드로스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가 혼자서 해냈을까?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토벌했다.
적어도 취사병 한 명쯤은 그가 데리고 있지 않았을까?
스페인의 펠리페 왕은 그의 함대가 침몰 당하자 울었다.
그 이외에는 아무도 울지 않았을까?
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 이외에도 누군가 승리하지 않았을까?

역사의 페이지마다 승리가 나온다.
승리의 향연은 누가 차렸던가?
10년마다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다.
거기에 드는 돈은 누가 냈던가?

그 많은 사실들.
그 많은 의문들.

2017-12-31

올해의 영상물: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2017)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 트레일러


지난 8월 9일 새벽, 웹 스트리밍 서비스 아프리카의 BJ인 김윤태는 유튜브 스트리머 갓건배의 집 주소를 알아냈다며, 갓건배의 집에 찾아가 죽여버리겠다는 식의 '컨텐츠'를 유포했다. 실시간으로 약 7000여명 가까운 사람이 영상을 시청하는 가운데,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 성북경찰서에만 총 3차례 신고가 접수되었다. "그 주소에 갓건배가 살지 않아도 여성이라면 목졸라 죽이겠다"는 발언까지 했다는 증언(링크)까지 나온 가운데, 이 사건은 놀랍게도 살해협박이 아니라 '과도한 남성 혐오, 이대로 좋은가', 혹은 '인터넷 스트리머들의 무분별한 폭력과 증오의 표출은 과연 어디까지 표현의 자유인가' 따위의 주제로 소화되어 버리고 말았다.

초고속인터넷의 보급과 거의 동시에 3cf를 만드는 등 다방면에서 창작 활동을 벌였고 지금껏 꾸준히 인터넷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대한민국의 인디 록 음악가, 시인 겸 작사가, 인터넷 유명인"(위키백과) 권용만은, 갓건배를 소위 '저격'한다는 170여개의 유튜브 영상을 전부 시청한 후, 그것을 모으고 편집하여 컴필레이션 영상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2017)이다. 이 영상은 올해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모든 영상물 중 가장 문제적이다.

갓건배는 게임 〈오버워치〉를 플레이하며 게임 속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남성 유저들의 여성 유저에 대한 성차별, 성폭력, 비하 표현 등을 '미러링'해온 유튜브 스트리머(였)다. 그를 두고 남자들이 쏟아내는 온갖 증오와 욕설의 표현들로 1시간 44분 31초를 꽉 채워넣었는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대목이 몇 가지 나온다. 첫째, 예고편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갓건배 저격'에 나선 것은 대부분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연령대의 어린 남자들이다. 과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아들자식 농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둘째, 마찬가지로 예고편만 봐도 알 수 있다시피, 그게 꼭 애들만 그러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높은 연령대의 남자들은 어떤 '남자 역할'을 제시하고 수행하는 중인가? 셋째, 대체 이 수많은 '초딩'들의 교육 환경과 삶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거나, 구성되어 있지 못하거나, 망가지고 있는 중인가?

이 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었을 때 발생한 논란은 추가적으로 생각할 거리를 하나 더 안겨준다. 이 '초딩'들은 스스로 영상을 찍어서 올렸다. 그것을 편집하여 별개의 영상물로 만드는 행위를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미성년자의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전제하고 그들 스스로의 어리석은 행동으로부터 미성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당연히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의 존재 자체를 비난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말하건대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은 모두 직접 찍어 올린 영상을 편집해서 만든 것이다. 등장인물들을 '보호'하려면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을 비판하거나 보지 말자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러한 '보호'는, 미성년자의 인격과 판단을 최대한 존중하려 하는 입장에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훈육과 맞닿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지점이 있다. 특정 여성에 대한, 그리고 여성 일반에 대한 인터넷 상의 언어 폭력이 단지 말로만 오가는 차원을 넘어 현실의 폭력으로 돌변하던 바로 그 순간과 이후의 반응으로 인해 〈갓건배에 대한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는 사실 말이다. 그 폭력을 휘두르겠다던 남자 BJ들은 '원래 그런 놈들'이라고 치부되면서, 실질적으로는 면죄부를 받았다. 반면 '갓건배'는 언론의 조명을 받더니 소위 '남성혐오'의 대명사가 되었다. 지금도 조금만 검색해보면 그에게 다종다양한 폭력을 행사하고 싶다는 증오의 표현이 넘쳐난다.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는, 혹은 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그 수많은 폭력은 어디에 있는가?

한 해의 마지막에 이 영상을 소개하면서 '꼭 보라'고 하는 것은 다소 어폐가 있는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기왕 본다면 1시간 44분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꾹 참으며 보기 바란다. 특히 남자라면 말이다. 창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어쩌면 이것은 여성들이 느끼는 인터넷 속의 언어 폭력을 체감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일 수도 있다. 이게 바로 여성혐오의 민낯이며, 대한민국의 현재이자 미래다.

2017-12-30

올해의 책 다섯 권

2017년에 발행되어 2017년에 읽은 책 가운데 특별히 다섯 권을 꼽아보았다.

  • 김용언, 『문학소녀』(서울: 반비, 2017)
김용언의 『문학소녀』는 전혜린이라는 문제적 작가를 중심으로 하여, 한국 문학계의 남근주의, 여성 작가에 대한 멸시, 여성 작가들이 주로 종사한다고 여겨지는 산문(에세이)에 대한 저평가 등을 다룬다. 특히 전혜린은 대다수의 동시대인들과 달리 일본의 프레임을 거치지 않고 독일어 문학을 접하고 향유하며 번역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의 눈으로 골라낸 책을 공들여 한국어로 옮김으로써, 지금까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는 어떤 감수성, 한 남성 평론가의 언어를 빌리자면 "느낌의 공동체"를 만들어낸 장본인으로 전혜린을 (재)소개하는 대목이 책의 절정을 이룬다. 모질게 저평가당하고 매도당해온 작가/번역가, 그를 대상으로 한 국문학계의 연구 성과, 그리고 페미니즘에 목마른 독자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책.

  • 김시덕, 『전쟁의 문헌학』(경기도 파주: 열린책들, 2017)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조교수인 김시덕은 일본 유학 시절 『이국 정벌 전기의 세계(異征伐記の世界)』라는 책을 썼다. 그 작업을 통해 40세 이하 고문헌 연구자에게 수여하는 학술상인 '일본고전문학학술상'을 수상하였는데, 해당 학술상을 외국인이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귀국한 후 『그들이 본 임진왜란』(2012),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2015) 등으로 넓은 독자층의 환영을 받았다. 그의 책 『이국 정벌 전기의 세계』는 2016년 말 『일본의 대외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전쟁의 문헌학』은 그 후속편에 해당하는 작업이다. 『동국통감』과 『신간동국통감』, 『징비록』과 『(조선) 징비록』 등 고문헌의 이름과 내용과 전래 과정이 오가는 가운데 독자는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된다. (〈에스콰이어〉의 표현을 빌리자면) 김시덕이 "김시덕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이 바로 여기 있다는 것, 예나 지금이나 우리 한반도의 거주민들은 타자에 모르면서 모르는 상태로 이기고 싶어한다는 것.

  • 주대환,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경기도 고양: 나무+나무, 2017)
주대환은 선거보다 정책을, 정치보다 세계관을 고민해온 사람이다. 그렇게 알려져 있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의장직을 역임하던 시절, 기존 진보 진영의 관성에서 벗어나 실용적이고 실생활에 와닿는 정책을 고안하고 추진해왔다(고 한다). 그 민주노동당이 10여년의 세월동안 풍비박산나고 있던 과정에서, 주대환은 한국의 정치의 이면에 깔린 세계관 그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를 시작했다. 그 최초의 고민이 담긴 책이 『대한민국을 사색한다』(2008)였고,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는 그 문제의식에 구체적인 살을 붙이고 간명한 레토릭까지 추가한 작업이다. 그는 진보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통성을 물고 늘어지는 소위 '해방전후사의 인식 세계관'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해방된 조국의 정통성이 북한에 있다는 판타지를 유지하려다보니 북한 정권의 폭압적 인권 탄압에 눈을 감고, 현실성 없는 대외 정책만을 외치게 된다는 것이다. '한 방에' 혁명을 해서 세상을 뒤엎겠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이 나이만 먹은 채 그런 세계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주대환은 거침없이 폭로하며, 새로운 진보를 위한 대안 서사를 제시한다. 문제는 그 서사가 기존의 것을 대체할 수 있을만한 '무협지적 재미'를 주지는 못한다는 것. '사이다'에 중독되어 '적폐' 사냥에 맛을 들인 오늘날의 대중들을 과연 어떻게 설득하고 새로운 정치 지형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인가? 아직 그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김수빈 옮김, 박태균 해제,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서울: 산처럼, 2017)
자타공인 '지한파' 미국인이라고 한다면, 이제 우리는 주한미국대사를 역임한 마크 리퍼트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개량한복을 입은 남자에게 얼굴에 칼을 맞고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한국인이 정말 알아야 할 지한파 미국인을 딱 한 사람 꼽으라면 데이비드 스트라우브의 이름을 답으로 내놓아야 하며, 그 이유를 묻는다면 바로 이 책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의 내용을 소개하고 일독을 권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책이고, 또, 예상 가능하다시피 국내 독서계에서 거의 완전히 무시당하고 매장당한 책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것이, 이 책은 비단 '주사파'나 'NL 운동권' 뿐만 아니라 사실상 거의 모든 한국인이 공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역사의 피해자' 서사와 그에 기반한 반미주의를 외부인의 시각으로 분석하고 반박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로 잘 알려진 '미군 장의사 한강 포름알데히드 사건'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미국 내에서도 포름알데히드를 버릴 때에는 그냥 강물에 희석시킨다, 다시 말해 수돗물 틀어놓고 쏟아붓는다고 말이다. 해당 미국인 군무원은 일부러 한국민의 젖줄을 더럽힌 게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하는 통상적인 방식으로 포름알데히드를 처리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분노했고, 시위했고, 영화도 찍고, 이후에는 더 알아보려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한국어로 된 뉴스를 주로 접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 『반미주의로 보는 한국 현대사』를 한 번쯤은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의 내용이 전부 옳다고 주장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래야 '자기객관화'라는 것을 시작이라도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로렌 R. 그레이엄, 최형섭 옮김,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경기도 파주: 역사인, 2017)
개인적으로 2017년은 뜻깊은 해였다. 새로 들어선 문재인 정권에서 기습적으로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나는 수레바퀴에 맞서는 사마귀가 된 심정으로 반대의 뜻을 밝혔고, 그 결과 『경향신문』 칼럼니스트의 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해당 매체에서 전화 통화를 통해 고지한 사실이 그렇다. 그리고 나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합리적이고 경제적이며 인본주의적인 에너지 정책에 대한 글을 연달아 썼으며, 블로그에 글을 쓸까 하다가 그냥 넘어갔는데 환경진보(Environmental Progress)의 마이클 쉘렌버거 대표와 두 차례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러한 개인적 맥락 속에서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을 읽었다. 1960년부터 소련을 방문해가며 소련 기술사를 연구해왔던 미국인 학자 로렌 R. 그레이엄이 천착하던 화두 중 하나가 바로 표트르 팔친스키였다. 소련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숙청 중 하나로 기억되는 '산업당(Industrial Party)' 사건. 그 주동자로 지목되어 처형당한 팔친스키는, 숙청 대상자가 대부분 그렇듯, 말소당한 기록 속에서 말 그대로 '사라져버리고' 있었다. 그는 끈질긴 자료 추적과 해석을 통해, 제정 러시아가 교육시켰고 무정부주의의 영향을 깊게 받은 뛰어난 엔지니어가, 중후장대한 성과를 요구하는 볼셰비키와의 갈등 속에서 짓밟혀버리고 마는 역사를 추적해 나갔다. 짧지만 강렬하고 큰 여운을 남기는 저작으로, 북한 뿐 아니라 대한민국 내에서 발생한 유사 사례를 다룬 책을 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

2017-03-06

나는 이런 서점에 가고 싶다

어떤 기사를 보니 한국인은 평균적으로 한 해에 10만원 가량을 도서구입비로 지출한다고 한다. 그런 평균적 소비자를 끌어들여 10만원 쓸 것을 15만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아마도 서점 업계의 목표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교보문고를 선두로 한 대형서점들은 '머물기 편안한 공간'을 제공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런데 나처럼 한 해가 아니라 한 달에 적어도 10만원 이상의 책을 사는 독자들이 있다. 이런 부류에게 오늘날의 대형서점이란 죽도 밥도 아닌 무언가이며, 다소 거칠게 말하자면 (오프라인) 서점도 아니다. '책이 있는 문화공간'을 선호하는 평균적인 열 사람보다 '서점'을 원하는 한 사람의 입장에서 한 마디 해보자.

서점이란 무엇인가? 소비자 입장에서 보자면, 책을 구입하는 곳이다. 그런데 책이란 심지어 같은 저자가 같은 출판사에서 낸 같은 책이라 해도 판본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는 대표적 다품종 소량 구매 상품이다. 따라서 규모의 경제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대부분의 독자들이 원하는 책은 베스트셀러, 화제의 신간, 스테디셀러의 세 범주로 포괄될 수 있다. 요즘 여기저기서 '특색있는 동네서점' 같은 것을 많이 차리는데, 사실 '동네서점'이란 기본적으로 많이 팔릴 수밖에 없는 저런 책들을 간신히 구비해놓는 곳이다. 남들 다 보는 책, 신문이나 TV에 광고가 나오는 책('백년도 못 살면서 천년의 일을 근심하는 인간들아~' 권력과 부를 조롱하며 구름처럼 살다간 천재시인 김삿갓!), 오가며 별 생각 없이 넘겨보다가 버리면 그만인 깔깔 유모어집 등이 '동네책방'의 본령이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을 전제로 해야 대형서점이 인터넷 이전 시대에 어떤 의미였는지 파악할 수 있다. 대형서점이란 '동네책방에는 없고 갖다 놓으리라고 기대하지도 않는 책'이 있는 곳이었다. 영어, 일본어 등 이른바 '원서'를 새 책으로 구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는데 그 또한 '동네책방'에서는 팔지 않는다. '여기 없는 책이 저기에는 있다'가 대형서점의 본질이었다.

인터넷 서점의 출현 이후 이 구도가 허물어졌다. 이전의 교보문고에는 온라인 DB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책이 종종 꽂혀있었지만 그 또한 2008년 촛불시위 기간의 리뉴얼과, 이후 무슨 열대우림에서 베어온 통나무 테이블 같은 걸 비치하는 과정에서 다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2017년 현재, '최대한의 책의 가능성'을 탐색하려면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가는 것보다 인터넷 서점을 뒤지는 편이 낫다. 새롭게 단정된 '복합 문화공간'의 귀한 부동산을 점유할 가치가 없는, 그만큼 팔려나갈 가능성이 없는 수많은 책들이 곧장 창고에 처박힌다. 그렇게 만들어진 빈 공간에서, 어린이와 학생과 직장인과 노인들이 책을 접고 밑줄을 긋고 원목 테이블 위에 내팽개친다. 그곳에 책은 없다. 적어도 내가 찾는 책은 그렇다. 적잖은 경우 허탕을 친다.

물론 출판업은 10권 중 한 권의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를 만들어 나머지 9권을 발행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많이 팔리는 책이 많이 팔려야 적게 팔릴 책도 존재할 수 있으므로, 많이 팔릴 책이 많이 팔리도록 최적화된 현재의 대형서점을 모두 없애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출판시장은 동시에, 한국인의 도서 구입 비용 평균을 확 끌어올려주는 존재들 덕분에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은 '동네책방' 뿐 아니라 현재의 대형서점에서도 만족스러운 소비를 할 수 없다.

그럼 대체 어떤 서점이 필요한가? 나 자신의 경우를 놓고 말해보자. 내가 원하는 서점은 이런 것이다.

  1. 책을 직접 들고 카운터에 갈 필요도 없게, 스마트폰의 바코드 리더 앱 등을 이용해 장바구니에 넣고 결제하면 집으로 보내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책을 욕심껏 집다보면 굉장히 무거워지고 부피도 커진다. 그런데 어차피 당일에 사들고 간 책을 당일에 다 읽는 경우는 없다. 쇼핑은 서점에서 하고, 책은 집(이나 사무실이나 아무튼)에서 받아볼 수 있도록 완벽한 플로우를 제공해주는 오프라인 매장이 있다면 아주 좋겠다(교보문고 바로드림을 언급하지는 않기로 합시다).
  2. 최대한 많은 책을 보기 좋으면서도 밀도 있게 배치해야 한다. 온라인 서점을 뒤적거리는 것과 도서관이나 (과거의) 대형서점 등에서 걸어다니면서 책을 찾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우연히 '어 이 책은?' 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것들이 굉장히 많다. 그것들을 바코드만 띡띡 찍으면 장바구니에 담겨서 다음날(혹은 며칠 후)에 집으로 배송되는 것이다. 상상만 해도 기쁘지 않은가.
  3. 쇼파라던가 문화 예술 공연이나 강연을 할 공간 등을 없애고 최대한 책에게 많은 공간을 제공할 것. 내가 알지 못했던, 혹은 알았더라도 실물을 접해본 적 없던 책을 직접 만져보고 페이지를 넘겨보는 그것이 더욱 서점의 본령에 가까운 게 아닐까. 서점에서 책을 읽는 것은 어디까지나 '몰래' 할 때 집중력이 향상되는 것이지, 지금처럼 문제집 펼쳐놓은 수험생들 틈바구니에서 부대끼는 것은 전혀 즐겁지 않다.

요컨대 내가 원하는 서점이란 '온라인 서점을 오프라인에서 내 몸으로 브라우징할 수 있는 공간'이다. 대형 개가식 도서관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단번에 책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 신간이 아주 빨리 들어온다는 점, 빌려서 나갈 수는 없다는 점 등에서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만약 저런 종류의 서점이 생긴다면 나는 온라인 서점보다는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구입할 것이다. 페이지를 넘겨보고, 물건을 확인하고, 책꽂이에 꽂혀 있는 유사한 주제나 제목의 다른 책을 통해 신선한 영감을 얻는 일은 오직 오프라인에서만 온전히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서점은 교통이 편한 곳에 큰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한마디로 자릿값이 많이 든다. 그런데 정작 베스트셀러 등의 마케팅에는, 적어도 지금까지의 서점들과 비교해볼 때, 전혀 유리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유형의 서점에 과연 상업적 승산이 있을까? 그건 서점 업계의 관계자가 아니라면 함부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처럼 애초에 책을 많이 사던 사람들은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스마트폰으로 엄청난 액수의 책을 질러놓고, 집에 와서 울부짖을 것이다. 나는 그런 서점에 가서 책을 사고 싶다.

2017-01-01

블로그에 쓰는 블로그에 대한 생각

2017년에는 이전보다 더 활발하게 블로그에 글을 쓸 생각이다. 나는 이전까지는 읽고 있는 책, 다 읽었지만 내용을 온전히 갈무리하지 못한 책, 읽었지만 그 의미를 곱씹는 중일 뿐인 매체 기사 등에 대해 공개적인 장소에서 언급해오지 않았다. 완결되지 않은 생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 온당치 못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결과 지난 몇 년 동안 블로그는 업데이트가 대단히 뜸하게 되었다. 이것은 어쩌면 트위터 시대가 시작된 후 많은 블로그 사용자들이 겪은 현상일 것이다. SNS로서의 페이스북과 달리 트위터는, 처음에는 그들 스스로도 SNS인줄 알았지만, '마이크로 블로깅' 서비스였고 결국 블로그 시대에 활발하게 글을 쓰던 이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빨아들였다.

그게 뭐 나쁜 일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특히 한국어권이라는 작고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이전의 블로그 시대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일들이 트위터 덕분에 가능해졌다. 하지만 나처럼 읽고 쓰는 것이 직업인 이들에게 트위터는 일종의 '담배' 같은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나 싶다. 나는 흡연자가 아니므로 상상적 비유를 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많은 생각과, 독서와, 레퍼런스들이 허공으로 후우 하고 뿌려졌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여보자. 트위터는, 특히 페이스북에 비하면, 굉장히 축적에 유리한 매체다. 일단 본인의 타임라인을 시계열적으로 훑을 수 있고, 자신이 쓴 트윗 전부를 다운받을 수 있다. 계정 백업이 언제라도 가능하며 그것을 오프라인 상태에서 웹브라우저나 텍스트 에디터로 읽어서 검색하는 일 또한 가능하다. 굳이 지난 트윗들을 다운받지 않아도 검색어 조작을 잘 하면 이전에 떠올렸던 단상이나 읽었던 웹문서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렇게 '저장되어' 있는 것과, 내 머릿속에 '갈무리되어' 있는 것이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기사를 읽은 후 적당한 구절을 인용하여 트위터에 올리면 기억을 할 수 있다(그게 내가 트위터를 이용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것을 가공하여 원고에 활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1차 단계인 수집에서 2차 단계인 인용으로 넘어가기까지에 장벽이 없지 않다. 짧더라도 독립된 글을 써서 정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 이유로 '비밀글' 기능을 제공하는 다른 블로그 서비스를 사용할까, 혹은 설치형 블로그를 운영해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잠시'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고,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이것저것 만져보고 몰래 실험도 해봤다. 하지만 뭐랄까,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는데, 언제나 그러한 탐색은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것 외에는 블로그 그 자체에 대해 그 무엇도 연구하거나 고민하거나 탐색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끝난다.

그러자면 뭐가 됐건 설치형이 아니라 가입형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일단 언제 서비스가 종료할지 모르는 국내 블로그 서비스는 모두 뺀다. 드롭박스에 텍스트 파일을 올려놓으면 블로그 형태로 뿌려주던 서비스도 있었고 뭐 그런 식의 다양한 실험은 늘 존재해왔는데, 그 또한 결국 지속성에 문제가 있다. 결국 남는 선택지는 200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블로그를 운영하는 하드코어 블로거들이 우글우글한 blogger.com과, 이제는 일종의 표준이 되어버린 워드프레스 뿐이다.

워드프레스는 무료 가입자들에게 형편없이 낮은 기능만을 제공한다고 불평하고 싶지만, 사실 기능이 부족한 것으로 따지면 구글이 옛날옛적에 인수한 blogger.com은 wordpress.com의 무료 계정보다도 더 뒤떨어진다. 가장 단적인 예로 '비밀글'이 없다. '비밀댓글'도 없다. 모든 원고는 완성되어서 공개되거나 완성되지 않았기에 초고의 형태로 비공개된다. 댓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특히 '비밀댓글'의 부재는, 유독 그 기능을 사랑하는 우리 한국인들이 blogger.com의 사용 뿐 아니라 구독마저 꺼리게 만드는 중요한 'dealbreaker'로 작동해왔다. 하지만 구글은 그런 기능을 제공할 생각이,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듯하다.

그래서 블로그를 옮길까 말까 오래도록 고민하고, 데이터를 익스포트해서 옮겨넣어보기도 하고, 여러 시도를 했었다. 하지만 다 집어치우기로 했다. '블로그를 한다'는 건, 어쨌건 꾸준히 한 계정에 게시물을 업데이트한다는 의미이며, 그 외의 것은 부차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구글 블로그가 제일 편하게 느껴진다. 이전에 잠시 한 개인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블로그를 운영했던 적이 있는데, 그 홈페이지의 운영자는 내가 여러 차례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자료를 내게 돌려주지 않았다(새해가 밝았으니 조만간 다시 메일을 보내볼 생각이다). 설치형 웹서비스라는 게 이렇게 위험하다. 계속 본인의 자원을 투입할 생각이 없다면 어딘가 '큰 배'에 탑승하는 편이 낫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인터넷에서 가장 '큰 배'는 구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나는 그냥 계속 이 계정에서 이 블로그를 사용했어야 했다.

결국 하던 블로그 계속 하겠다는 것인데 왜 이렇게 설명이 길까? 몇 가지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게시물에 태그를 붙이기로 했다. 이것은 대단히 큰 변화다. 애초에 blogger.com으로 블로그를 옮겼던 이유 중 하나는 카테고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글을 분류하지 않았으며, 분류해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서비스(예컨대 티스토리)를 가장 먼저 고려 대상에서 제외해왔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일단 카테고리식 분류는 '중첩되는 분류'를 다루지 못하는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그에 대해서는 이 게시물을 참고해도 좋겠다. 이 또한 blogger.com을 이용하는 사용자가 작성했다는 점에 주목할 것). 라벨 또한 붙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검색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라고 나는 오래도록 생각해왔다. 그런데 라벨이라는 것은 세밀하게 붙이면 붙일수록, 그리고 그 라벨의 대상이 되는 게시물이나 사진 등이 쌓이면 쌓일수록, 도움이 안 된다. 따라서 아예 시작도 안 하는 게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수년 동안 지켜왔던 것이다.

결국 나의 불친절한 블로그 운영은 '독자 입장'이 아니라 '내 입장'에서 도움이 되는 블로그를 하겠다는 의지의 반영이었다. 그런데 내가 간과하고 있던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나 또한 내 블로그의 독자라는 것 말이다. 물론 라벨은 결국 특정 검색어를 미리 지정해서 눈에 잘 띄도록 끄집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가 '그 검색어'를 떠올리지 못할 가능성이 늘 상존한다. 혹은 생각하지 않고 있던 검색어가 미리 지정되어 있는 라벨을 클릭하여 정렬된 게시물들을 읽고 이전의 내가 쓴 글이나 스크랩해둔 자료를 새롭게 발견할 수도 있는 것이다.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축적되고 나면, 바로 그런 기능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태그 기능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주제별로, 혹은 소재별로 세분하여 라벨을 붙이지는 않고, 일종의 '대분류'에 해당하는 항목들만을 추려서 붙인다. 그것은 독자들 뿐 아니라 내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가령, 연말이기 때문에 쉬었지만 다음주부터 재개할 '뉴스 정리'에 대해 생각해보자. 나는 지금까지 총 7차례에 걸쳐서 주말마다 그 주의 가장 중요한 뉴스들을 몇 개 꼽아 글로 정리했다. 그런데 '미리 제시된 검색어'로서의 라벨이 없다면, 심지어 나 자신 또한 내가 그런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되고, 과거의 내가 남긴 기록으로부터 도움을 얻기도 어려워진다. 지금은 다르다. 바로 이렇게 '뉴스 정리' 라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간 경향신문의 '별별시선'에 기고했던 칼럼들 역시 마찬가지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간단한 것을 나는 지금까지 하지 않았고, 수많은 독자들이 내 블로그에 흥미를 잃었는데, 그 중 가장 흥미를 잃었던 독자가 바로 나 자신이었음을 이제는 인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둘째, 현 시점에서 중요하거나 독자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게시물을 따로 뽑아서 오른쪽 사이드바에 올려놓을 것이다.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선언까지 하나 모르겠지만 기왕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했으니 마저 이야기하자는 취지에서 말을 한다. 그 내용은 당연히 수시로 달라질 것이다. 셋째, 내가 작업한 책들의 링크 역시 사이드바에 접근성 있게 제공할 것이다. 이걸 오늘 다 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빨리 완성된 형태를 갖추어야 하겠다.

지속적으로 원고를 생산한다는 것은, 다른 이들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교류하여 이루어지는 일이기도 하지만, 과거의 자신과 꾸준히 대화를 나누어야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올해부터는 블로그에 더 자주 글을 쓰기로 했다고, 블로그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