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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6

[북리뷰] 생의 말년에 돌아보는 근현대사

손정목이 쓴 한국 근대화 100년
손정목, 한울, 2만3천원


지난 5월 9일, 이 책의 저자인 손정목 명예교수가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1928년생, 만 88년의 세월을 거치며 살아왔던 그는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이승만 정권과 4.19 혁명, 군사독재와 민주화를 모두 겪었다. 저자 스스로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1928년생이다. 일제 강점기를 살았고 미군정기를 관통한 삶이었다."(5쪽) 이 책은 그 역사의 증인이 생의 말년에서 한국 근대사의 다양한 국면과 자신의 삶을 반추한 것이다.

손정목의 인생은 한국의 근현대사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1928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편입하였는데, 직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피난했다. 전란이 끝난 후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하여 공직 생활을 시작하고 군수가 되기도 하였으나 그것이 독이 되고 말았다.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협력하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한 3년간의 휴직을 겪은 후 행정서기관으로 복직하고, 1970년부터는 서울특별시의 기획관리관, 도시계획국장, 내무국장 등을 역임했다. 그 후 1977년부터 1994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서울시립대에 교수로서 몸을 담았다.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를 지나 대한민국의 정치적 격동을 모두 겪어내면서, 동시에 정치, 행정, 도시계획 및 개발, 학문적 연구라는 다양한 분야를 두루 경유해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나의 집사람 때문이다. 54년간 삶을 같이해온 사람과 사별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내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5쪽) 부인과 사별한 후 그는 서울시립대에서 도서관 한켠에 마련해준 전용 연구실에 매일 출근하며 자기 자신을 추스르기 위한 원고를 써내려갔다. 그렇게 나온 첫 번째 원고가 정비석의 <자유부인>에 대한 당시 사회의 반응을 다룬 "불륜 앞에 자유로운 자, 돌을 던져라"이고, 두 번째 원고가 "나는 어떻게 부정선거를 치렀나: 3·15 부정선거 이야기"라고 한다. 선거 직후부터 쓰고 싶었던 부정선거 체험기를,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써냈다.

어떤 경우라도 그날의 부정선거를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그때 자신이 한 일을 정당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이 점을 밝혀두고 싶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선거는 제1대 국회의원 선거인 1948년 5·10 선거부터 이미 부정선거였다. 정말 슬픈 유산을 물려받았고 나 역시 그 유산을 이어 원흉의 자리에 있어야만 했다. 위에서 내려진 명령에 충실했다고 말하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다.(178쪽)

저자는 그 부끄러운 역사를, 철저한 자료 조사와 비상한 기억력을 통해 복원해냈다. 본인이 직접 개입한 바 있는 3.15 부정선거 뿐만이 아니다. 미군정시대에 대해 이전에 썼던 글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핵심 인물 이묘묵의 존재를 알아내고 그를 중심으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3년간의 역사를 그려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웠던 자신의 경험과 일제강점기 막바지의 사회적 분위기의 접점을 찾아내기도 한다.

"1944년 당시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같은 반 학생 거의 모두가 담배를 피웠다. 왜 그랬을까? 이는 일본의 징병제 실시에 대한 항거이고 거부였다."(28쪽) 이 책은 개인적 회고이면서 동시에 역사적 고찰이지만 둘 중 어느 영역에도 완전히 포섭되지 않는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표현을 빌자면 '말년의 양식'이 책 전체를 감싼다.

그가 남긴 저서들의 목록을 훑어보며,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덕분에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된 것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2016.06.07ㅣ주간경향 1179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6-05-12

[북리뷰] '어버이'는 과연 2만원 때문에 '애국'하는가

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 홍신문화사, 1만2천원.



그들은 본디 놀림감이었다. 구체적인 액수가 등장하자 더욱 심한 놀림감이 되어버렸다. 어버이연합이 단돈 2만원에 보수 집회에 동원되고 있었다는 언론 보도 이후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그렇다. 애초부터 그 '어버이'들은 존경 혹은 존중의 대상이 되지 못했으나, 이제는 '불쌍하되 동정할 가치가 없는' 무언가로 취급되고 있는 모습이다.

아직 의혹이 다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보도된 바에 따르면, 어버이연합에는 국정원의 입김이 닿아 있는 듯하다. 그들은 2010년대의 중요한 사회적 논란의 현장마다 등장하여 시위를 했다. 그리고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은 '일당 2만원'을 주었다.

그러나 이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의 고찰은 '일당 2만원'에 멈추지 말아야 한다. 물론 변변한 소득이 없는 노령층에게 그 돈은 소중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를 가정해보자. 진보·개혁 진영에서 같은 방식으로 그들을 '동원'하고자 했다면, 일당을 두 배로 쳐준다 한들, 그들이 과연 그렇게 적극적으로 달려들었을까? 그 '어버이'들은 돈벌이 뿐 아니라 어떤 정신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연합'의 일부가 되어 집회 현장으로 향했던 것은 아닐까?

1934년, 반유대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향한 에리히 프롬은 바로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 왜 독일 국민들은, 혹은 그들 중 일부는,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히틀러를 지지하였는가? 물론 바이마르 공화국의 시민들은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다. 무기력한 사회당, 공산당과 달리 나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고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런 '경제적'인 이유가 전부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이성적인 이유를 들이대기에는 나치가 내세운 반유대주의, 인종주의,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혐오가 너무도 노골적이었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책 <나의 투쟁>은 진작부터 독일 내에서 널리 읽히고 있었다. 나치는 단 한 번도 자신들의 공격성과 약자 혐오를 감춘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거의 절반에 가까운 독일 국민들은, 그런 정당에게 표를 던졌는가?

어쩌면 인간에게는 자유에 대한 본유적(本有的)인 욕망 이외에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려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욕구가 없다면, 오늘날 어떤 지도자에 대한 복종이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11쪽)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프롬은 저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사회심리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냈다. 사회 현상의 원동력이 되는 심리적 요인을 파해치고, 또한 그 심리적 요인을 낳는 사회적 변화를 짚어내는, 대범한 지적 기획이 바로 <자유로부터의 도피>인 것이다.

인간은 자유를 갈망한다. 하지만 동시에, 특히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지배해줄 절대적인 권위를 희구하며,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절대적인 존재가 되고자 욕망하기도 한다. 전자와 구분짓기 위해 후자를 '권위주의적 성격'이라 이름붙인 프롬은 나치의 집권 당시 독일 국민들이 바로 그 '권위주의적 성격'을 보였음을 분석해냈다.

'어버이'들을 욕하기란 쉽다. 그들에게 값싼 동정의 시선을 보내는 것도, 사실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정말 힘든 것은 그들이 '왜', '어떻게', 무슨 선택을 통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나치 독일을 읽어냈다. 1940년, 아직 나치가 전쟁에서 패배하지도 않았고, 그들이 다카우의 강제수용소에서 벌인 만행이 백일하에 드러나지도 않았던 시점에, 이 책이 출간되었다. 반면 우리는, '어버이'들을 이해하고 있는가.


2016.05.24ㅣ주간경향 1177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6-04-28

[북리뷰] 시신이 사라져도 사람은 남는다

장성택의 길
라종일, 알마, 1만6천원


김정일이 지배하던 시절 그는 명실상부한 북한의 2인자였다. 3대 세습이 시작되자 감히 1인자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2인자가 되었다. 그러나 2013년 12월 12일 김정은은 전격적으로 장성택을 숙청해버렸다. 4신 기관총을 난사하고 화염방사기로 불태워버린 탓에 한 마디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시신까지 말 그대로 소멸해버렸다. "장성택이 이 세상에서 남긴 마지막 메시지라곤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 현장에서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 남겨진 두 토막으로 부러진 볼펜 조각뿐이었다."(267쪽)

이 죽음이 너무도 황망한 탓이었을까. 그날 이후 장성택과 그를 숙청한 김정은은 가십 혹은 농담의 대상으로 소비되고 있다. 김정은과 나이 차이가 많지 않은 젊은이들은 SNS를 통해, 장성택과 연배가 비슷한 중장년층은 종편을 통해, '고모부를 살해한 조카'의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곱씹는다. 북한을 무조건 악마화하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나니, 이제는 덮어놓고 일단 희화화부터 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듯하다.

<장성택의 길>은 사뭇 다르다. 북한이라는 수수께끼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한 책이다. 일반적으로 독재국가에 적용될 수 있을만한 원칙을 놓고 북한을 바라본다. 다른 나라의 독재자들, 다른 나라의 권력 주변인들의 행동 패턴을 북한에 그대로 적용해본다. 그렇게 라종일은 김정은이 전면에 등장하자마자 2년 후 장성택이 숙청당할 것임을 예측할 수 있었다.

어느 권력 체제에서나 2인자의 위치는 매우 미묘하게 곤란한 것일 수 있다. 특히 권력이 한 인물에 집중되어 있는 경우, 그리고 권력 승계에 관한 공개적인 규칙이 결여된 체제인 경우 그런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말하자면 당시 장성택이 처한 상황이야말로 그 전형적인 유형이었다. 거의 교과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고 나는 생각했다.(10쪽)

"경제적인 자원 분배를 둘러싼 권력 투쟁의 결과였다거나, 혹은 장성택이 김정은과 달리 핵과 경제의 이른바 병진노선에 반대하고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등"(11쪽), 그의 죽음을 설명하기 위한 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렇게 언론은 점점 더 선정적인 방향으로만 흘러갔다.

하지만 그는 죽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2인자였기 때문이다. 라종일은 어려운 문제에 대해 쉬운 답, 하지만 정답일 수밖에 없는 답을 제시한 후, 다른 이들이 바라보지 않았던 곳을 들여다본다. 장성택은 어떻게 살았는가? 그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쩌다가 그러한 위치에 오르게 되었으며, 어째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권력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는가? "몇 가지를 제외하면 대부분 세간에 알려진"(14쪽) 사실들을 모으고, 신분을 밝히기 꺼리는 "자문인"들로부터 귀중한 자료를 덧붙여, 장성택에 대한 세계 최초의 전기로 엮어냈다. "구하기 어려운, 빈약한 단편적인 자료들을 근거로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처신 그리고 특히 그의 내면세계를 재구성하고, 이것을 한 편의 이야기로 만들"(15쪽)어낸 것이다.

<장성택의 길>은 장성택이라는 북한의 핵심 인물을 온전히 '사람'으로 그려내고, 이해하고자 노력한 결과물이다. 그 결과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북한이라는 폐쇄적인 1인 독재체제의 잔인하고 부조리한 측면까지 일말의 악마화나 희화화 없이 바라볼 수 있다.

4월 27일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라종일은 "시신을 없앨 수는 있어도 사람을 없앨 수는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지워져버린 사람을 기억의 힘으로 되살리면 권력의 잔혹한 실체가 드러난다. 그것이 북한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시신조차 남기지 못한' 김형욱, 그 외 수많은 의문사 희생자들을 떠올려보자. "과거는 죽지 않는다. 그것은 아직 지나가지도 않았다."(272쪽)


2016-04-14

[북리뷰] 부정선거, 아는 만큼 보인다

에센스 부정선거 도감
프로파간다 편집부, 프로파간다, 8천5백원.

2012년 대선의 후폭풍은 심각했다.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는 문재인 후보의 지지를 표명하며 사퇴했다. 두 후보의 표를 합치면 99%가 넘었다. 다시 말해 '이탈표'가 존재하지 않는 양자구도의 진검승부였다. 투표율은 75%를 넘겼다. 일반적으로 투표율이 높으면 야권에게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결과는 참패였다. 100만표 차이가 났다. 일부 지지자들은 속된 말로 '멘붕'에 빠졌고, 개표 과정에서 조작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수개표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사실 개표 조작 논란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이회창 후보가 노무현 후보에게 패배했던 제16대 대선 이후에도 같은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헛소동에 지나지 않은 '수개표 논란'과 달리,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은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에 상처를 남겼다. 국정원 심리정보국 직원들이 인터넷 게시판에 야당 후보를 비난하고, 그 과정에서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에 대해 온갖 혐오발언을 쏟아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들은 크나큰 분노를 느꼈다. '민주화'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음지'의 세력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에센스 부정선거 도감>은 바로 그런 문제의식을 담아 독립 출판사인 프로파간다가 '편집부'의 이름으로 엮어낸 책이다. "지난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사이버 여론전이 초래한 부정선거 시비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지금, 민주주의 제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있어 부정선거를 척결하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과제인지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9쪽) '편집부'는 그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대한민국 건국 이래 등장한 온갖 부정선거 방식을 그림과 함께 살펴보고, 이승만부터 좌익효수까지 다양한 주요 인물들을 검토하며, "부정선거 고사 문제지"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복습의 시간까지 갖게 한다.

이 책은 건국 이후 대한민국에서 나타난 여러 부정선거 기법과 사건 등을, 그림을 곁들여 알기 쉽게 정리한 도감이다. 대부분은 어느덧 희미해진 오래된 부정선거 사례들이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한 과거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여전히 많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선거제도에 대한 교육 자료, 부정선거 기법의 세부에 대한 해설서로서, 필요한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로 소용되길 기대한다.(10쪽)

그렇게 소개되는 부정선거의 기법들은 참으로 다양하고, 창의적이며, 악랄하고, 때로는 노골적이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보성의 야당 참관인에게 '누군가'가 수면제를 탄 닭죽을 먹였다. 참관인이 잠든 사이에 '누군가'는 표를 바꿔치기(전문 용어로 '환표')했다. 그나마 수면제를 먹은 경우는 점잖은 것이었다. 다른 투표 참관인은 자유당이 동원한 폭력배에게 얻어맞고 쫓겨나기도 했던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닭죽 사건'이다.

'피아노표'라고 혹시 들어보셨는지? 개표원이 몰래 숨겨둔 인주를 손가락에 묻힌다. 자신이 떨어뜨리고자 하는 후보의 표가 나오면, 마치 피아노를 연주하듯 인주를 발라서 무효표를 만드는 것이다. 어린애 장난처럼 들리지만 불과 몇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리기도 하는 총선의 경우 특히 그 효과가 크다. "피아노표는 한국 부정선거 역사상 손꼽히는 '아이디어'이며 '가성비' 측면에서도 탁월한 수법"(39쪽)이라고, 프로파간다 편집부는 경탄을 내뱉는다.

공정한 선거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에센스 부정선거 도감>을 읽으며 새삼스럽게 결의를 다지게 된다. 우리는 앞으로도 투표할 것이고, 정당하게 승리할 것이다.


2016.04.26ㅣ주간경향 1173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6-04-09

[북리뷰] 웃음과 냉소의 경계, 혁명의 길을 묻는다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
스르자 포포비치, 문학동네, 1만5천원.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의 저자 스르자 포포비치는 한국어판 출간을 앞두고 특별히 서문을 추가했다. 그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미국의 에이전시로부터 한국의 한 저명한 출판사가 이 책을 출간하고 싶어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을 때, 맨 처음엔 한국의 북쪽에 있는 이웃--2,500만 명의 인구가 세계 최악의 독재 아래 고통 받고 있는 곳--때문이겠거니 했습니다."

물론 농담인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남북간의 격차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같은 소리는 한국인끼리 주고받는 '인사이더 조크'가 아닐까 싶었다. 어쨌건 대한민국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군사정권의 무릎을 꿇리고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냈으며, 이후 수평적 정권교체를 통해 오늘에 이르고 있는 동아시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니 말이다.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누굴까 해서 책날개를 보니 옛 기억이 났다. 2000년대 중후반, 미국의 국제 정치 전문지 〈Foreign Policy〉의 한국어판을 만들 때 나는 이미 스르자 포포비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세르비아의 독재자를 '유쾌한' 방식으로 몰아낸 대중운동의 지도자. 나는 그가 쓴 글의 한국어 번역본을 편집했거나, 그것이 단신이었다면 내가 손수 한국어로 옮기기도 했을 것이다.

한동안 잊혀져 있던 스르자 포포비치는 단행본으로 내 책상 위에 돌아왔다. 미국의 리버럴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혁명'과 '저항'을 포장해주는 장사꾼이 아닐까 하던 의혹은 접어둔지 오래였다. 그는 실제로 독재 권력과 맞서 세르비아를 넘어 동유럽 전체의 정치적 변화를 견인해낸 중요 인사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의 표지와, 짐짓 유쾌한 척 하는 그의 말투에 지나치게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SNS에 '웃기는 짤방' 몇 개 올린다고 세상이 알아서 바뀔 것처럼 떠드는 그런 종류의 책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정 반대로, 이 책은 사회 변화를 꿈꾸는 이들이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독재자를 그럼 대체 어떻게 무너뜨려야 하는가? "뭔가 사소한 것, 적절한 것, 그러면서도 성공적일 수 있는 것, 그것 때문에 죽거나 심한 폭력을 당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핵심이다."(34쪽) 엘리베이터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 같은 아주 사소한 일이어도 괜찮다. '작은 성공'을 쌓아나갈 수 있다면, 그래서 독재자의 권위에 작은 균열을 낼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한 작은 도전이 가장 큰 변화를 낳은 사례로, 저자는 간디의 '소금 행진'을 꼽는다. 간디는 인도의 독립을 꿈꾸었지만, '인도를 독립시키라'며 영국에 총부리를 겨누지 않았다. "단순하고 논란의 여지없는 대의를 위해 모든 인도인이, 그들의 정치적 성향이나 신분과 상관없이, 그의 곁으로 모여들어 싸울 필요가 있었다. 1930년, 간디는 결국 답을 찾았다. 소금이었다."(55쪽) 영국에 세금을 내는 대신 바닷가까지 걸어가 소금을 만들겠다는 간디의 행진은, 처음에는 77명의 추종자로 시작했으나, 결국 수만 명이 동참하는 대규모 시위가 되고 말았다.

웃음을 잃지 말라, 독재자에게 겁을 먹지 말라. 모두 맞는 말이고, 좋은 말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핵심은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작은 비폭력 투쟁을 하나씩 승리로 이끌어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임계점을 넘겨버리는 것이다. 풍자에 힘을 쏟는다며 냉소만 퍼뜨리고, 모든 투쟁을 '이번 투표를 위한 것'으로 만든다면, 오히려 변화는 멀어진다.

쫄지 마? 그건 기본이다. 더 중요한 건 웃음을 터뜨리되 냉소하지 않는 것이다. 간디의 소금 행진 이후 인도의 독립까지는 17년이 걸렸다 


2016-03-16

[북리뷰] '알파고 쇼크', 인류의 미래를 묻는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2만2천원.

'인공지능'(AI). 최근 우리 사회를 새삼스레 달구고 있는 화두다. 알파고 대 이세돌의 바둑 대국에서 알파고가 첫 승을 거두기 시작한 후 사람들은 AI와 제4차 산업혁명과 그로 인해 사라질 일자리 등에 대해 분분하게 의견을 나누고 있다. 구 소련이 미국보다 앞서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렸던 '스푸트니크 쇼크'처럼, '알파고 쇼크'가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대체로 공허하기 짝이 없다. '인간'에 대해, 혹은 '지능'이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지 등에 대해 축적되어 있는 선행 논의가 없다보니, 단순한 흥미 위주의 보도 혹은 '인문학적 통찰'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모습이다.

인공지능이 인간과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한 지금, 우리는 오히려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지 않을까. 대체 왜 인간은 다른 모든 동물과 다른가? 무엇이 우리를 유인원의 한 갈래에서 '인공지능의 창조주'까지 도달하게 한 것일까?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대담한 질문과 그에 답하는 서술로 인류 역사를 관통한다.

역사의 진로를 형성한 것은 세 개의 혁명이었다. 약 7만 년 전 일어난 인지혁명은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약 12,000년 전 발생한 농업혁명은 역사의 진전 속도를 빠르게 했다. 과학혁명이 시작한 것은 불과 5백 년 전이다. 이 혁명은 역사의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르고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을 새로이 시작하게 할지도 모른다. 이들 세 혁명은 인간과 그 이웃 생명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것이 이 책의 주제다.(19쪽)

유발 하라리는 모든 논의에 앞서 '인간'이라는 범주를 탈신비화한다. 그 어떤 '인문적' 관점도 배제한 채, 오직 '호모 사피엔스'라는 유인원의 한 종으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또 다른 유인원인 네안데르탈인과 경쟁 관계였다. 그러나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인지 혁명을 통해 복잡하고 추상적인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더욱 효율적이며 날카로운 무기와 발달된 사냥 체계를 얻었다. 결국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하고 호모 사피엔스가 '인류'로 자리매김한다.

농업혁명은 잉여생산물을 낳았고, 잉여생산물은 그 생산물을 독점하는 계급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호모 사피엔스의 인지 혁명이 이 시점에서 빛을 발한다. 자연적 부족의 최대 규모인 150여 명을 넘어서는 사회를 구성하려면 윤리, 도덕, 법, 계급 등 자연 상태에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 원리가 필요하다. "사회를 지탱하는 질서는 위대한 신이나 자연법에 의해 창조된 객관적 질서라고 늘 주장해야"(169쪽) 하는 것이다.

그렇게 수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진행되어 오던 인간의 역사는 과학혁명을 통해 새로운 차원에 접어들었다. "과학혁명은 지식혁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무지의 혁명이었다. 과학혁명을 출범시킨 위대한 발견은 인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는 발견이었다."(357쪽) 과학혁명은 신, 과거의 현자, 기타 전승되는 문헌의 저자들이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수천년 동안의 가정을 폐기했다. 그 결과 인류는 달에 사람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이제 호모 사피엔스는 생명의 영역에까지 과학 기술의 힘으로 침범해 들어가고 있다. 애초에 농업혁명 그 자체가 장기간에 걸친 유전자 조작이었다. 알파고 등 다양한 인공지능 시스템을 구축하여 인간의 사고를 모방하는 것 또한 그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파고 쇼크'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를 만들어왔고,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2016.03.29ㅣ주간경향 1169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6-03-03

[북리뷰] 정치의 계절, 지식인의 역할을 묻는다

지식인을 위한 변명
장 폴 사르트르, 이학사, 8천원


내가 그에게 '지식인으로서 부끄럽지 않냐'고 물었을 때, 그는 '지식인이라니, 그런 구닥다리같은 용어를 사용하냐'며 되려 핀잔을 했다. 나는 그 대화를 나눈 후 문득 궁금해졌다. 지식인이라는 개념은 진정 오늘날 효용을 다한 것일까. 20세기의 중후반부, 21세기의 초반부와 달리, 2010년대에는 그 단어가 그저 오작동할 뿐일까. 이런 질문에 대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사르트르 뿐이다.

<지식인을 위한 변명>은 사르트르가 일본의 도쿄와 교토에서 1965년 9월과 10월에 세 차례 강연한 내용을 정리하여 묶은 책이다. 물론 사르트르 특유의 실존주의적, 다시 말해 휴머니즘적 관점을 투영하여 재해석한 하이데거의 철학적 개념들이 제시되어 있긴 하지만, 애초부터 강연을 염두에 둔 원고였던 탓에 집중해서 읽으면 전제 지식이 없어도 어렵잖게 내용을 따라갈 수 있다.

첫째 날 하이데거는 "지식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지식인에 대해 사람들이 쏟아붓는 불만과 비판을 종합하여, 사르트르는 "지식인이란 자신과 무관한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는 사람"(12쪽)이라는 가설적 정의를 끌어낸다. 가령 드레퓌스 사건을 생각해보자. 그것은 어디까지나 드레퓌스라는 한 군인과 군 참모부의 갈등이다.

그러나 자칭 타칭 지식인들은 '남의 일'에 끼어들었다. 그 중 군인은 없었다. 소설을 잘 쓰는 사람, 시를 잘 짓는 사람, 법률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 과학자 등이 '참견'을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얻은 명망을 바탕으로, 그러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분야의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개입하는 사람들이다.

강연은 다음날로 이어진다. "지식인의 기능"에서 사르트르는 어떻게 특정 분야의 지식만을 쌓은 사람들이 보편적인 선을 대변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도전한다. 만약 그 지식인이 '기능적 지식인'의 위치에 머무르려고만 한다면 그는 부르주아라는 특정 계급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일 뿐 진정 보편적인 지식인이 되지는 못한다. "따라서 지식인은 자기 고유의 영역 속에서 보편성이 결코 완결된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오히려 보편성은 계속해서 만들어가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보편의 전문가입니다."(64쪽)

사르트르는 노동계급을 '보편계급'으로 바라보는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하여 이러한 논의를 하고 있다. 하지만 보편계급으로서의 노동계급에 대한 믿음을 견지하지 않더라도, 보편성을 계속해서 '만들어가는 것'이 지식인의 책무라는 그의 말은 여전한 울림을 지닌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호남 사람, 이주민 등 다양한 이름 하에 지금도 한국 사회에서는 수많은 이들이 인간으로서의 보편성을 온전히 존중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해석'은 3부 "작가는 지식인인가"의 존재를 놓고 볼 때 더욱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사르트르는 오직 글을 쓸 뿐인 작가를 다른 분야의 지식인과 다르게 여긴다. 작가의 작업은 그 자체만으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상의 보편성을 창조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자가 작가와 갖는 진정한 관계는 비-지식으로 남는 것"(139쪽)이라는 말은, 작가의 작품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보편성을 부여한다.

우리는 더 이상 지식인에게 그 어떤 '보편성'도 기대하지 않는다. 화끈하게 '정치적 스탠스'를 밝히고 편을 드는 것이 더욱 정당하다는 인식 탓이다. 한때는 그게 옳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식인은 '보편성'으로부터 추방당한 사람의 편에 서고, 그러기 위해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러한 풍토가 되살아나기를 희망한다.


2016-02-28

[북리뷰] 지금 당장 전국 고등학교에 보내야 할 책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다치에, 창비, 9천8백원.


우리는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마치 욕설이나 비하의 표현처럼 사용되기도 하는 그런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범위는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만큼 넓어진다. 여성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개그맨이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대한민국 뿐 아니라, 엠마 왓슨이 유년기를 보낸 영국에서도, 그리고 그러한 서구 제국에 의해 식민 지배를 당했던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에서도, 여전히 페미니즘은 '불편한 단어'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열네살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우리는 오콜로마의 집에서 무언가에 대해 언쟁하고 있었습니다. 둘 다 책에서 배운 설익은 지식으로 가득 차 있던 때였지요. 논쟁의 주제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한참 주장하고 또 주장했더니 오콜로마가 내게 이렇게 말했던 것은 기억납니다. "있잖아, 너 꼭 페미니스트 같아."

그것은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말투에서 알 수 있었지요. "너 꼭 테러 지지자 같아"라고 말하는 듯한 어조였거든요.(12쪽)

'페미니스트'라는 비난을 듣는 것, 이것은 지구 어디에서나, 인류의 절반을 구성하는 여성이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때 겪게 되는 보편적 현상이다. 페미니스트라는 멸칭은 때로, 페미니즘을 제외한 다른 논의의 지점에서 스스로의 진보성을 주장하는 남자들에 의해 발화되는데, 이 또한 마치 동전의 뒷면처럼 세계 어느 곳에서나 관찰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때리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주장하면 전혀 반대하지 않을 사람들이, '우리는 이 사회에 현존하는 여성차별에 대해 맞서야 합니다'라고 말하면,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는 나이지리아의 소설가인 치마만다 응고지 아다치에의 TED 강연 대본과, 그 외 두 편의 에세이를 합쳐 묶은 작은 책이다. 나는 이 책을 필요에 의해 한 번 읽고, 이 서평을 준비하면서 다시 읽었다. 두 번째 읽었는데, 처음 읽었을 때와 소감이 같다. 표제작인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는 오늘날 우리가 페미니즘에 대해 공유할 수 있고, 공유해야 하는 보편적 인식의 최소한이다.

저자 자신의 경험과 관찰을 능란하게 꿰어내는 본문을 지나 곧장 결론으로 향해보자. "그리고 오래전 그날 내가 사전을 찾아보았을 때,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페미니스트: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

아무리 많은 이들이 페미니스트라는 말에 부정적 함의를 덧씌운다 한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가 변할 수는 없다. 스스로가 차별의 대상이 되는 여성이, 자신이 억압의 주체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남성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주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물러나는 것은 현대 사회의 기본적 공리인 '모든 사람의 평등'을 포기한다는 말과 같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의 스웨덴어판은 2015년 12월 출간되었다. '스웨덴 여성 로비'라는 단체는 직후 이 책을 스웨덴의 모든 16세 학생들에게 선물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한민국과 달리 스웨덴은 국정교과서를 채택하는 나라가 아닌 만큼, 이 책은 스웨덴의 고등학생들이 가장 널리 읽는 단 한 권의 책이 되는 셈이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바로 이 책이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 동시에,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들 역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주변에 권하기를, 특히 중고등학교에서 활발한 독서와 토론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2016.03.01ㅣ주간경향 1165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6-01-28

[북리뷰] 우리 주변의 제제들을 위하여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J.M. 바스콘셀로스, 동녘, 1만원.

가수 아이유의 노래 'Zeze'로 인해 촉발된 논란이 없었다면 나는 이 책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보니, 적잖은 사람들이 이 책의 주인공인 제제에게 퍽 깊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다시 읽어보았다.

적어도 이 서평을 접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이 책의 줄거리를 알고 있을 것이다. 1960년대 브라질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제제라는 소년이 살고 있다. 나이는 여섯 살, 학교에 갓 다니기 시작한, 한창 말썽을 부리는 나이다. 그런데 역자가 붙인 주에 따르면, 제제의 본명은 주제(요셉의 포르투갈식 발음)고, 그의 성은 바스콘셀로스다. 다시 말해 작가와 이름이 같다. 자전적 소설이다.

제제는 말썽을 부리고 가족들에게 늘 얻어맞는다. 가벼운 체벌을 당하는 수준이 아니라, 이빨이 부러지고 얼굴이 피범벅이 되도록 맞는다. 신체적 폭력만이 전부가 아니다. 제제의 아버지는 실업자가 된 상태고, 가족은 가난에 시달린다. 여섯살 소년이 아버지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담배를 사 주고 싶어서 구두통을 둘러매고 거리로 나선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교단의 꽃병에 꽃을 꽂아두라고 요구하는데 그것이 전혀 부당한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요컨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1960년대 상파울루 인근 브라질의 모습은 어느 시점까지의 대한민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한국은 기적적인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아버지의 실직 상태'가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않았지만, 여차하면 아이들을 심하게 두들겨 패는 나라였던 것이다. '구두닦이 소년'만큼 특정 연령대에게, 향수로 포장된 가난의 기억과 공포를 자극하는 요소도 그리 흔치 않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머나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유독 이 소설만큼은 모국 브라질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의 인기를 한국에서 누리고 있다. 반면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이렇게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앞서 우리가 살펴본 이유들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전혀 이상하거나 놀랍지 않은 일이다. 20세기 중후반부의 한국인 독자들은 어렵지 않게, 늘 두들겨 맞고 있는 가난한 소년 제제에게 감정이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학평론가 황현산 교수가 트위터에서 '뽀르뚜가는 밍기뉴와 마찬가지로 제제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친구'라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 작은 소동이 벌어졌던 이유도 아마 그런 것 때문일 것이다. 제제가 원하는 건 뭐든지 사줄 수 있다는 부유한 포르투갈 사람이 가난한 동네에 들락거리는데, 두 사람은 "우리 사이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하자고 굳게 약속"(190쪽)했고 그 약속이 끝까지 지켜진다. 또 다른 상상의 친구인 라임오렌지나무 밍기뉴가 잘려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시점과, 제제의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교통사고로 뽀르뚜가가 '사라지는' 시점이 일치하는 것 역시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제제는 어른이 된다. 하나이며 둘인 상상의 친구를 떠내보내면서 말이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소년의 성장과 눈뜸에 대한 빼어난 작품이다. 하지만 이 책을 바라보는 20세기의 한국인과 21세기의 한국인의 감상이 동일하다면, 그것은 제제가 겪는 고통만큼이나 비극적인 일일 수밖에 없다. 폭력과 학대 속에 혼자 커나가며 상상의 친구로부터 가까스로 위안을 찾는 제제의 이야기가 '평범한 소년의 성장담'쯤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아픈 과거는 문학의 몫으로 남겨두자. 우리 주변에 아직도 '제제'가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만 한다.


2016.02.16ㅣ주간경향 1163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6-01-14

[북리뷰] 남자가 페미니즘 서적을 읽는다면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글로리아 스타이넘, 현실문화연구, 8500원

'아직 우리의 수준은 근대에 도달하지도 못했는데 섯불리 탈근대를 논한다'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할 무렵 많은 이들이 비판해왔다. 여성주의가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던 지난 해, 그리고 올해에 이르기까지, 일부 지식인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대해 논하는 광경을 보는 내 심정이 바로 그렇다.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다각도로 차별당하고 있다는 것을, 프라이버시부터 생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층위에서 안전을 위협당하고 있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이 새해가 밝아온 후에도 똑같은 사고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개탄을 넘어 계몽으로 나아가보자. 심사숙고 끝에 나는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고전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을 꺼내들었다. 여성주의에 관심이 있는, 적어도 말 한 마디라도 덧붙이고 싶은 남자가 있다면, 가장 첫 번째로 읽어야 할 책이 바로 이것이다.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은 미국에서 1985년 처음 출간되었다. 2001년 한국에 번역되어 나온 책은 1995년에 출간된 개정판이다. 10년이 지난 후 개정판이 나왔고, 그 후로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 당연하게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운동가로서의 나는 이 책이 아직도 읽히고 있다는 데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 독자들 대부분이 이 책의 내용이 아주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 느낀다면 더 큰 보람을 느낄 것이다."(15쪽)

여기서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아주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 말하는 바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건 단순히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만을 뜻하는 게 아닐 것이다. 그가 초판을 발행한 1985년과 달리, 1995년에는 여성 뿐 아니라 다양한 성소수자들의 문제가 페미니즘 혹은 성 정치의 논의 대상으로 확고히 자리를 굳히고 있었다. '여성'이라는 단일한 젠더 범주 그 자체에 의문 부호를 던지는 것이 당대의 지적 경향이었다는 것이다.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이라는 도발적인 질문은, 1985년에는 남성들이 지배하던 지성계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1995년에는 다각화된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도 도전과 반발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2016년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남자에게는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을 가장 먼저 권하게 된다. 이 책은 복잡한 이론적 논의를 경유하지 않고 곧장 여성차별의 쟁점들로 들어간다. 넓은 독자들을 염두에 둔 페미니즘 잡지 <미즈>에 실렸던 글을 모은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오늘날의 페미니즘 이론은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종종 듣는다.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은 그와 정 반대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읽고 이해할 수 있다면 이 책도 이해할 수 있다.

여성주의 내의 다양한 입장과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이 책을 입구로 삼는 편이 낫다. 3세대 페미니즘이 극복하려 했던 2세대 페미니즘의 논의가 무엇인지 전반적인 그림을 그리고 나면, 여성주의 내부의 차이에 대해서 좀 더 맥락을 잘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여성주의 내에도 다양한 입장의 차이가 있다'는 문장을 달달 외우지 말고, 차라리 '화이트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트랜스젠더들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트랜스젠더: 신발이 맞지 않으면 발을 바꿔라?"를 읽는 편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여성주의는 실천이면서 동시에 이론이다. 실천을 위한 이론이고, 이론 그 자체가 실천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이론의 언어에 친숙한 남자들이 책 한 권 달랑 읽고 여자들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치는' 웃지 못할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한다. 남자들이여, 일단 구구단부터 떼고 나서 미적분을 논하기로 하자.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은 그 좋은 출발점이다.


2015-12-29

[북리뷰] 북한의 새해는 우리보다 늦게 온다

달력과 권력
이정모, 부키, 1만2800원.

새 해가 시작되는 이맘때, 달력은 일상 속의 사물을 넘어 하나의 사유 대상이 된다.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은 인위적으로 단절되고 그것이 하나의 개념들을 이루어내며, 그 개념의 내용을 보기 좋게 편집하고 구성한 사물이 바로 달력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본에 체류중이던 생화학자 이정모는 도서관에서 독일의 과학 잡지 <게오(GEO)>를 펼쳐들었다. 1999년 1월의 일이다. 새로운 천년이 다가온다는 기대감에 전 세계가 들떠있던 시절이다. '지난 천년은 총 며칠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질문을 본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윤년 규칙을 조합해 답을 내놓았지만, 결과는 그가 내놓은 정확한 계산보다 열흘이나 적었다. "율리우스 달력과 그레고리우스 달력의 윤년 규칙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열흘이나 틀린 것이다."(5쪽) 그 결과에 납득할 수 없었던 그는, 독일의 공립도서관들이 제공하는 풍부한 참고 문헌의 바다를 헤엄치며, 달력의 과학적 측면 및 그에 얽힌 사회 문화 권력의 이야기를 담은 한 권의 책을 펴냈다.

<달력과 권력>이 탄생하게 한 문제는 바로 이런 것이다. "1582년 10월 5일부터 10월 14일까지 로마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19쪽) 정답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 한 건의 살인 사건도 없었고, 그 누구도 물건을 사고 팔지 않았다. 아무도 농사짓고 밥짓고 집짓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의 칙령에 의거해, 그동안 사용하던 율리우스(카이사르) 달력의 오차를 바로잡고자 열흘을 통째로 빼버린 탓이다.

1582년 10월의 로마 달력에는 5일부터 14일까지가 빠져 있다. 하지만 이 달력은 잘못 인쇄된 것이 아니다. 또는 못된 폭군이 재미 삼아 백성들에게 어처구니없는 달력을 강요한 것도 아니다. 이 달력은 잘못된 것을 고치기 위한 달력으로, 제대로 된 달력이었다. 어쨌든 이 달력에 따라 사람들은 1582년 10월 4일 목요일 밤에 잠들어 다음 날인 금요일 10월 15일 아침에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20쪽)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유럽의 열흘. 그것은 고대 로마부터 중세 유럽을 거쳐 당시까지 사용되고 있던 율리우스 달력의 오차 때문에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달력과 계절이 맞지 않았다. 그 결과 농사에 지장이 왔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춘분을 기점으로 삼아 계산하는 부활절의 날짜 또한 맞지 않게 되었다. 부활절을 기준으로 삼는 온갖 기독교 행사들의 날짜가 어그러졌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유럽은 제 시간을 되찾았고, 기독교를 믿는 유럽이 세계를 재패하면서, 그레고리우스 달력은 오늘날 세계의 표준 달력이 되었다.

<달력과 권력>은 흥미진진하면서도 아쉬운 책이다. 율리우스 달력을 거쳐 그레고리우스 달력이 확정되기까지의 문화사가 책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분량을 차지한다. 이후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등의 혁명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념을 담아 만든 달력들을 소개하고 그 실패를 곱씹어본다. 그러나 이후 온갖 고대 문명의 달력들과 조선 세종때 만들어진 칠정산 등을 소개하는 대목으로 넘어가면 책의 구성에 일관성이 사라진다. 그레고리우스력을 개혁하려던 온갖 시도들이 그 뒤를 잇는데, 그 자체는 재미있지만, 책의 탄력은 이미 떨어진 상태가 되어버린다.

북한의 새해는 우리보다 30분 늦게 밝는다. 최근 시차를 변경했기 때문이다. 달력을 만들고 공표하는 것은 결국 권력의 본질 중 하나다. 모든 사회 구성원의 시간을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에 맞추는 것이니 말이다. <달력과 권력>은 이러한 주제를 다룬 첫 번째 책이다. 새해에는 더 많은 과학 교양 저자들이 시간과 힘의 문제를 다뤄주면 좋겠다.


2016.01.12ㅣ주간경향 1159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5-12-17

[북리뷰] 기후변화, 이제는 '회의'할 시간이 없다

6도의 멸종
마크 라이너스, 세종서적, 1만6천원


2010년대에 들어서 멸종된 종(種)은 한둘이 아니겠지만,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온난화 회의론자'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들의 세력은 건재한 것처럼 보였다. 대기 중 탄소 농도와 지구의 평균 기온이 거의 확실한 상관관계를 보여준다는 것에 거의 모든 진지한 과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소수 온난화 회의론자들은 태양 흑점이나 통계의 오류 등을 운운하며 언론의 과도한 관심을 받아왔던 것이다.

지난 12월 12일 파리에서 막을 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자총회(COP21)를 보더라도 그렇다. 전 세계 195개국의 대표단이 모였다. 그 모든 나라의 과학자와 정치인들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주장할 게 아니라면, 이제는 더 이상 온난화 회의론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인간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및 온실가스의 위험성에 대해, 늦게나마 전 세계가 눈을 떴다. 이제는 '왜'가 아니라 '어떻게'에 초점을 맞춰야 할 시점이다.

국내의 여론 동향은 그런데 좀 이상하다. 기후 변화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책보다 <회의적 환경주의자>라던가 <쿨 잇> 같은 온난화 회의론자의 책이 더 잘 팔리는 그런 나라였다는 것을 염두에 두더라도 그렇다. 우리는 우리가 겪게 될 위기가 무엇인지 아직도 실감을 못 하고 있다. 과학 저널리스트 마크 라이너스가 쓴 <6>을 펼쳐보자.

이 책을 대중에게 설명하면서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구기온이 2˚C, 4˚C, 6˚C씩 올라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밤과 낮의 기온차가 15˚C씩 나는 것을 생각하면 그 정도의 변화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수 있다. 목요일의 기온이 수요일보다 6˚C 높다는 것은 외투를 집에 두고 나오면 된다는 의미일 뿐이다. 하지만 지구의 평균 기온이 6˚C 상승한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다.(23쪽)

지금보다 지구기온이 6도 낮았던 그 시절을 우리는 빙하기라고 부른다. 지금보다 5도 이상 높았던 시절도 지질학적으로 발굴되어 있다. '팔레오세-에오세 최고온기(PETM)'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PETM은 지질학적 기록 중에서 지금처럼 화석연료를 태워댄 탓에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는 현상과 가장 가까운, 자연의 실제 사례"(247쪽)라고 저자는 그가 참고한 수많은 과학 논문 중 하나를 인용하고 있다.

그 시절 지구는 우리가 아는 지구가 아니었다. 바다는 뜨겁고 끈적한 산성 액체였고, 해수면의 온도가 높은 탓에 엄청난 토네이도가 얼마 남지 않은 육지를 후려쳤다. 뉴욕, 런던, 상하이 등 중요 항구 도시들이 있어야 할 곳은 진작에 물에 잠긴 상태다. 물론 인류에게는 지능과 기술이 있으므로 모든 호모 사피엔스가 멸종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문명'을 결코 유지할 수 없다. 우리가 아는 수많은 동식물들과 함께, '인간'으로서의 인간은 사라지고, 대신 수렵과 채집 및 작은 규모의 농업으로 목숨을 이어가는 '동물'로서의 인간만 남게 되는 것이다.

지구기온이 평균 3도 이상 올라가면 그때부터는 탄소 배출량을 아무리 줄인다 한들 소용이 없다. 이미 배출된 탄소가 지구 기온을 높이고, 그로 인해 시베리아의 얼어붙은 땅을 포함해 많은 곳에 묻혀있는 탄소가 더욱 배출되는, 이른바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허리케인 카타리나, 2010년 러시아의 산불, 미국 서부의 극심한 가뭄 등으로 지구기온 평균 1도 상승의 쓴맛을 톡톡히 보고 있다. 온난화 회의론자들에 의해 낭비된 세월이 안타까울 뿐이다. 올바른 정보가 유통되고 여론이 형성되기를 희망한다.


2015.12.29ㅣ주간경향 1157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5-12-03

[북리뷰] 그 가스등을 보라

가스등 이펙트
로빈 스턴, 랜덤하우스코리아, 1만4천800원


'데이트폭력'의 핵심은 '데이트'가 아니라 '폭력'에 있다. 하지만 그 폭력이 적용되고 발현되는 양태는 다른 폭력과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사적으로 친밀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 속에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양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로빈 스턴은 미국에서 20여년간 심리상담가, 교사, 우드헐리더십연구원 등으로 일하며 수많은 상담을 진행해온 리더십 강사 및 컨설턴트다. 그는 데이트나 결혼 등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정신적으로 황폐화하고 지배력을 행사하며 결국 파국으로 몰아가는 '가스라이팅'을 발견하고 이론화했다. 그것은 우리가 모두 다 알지만, 이름을 붙이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던, 또 다른 폭력이다.

'가스라이팅'에 대해 알아보자. 고전 영화 <가스등>에서 잉그리드 버드먼이 연기하는 젊은 가수 폴라는 나이 많은 남자 그레고리와 결혼한 후 자신감을 잃고 회의에 빠진다. 그레고리와 같이 살기 시작한 이후 집안의 물건이 없어지고, 위치가 바뀌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이 생기는데, 그럴 때마다 그레고리의 비난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폴라는 점점 자신이 보고 듣는 것이 사실인지조차 의심하게 된다. 히스테리에 빠진다. 그레고리가 서랍을 뒤지기 위해 가스등을 켤 때, 가스의 압력 때문에 자기 방에 켜둔 가스등은 불빛이 약해지는데, 그 현상이 실제로 벌어지는 것인지 아닌지조차 의심하게 된다. 결국 창밖에서 그 가스등이 흐릿해지는 현상을 목격한 형사의 증언을 통해 폴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을 접고 그레고리의 마수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괴롭힘은 성별과 무관하게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가령 군에 사병으로 입대한 남자들은 이른바 '신병'으로 부대에 갓 배치될 무렵 비슷한 일을 겪는다. 뻔히 다 아는 것을 일부러 틀리게 물어본다거나, 반대로 절대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을 물어본 후 상대가 당황하면 윽박지르는 식으로, '갈구는' 것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가스라이팅'은 남녀 사이에서 발생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나는 수많은 상담 사례를 통해 가해자는 남성인 경우가 많고 피해자는 여성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22쪽) 그 남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여자들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쥐락펴락한다.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가 로맨틱한 이벤트를 연출하는 남자? 그 남자는 상대방 여자에게 억지 감동을 뽑아냄으로써 상대방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여자가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어서 원치 않는 일을 하게 하는 남자 역시, 상대방의 가스등을 흔들리게 하고 있다. 하물며 그 여자를 때리는 남자라면 더욱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가스등 이펙트>는 '가스라이팅'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는 것만으로도 높이 평가받아 마땅한 책이다. 데이트폭력이 나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친밀한 관계 속에서, 가령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에게 입버릇처럼 '뚱뚱하다'고 놀리는 게 어떠한 종류의 폭력인지 우리는 아직 정확한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짓궂은 애정도 관계의 미숙함도 관심의 표현도 아니다. 상대방의 자아를 흔들리게 만들어서 자신의 영향력을 증폭시키려는 폭력적 영향력 확장, 즉 가스라이팅이다.

이 책은 너무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에서만 문제를 바라본다. 책의 대부분이 피해자의 심리 분석과 이루어져 있는데, 이 책의 논지만 반복한다면 그것은 '피해자 탓하기'로 향할 우려가 있다. 그러한 비판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일단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저 흔들리는 수많은 가스등을 보라. 그것은 피해자의 탓이 아니다. 이 명백한 폭력들을 우리는 지적하고 바꿔나가야 한다.


2015.12.15ㅣ주간경향 1155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5-11-19

[북리뷰] 미셸 우엘벡이 말하지 않은 것들

복종
미셸 우엘벡, 문학동네, 1만4500원

지난 1월 7일, 파리에 위치한 풍자 신문 샤를리 에브도의 편집실이 공격당했다. 그 상처가 아물어가나 싶었던 11월 13일 다시금 대형 총기 난사 및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11월의 파리 테러에서는 총 132명의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공격을 당했다.

샤를리 에브도 습격 사건이 벌어지던 날, 미셸 우엘벡의 <복종>이 현지에서 출간되었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우엘벡의 친구 한 사람이 당일 IS의 괴한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한다. 샤를리 에브도 습격은 세계사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사건이다. 혹은, 더 큰 분기점이 될 이번 파리 테러의 전주곡과도 같다. 그 충격 속에서 우리는 일단 이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22년의 프랑스. 소설 속에 실명으로 등장하는 장 마리 르펜이 이끄는 국민전선과, 힘을 잃고 표류하는 사회당, 그리고 모하메드 벤 아베스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가 이끄는 이슬람박애당이 대선을 앞두고 3파전을 벌인다. 1차 투표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국민전선이 1위, 그리고 이슬람박애당이 2위를 기록한 것이다. 사회당은 정권을 얻기 위해 이슬람박애당과 손을 잡아야 할 처지에 몰렸다. 그들은 장관 자리의 절반, 알짜배기인 재정부와 내무부 등을 넘겨받는 댓가로, 이슬람박애당에게 교육과 결혼에 대한 권한을 넘겨준다.

교육과 결혼. 어찌 보면 비교적 사소한 것 같지만 그 함의는 실로 깊고 중대하다. 주인공인 프랑수아를 만나 대화중인 프랑스의 정보 요원은 그 전략을 이렇게 설명한다. "경제니 지정학이니 하는 것들은 신기루일 뿐이에요. 아이들을 장악하는 자가 미래를 장악한다, 그것으로 얘기 끝이죠."(100쪽) 이슬람박애당은 대체 어떤 사회적 변화를 불러오려는 것일까?

"우선 이슬람은 어느 경우에도 남녀공학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여자들에게는 몇몇 전문과정만이 개방될 뿐이죠. 그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대부분의 여자들이 초등교육을 마친 뒤 가사교육 학교를 거쳐 가능한 한 빨리 결혼하는 겁니다. 그리고 극소수의 여자들만이 결혼 전에 문학이나 예술 공부를 이어가고요. 이것이 그들이 바라는 이상적 사회의 표본이죠."(101쪽)

대기업이 아니라 가족기업 중심으로 경제 체제를 바꾸고, 여성들을 일자리에서 쫓아낸 후 가사수당을 지급하는 등, 우리가 알던 현대 사회의 모습을 이슬람박애당은 서서히 뒤흔든다. 실업률에 시달리는 가난한 남자들에게는 자영업자의 꿈을 불어넣어주고, 사회의 의사결정권을 쥐고 있는 부유한 남자들에게는 일부다처제 도입을 통해 문자 그대로 '성 로비'를 벌인다. 모든 교육 기관이 이슬람 교육 기관이 된 탓에, 개종을 하지 않으면 교수직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 프랑수아는 개종하고, 젊은 부인을 맺어주겠다는 약속도 받은 채, 다짐한다. "조금은 이런 식으로 몇 년 전에 내 아버지가 혜택을 입었듯, 내게도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것이었다. 그것은 이전의 삶과는 그다지 상관없는 두번째 삶의 기회가 되리라."(363쪽)

우엘벡은 의도적으로 그러한 변화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고통을 도외시한다. 중년 남자 지식인을 화자로 삼고 있으면서, 중년 남자 지식인이 어떻게 종교화, 보수화 속에서 '태평천하'를 누리는지 신랄하게 풍자하기 위한 기법이다.

<복종>은 이슬람포비아를 느끼는 프랑스 사회를 바라보는 한 위선적인 중년 남성 지식인을 바라보는 우엘벡의 시각을 서사화해 담아낸 작품이다. 바로 그렇게 이 책은 남자 대학 교수의 눈을 통해 이슬람교를 둘러싼 프랑스 사회의 갈등 지점을 절묘하게 (비)가시화한다.  그것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는지는 독자가 판단할 몫으로 남겨둔다.


2015-11-04

[북리뷰] 남성 과잉 사회? 여성 혐오 사회!

남성 과잉 사회
마라 비슨달, 현암사, 1만8천원

<사이언스>의 중국 특파원인 저자는 10대 시절을 아시아에서 보낸 후 미국으로 돌아와 중국사를 공부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비슨달의 어머니는 이혼 후 홍유라는 이름의 중국인 하우스메이트와 함께 일종의 공동 육아 체계를 구축했다. 어린 시절부터 미국인이면서 동시에 중국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것이다. 그는 자라면서 중국어를 배우고 마침내 중국으로 유학을 갔다. 여자와 남자가 평등한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꿈을 품고 말이다. "마오쩌둥은 여성이 하늘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중국에 갈 때까지 나는 그 말을 믿었다."(9쪽)

그가 유학 시절 목격하고, 다시 기자의 신분으로 돌아간 중국의 하늘은, 그러나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어느 교실에 가도 남학생들이 여학생보다, 자연 성비를 넘어 월등히 많은 현상이 목격되었던 것이다. "내 어머니의 아이이자 홍유의 아이였던 나는 그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늘이 처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12쪽)

우리는 이 현상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현재의 30대가 가장 극심하게 겪고 있는 성비 불균형이 바로 그것이다. "1989년 한국에서 성 감별 열풍이 한창일 때 첫아이의 성비는 거의 정상 수치인 104였지만 둘째의 출생 성비는 113, 셋째는 185, 넷째는 209였다. 한 부부가 딸보다 아들을 낳을 확률이 1대2를 넘어선 것이다."(50쪽) 남자는 많고 여자는 없는 사회, 남성 과잉 사회가 만들어졌다.

저자는 남성 과잉 사회, 혹은 여아 집단 선별 낙태가 벌어지게 된 이유를 아주 거시적인 관점에서부터 조명한다. 성비가 무너진 나라에서는 태아 선별 낙태 기술이 도입되기 전부터 태어난 여아를 살해하곤 했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화하던 초기부터 발견된 바, "120만 명이 거주하는 한 정착지에서 매년 약 2만 명의 여아가 죽는 것으로 나타"(99쪽)나기도 했던 것이다. 1960-1970년대 미국의 대중들을 사로잡은 '인구 폭탄'에 대한 공포가 그 위에 불을 붙였다. 프린스턴 대학의 식물학자 폴 에를리히가 쓴 책 <인구 폭탄>이 200만 부 넘게 팔리면서, 무지막지하게 불어난 인구, 특히 아시아인들이 미국으로 넘어올 것이라는 대중적 공포가 확산된 것이다. 그리고 초음파 검사기가 양산 후 보급되기 시작했다. 1억 6천만 명이 넘는 여아들이 '사라져'버린,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대량학살의 조건이 충족된 것이다.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의 일환일 수도 있겠으나, 저자는 성비가 무너진 사회의 성차별적 문화보다는, 인구 조절과 통제라는 대의를 내세우고 여아 선별 낙태를 방조하거나 심지어 지원한 미국의 정책과 과학자들을 향한 비난에 더 큰 무게를 두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같은 기술이 서구와 아시아에 동시에 보급되었을 때, 유독 아시아의 성비만이 크게 균형을 잃었다는 것은, 이 문제가 기술 차원의 것이 아님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술 보급 전까지는 태어난 여아를 죽이던 문화권에서, 이제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을 미리 '처리'해버린 후, 수십년 후 자기 아들이 장가가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며 한탄하고 있다. 저자와 달리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그러한 문화권 속에 살고 있고, 좀 더 적극적으로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를 내야 마땅하다.

여성 혐오는 남성 과잉의 원인이다. 남자들이 '결혼 시장에서 소외되어' 여성 혐오를 한다는 설명은, 그 남자들에게 감정이입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는 해주겠지만, 오래도록 지속되어온 여아 살해 풍습이 신기술을 만나 폭발하는 매커니즘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이 야만을 직시하라. 그래야 문제가 보이고, 올바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15.11.17ㅣ주간경향 1151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5-10-20

[북리뷰] 용인 벽돌 투척 사건, 형벌과 정의를 묻는다

마르부르크 강령
프란츠 폰 리스트, 강, 1만5천원

일군의 철학자들이 기존의 것과 전혀 다른 발상을 떠올리고, 세력화하여, 최종적으로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철학의 개념과 현실의 작동 사이에는 깊고도 넓은 골이 패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철학자가 법철학자라면 사정이 조금 다를 수도 있다. 법은 세상의 작동 방식을 추상화한 관념 체계이니 말이다.

프란츠 폰 리스트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피아니스트 리스트의 사촌동생으로, 19세기 독일 형법학의 근본적 방향 전환을 불러온 인물이다. 이른바 형법에서의 '신파'와 '구파'의 대립 중 '신파'를 대표하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구파'는 죄형법정주의라는 대원칙에 입각하여, 범인의 책임 능력과 행위에 따른 예측 가능한 처벌이 형법과 형사정책의 이상이라고 보았다. 반대로 '신파'는 범죄라는 행위는 범죄자라는 사람이 저지르는 것이므로, 그 양자를 떼어놓고 볼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우리가 범죄자를 처벌할 때에는 그가 저지른 행위 때문에 처벌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처벌하는 것인가? 우리의 판단 대상은 행위인가 아니면 행위자인가?"(84쪽, 강조는 원문)

근대 형법의 근본 원칙들을 생각해보자. 형법은 원칙적으로 행위자가 아니라 행위만을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다. 살인자는 살인을 '했기' 때문에 처벌을 받을 뿐, 과거에 살인을 했던 '살인자'라는 이유로 처벌을 받는 게 아니다. 또한 그 행위자에게는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인식과 통제력이 있을 때에만 처벌할 수 있다. 정신이상자는 살인을 저질러도 치료의 대상이 될 뿐이다. 오직 행위시에 존재하는 법에 의해서만 처벌을 받는다. 그러므로 이제는 간통을 해도 간통죄로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다.

리스트의 생각은 달랐다. 기계적으로 같은 행위에 대해 같은 형량을 부여한다면, 가령 오래도록 괴롭힘을 당하던 부인이 남편을 살해한 경우와, 가정 학대를 일삼던 남편이 끝내 부인을 살해한 경우에 같은 형량을 부여해야 한다. 그런 법 적용은 정의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일단 그는 범죄자를 세 부류로 나누었다. "1) 개선이 가능하고 개선을 필요로 하는 범죄자에 대해서는 개선. 2) 개선을 필요로 하지 않는 범죄자에 대해서는 위하. 3) 개선이 불가능한 범죄자에 대해서는 무해화."(98쪽) 개선 가능한 부류에 대해 인도적 처분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리스트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개선 불가능한 자들로부터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우리가 사형을 원하지 않고, 범죄자를 귀양 보낼 수도 없기 때문에 남은 방법은 평생 동안(또는 기간을 정하지 않고) 감금하는 것뿐이다."(104쪽)

'행위 뿐 아니라 행위자도 바라보는' 형사 체계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나 악한 상황에 몰린' 이들에게 구제의 손길을 내민다. 그러나 동시에, 특히 사회 내에 혹형주의에 대한 요구가 빗발칠 때, 리스트의 목적사상은 사회적 '목적'을 위해 어떤 수형자들에게 구제 불능의 딱지를 붙인 후 그들을 아예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나치 독일에서, 그리고 가깝게는 대한민국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절도범이었던 지강현은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호관찰제도로 인해 징역 10년에 보호관찰 7년을 추가로 선고받고는, 급기야 탈옥을 감행했던 것이다.

죄가 문제인가, 아니면 사람이 문제인가? 용인 아파트 벽돌 투척 사건의 범인이 만9세의 초등학생임이 밝혀지면서, 우리 사회는 다시 한 번 죄와 벌의 문제를 고민하는 듯하다. 대중적 공분과 열기 속에서 <마르부르크 강령>을 다시 읽어본다. 올바른 형사 체계와 정의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책에서 시작해야 한다.


2015.11.03ㅣ주간경향 1149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5-10-06

[북리뷰] 우리말의 탄생, 우리말의 재탄생

우리말의 탄생
최경봉, 책과함께, 1만4천9백원.

1945년 9월 8일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 일본이 전쟁에서 지고 물러난 후라 경성역 창고에는 갈 곳이 없는 화물이 많이 쌓여 있었다. 화물을 정리하는 인부들 사이에서 이를 점검하던 역장은 수취인이 고등법원으로 된 상자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내용물을 살펴본 역장은 얼마 전 자신을 찾아왔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사람들이 찾던 것이 바로 이것이야.' 1929년부터 시작된 조서어사전 편찬사업의 결실인 원고지 2만 6천5백여 장 분량의 조선어사전  원고가 조선어학회 사건의 증거물로 일본 경찰에 압수당한 지 3년 만에, 해방 후 사전 원고의 행방을 수소문한 지 20여 일만에 조선어학회의 품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37쪽)

<우리말의 탄생>이라는 제목은 언듯 들으면 형용모순 같다. '우리말'은 따로 '탄생'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그냥 '우리나라 사람들이 쓰는 말'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책의 부제인 "최초의 국어사전 만들기 50년의 역사"를 보면, 그리고 위에서 인용된 본문의 첫 문단을 읽으면, 우리는 확실히 깨달을 수 있다. 이 책은 국민국가를 형성하기 위해 한국어를 '모국어'로 재정립해나가던 바로 그 과정의 이야기인 것이다.

1894년 조선 정부는 칙령 제1호 공문식에서 한글을 공식 언어로 선포했다. 제14조의 내용을 인용해보자. "법률 칙령은 모두 국문으로 본을 삼되, 한문을 덧붙여 번역하거나 국한문을 혼용할 수 있다." 그 전까지 한국어는 한반도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식 언어가 아니었다. '문자'를 사용하는 식자층은 고전 한문을 표준어로 사용하고 있었고, 사실상 지배 계급 역시 필요에 따라 한글을 이용해 한국어를 소리대로 적고 있긴 했지만 그 언어에 어떤 공식적 지위와 권능을 부여하지는 않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왕조가 대한제국으로 간판을 바꾸고 신장 개업을 하면서, 근대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한국어를 공식어로 선언한 것은 그 중 하나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이었는데, 문제는 그때까지 조선의 식자층이 한국어 그 자체를 그다지 진지한 연구와 학습의 대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국문'이 된 입말은 어제까지만 해도 '언문'으로 불리던 백성들의 말이었을 뿐이다.

<우리말의 탄생>은 바로 그 '국문'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던 수많은 학자들과, 그들이 겪었던 내부 갈등 및 외부로부터의 탄압 등을 다각도에서 조망하는 책이다. 우리말에 규범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국어로 한국어를 설명하는 사전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한제국에는 그런 국책 사업을 추진할만한 힘이 없었고, 일제는 자신들의 식민 지배의 필요성 때문에 한국어 연구를 어느 정도 방관하다가, 중일전쟁 발발 후로는 철저하게 탄압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국어사전인 <조선말 큰 사전>을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처절한 투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의도와 달리, 한국어 혹은 한글에 대한 신화적 열광을 떨쳐내는 데 도움을 준다. 훈민정음을 만든 것은 세종대왕이지만, 그의 발명품을 이용해 어떻게 한국어를 담아내고 또 다듬어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수많은 논의와 혼란이 있었다. 한글을 알파벳처럼 풀어서 쓰자는 급진적인 논의가 가능했던, 말하자면 우리말의 가소성이 큰 시점을 다각도에서 조망해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우리말이 지금의 이 모습인 것에는 그 어떤 절대적 필연성도 없다. 다만 수많은 학자와 언어 대중이 고심하고 합심하여 이루어 낸 결과물일 따름이다. 한국어는 근대적 민족국가와 함께 탄생하였고, 지금도 계속 재탄생하고 있는, 살아있는 언어인 것이다.


2015.10.20ㅣ주간경향 1147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5-09-17

[북리뷰] 우리의 노동, 어디로 가고 있는가

노동여지도
박점규, 알마, 1만6800원.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우리 모두는 사용자 아니면 피용자, 즉 노동자다. 하지만 '노동자'라는 단어는 2015년 현재, '대기업 노동조합에 소속되어 빨간색 조끼를 입고 파업을 하는 사람들' 정도의 의미로 한정되어 사용되는 듯하다. 게다가 대도시, 특히 서울에서 화이트칼라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 수도권 밖의 넓은 세상을 잘 인지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노동여지도>는 바로 그 좁은 편견을 깨주는 책이다. 주간경향의 독자라면 다들 익숙할 바로 그 연재가 묶여서 책으로 나왔다. 저자 박점규는 1998년부터 민주노총에서 홍보와 투쟁을 담당해왔고, 이후 수많은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활동가이면서, 동시에 기록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수원, 울산, 인천, 서울 등 큼지막한 도시들 뿐 아니라, 군산, 구미, 화성, 광양, 동해, 삼척 등의 소도시에도 노동의 현장이 있다. 저자는 "2013년 3월 수원을 출발해 바다 건너 제주까지, 1년 2개월 동안 전국 28개 지역을 돌았"(8쪽)다.

그가 바라보는 전국 노동 현장의 모습은 모두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각자의 맥락과 상황이 있을테니 다를 수밖에 없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 절망과 탄식 속에 제한된 희망의 사다리를 올라가기 위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현장에서 일하는 육체노동자들 뿐 아니라, 노동조합과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대전의 대덕연구개발특구의 연구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전국공공연구노조 이광오 사무처장의 말이다. "연구원 10명 중 4명이 비정규직이에요. 스펙도 좋고 유학파도 많아요. 지금은 비정규직이지만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죠.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 때쯤이면 쫓겨납니다."(171쪽)

<노동여지도>는 뚜렷한 대립각과 입장을 세우는 책이 아니다.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에는 깊은 동지애가 느껴지지만, 대체로 사측에 대해서는 깊게 언급하지 않는다. 제한된 지면에 연재된 원고여서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노동 현장의 분위기와 상황이 달라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흔히 말하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언급할 때만큼은 비판적인 뉘앙스를 굳이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와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에 맞선 36일간의 파업 이후, 울산의 노동운동은 비정규직을 외면한 부끄러운 역사를 지나왔다. 현대자동차 정규직노조는 생산현장에 16.9퍼센트의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합의했고, 비정규직과의 노조 통합을 세 차례나 부결시켰다."(29쪽)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하나의 노동자계급이 일하던 공장은 연봉 9000만원의 A급 직영노동자, 연봉 4500만원의 B급 하청노동자, 초단기 알바로 일하는 C급 촉탁노동자로 나뉘었다."(36쪽)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책은 냉정한 비판적 시각이 아니라 따스한 동지애에 기반하여 쓰여진 책이다. 전국의 수많은 사업장, 그 중에서도 중소기업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화합하여 승리를 얻어낸 사례들을 기록할 때, 저자는 진심으로 기뻐한다. 타다대우상용차의 정규직 선배들이 매년 2천만원이 넘는 성과급을 포기하면서까지 비정규직 후배들을 정규직이 되도록 도와준 사례를 읽고 있노라면 독자의 입에도 절로 미소가 걸린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사례가 그리 흔치만은 않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같은 대접을 받는 것. 그 당연한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세상이 십수년 째 지속되어왔고, 이제는 정리해고를 넘어 일반해고가 포함된 노사정 대타협안이 통과되었다. 다가올 미래가 그리 희망차 보이지 않는 지금, <노동여지도>를 읽으며 우리의 노동이 나아갈 길을 모색해본다.


2015.10.06ㅣ주간경향 1145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5-09-10

[북리뷰] 우리에게도 와 있는 그들, 난민

내 이름은 욤비
욤비 토나, 박진숙, 이후, 1만6500원.


욤비 토나. 1967년 콩고에서 태어나 현재 대한민국에 거주하고 있는 난민이다. 그의 안타까운 사연은 여러 차례 방송으로 소개되었고, 이 책 <내 이름은 욤비> 역시 널리 알려지고 읽힌 편에 속한다. 콩고에서 작은 부족의 왕손으로 태어난 저자는 제2차 콩고 내전과 관련된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왔고, 2002년에 망명 신청서를 제출한 후 최종적으로는 법무부를 상대로 한 소송을 거쳐 2008년부터 난민 자격을 인정받은 상태다.

책에 따르면 "2012년 5월 말 기준으로 한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사람은 294명, 난민 신청을 한 사람은 4515명"(333쪽)이다. 난민 인정률은 13퍼센트 가량으로, 전 세계 평균 난민 인정률이 약 30퍼센트인 것과 비교해볼 때 대단히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욤비 토나는 그 13퍼센트의 확률을 이겨내고, 약간 높이는 데 기여한, 드문 사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일러두기에 따르면 "이 책은 욤비 토나가 구술한 내용을 박진숙이 기록한 것이다." 책의 내용은 욤비 토나의 궤적을 순서대로 추적하고 있다. 그가 13세에 처음 기숙학교로 떠나던 순간부터, 어떻게 본인이 지망하지 않았던 경제학과에 진학하여 비밀정보국 요원이 되었는지, 왜 중국을 통해 한국에 도착한 난민이 되어야 했는지에 대해 충실한 설명을 제공한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부연 설명이 추가되어 있는데, 그 각각은 욤비 토나라는 한 사람의 삶으로부터 난민 문제 전체를 바라볼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준다. 가령 욤비 토나의 어린 시절이 담긴 1장의 끝에는 콩고민주공화국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이 따라붙고, 그가 대학에 들어가고 사회에 발을 내딛는 2장이 마무리되면서 32년간 장기집권한 독재자 모부투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식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 주변 맥락을 파악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짜여진 책이다.

이 책의 핵심적인 주제에 동의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난민도 사람이며, 대한민국의 수많은 난민들은 누군가의 호의에 기대어 살았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 프랑스에서 정치적 난민으로 살았던 홍세화의 경우를 떠올려보자. 우리가 욤비 토나에게 일말의 동정심과 인류애적 연대감을 가지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난민협약에서 정의하는 바, "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의 사회적 집단의 구성원이거나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위험 때문에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자, 또는 받을 것을 희망하지 않는 자로서 국적국 바깥에 있는 자"들을, 우리는 인류의 일원으로서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이 책은 한 가지 더 깊게 생각해볼만한 문제를 안겨준다. 욤비 토나의 자녀들은 대한민국에서 성장했고, 박지성을 '우리나라 축구선수'로 생각하며 유관순을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로 인지할만큼 문화적으로 동화되어 있다. 콩고로 돌아가 콩고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어하는 저자와 달리, 자녀들은 하루가 다르게 콩고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상태다.

인류애적 당위와 공공선 차원에서 벗어나, 지금 토나 집안에서 발생하고 있는 난민 1세대와 2세대의 문화적 갈등을 사회적으로 확장해보면, <내 이름은 욤비>가 놓치거나 간과하는 지점이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은 오직 아버지의 눈으로 한국 문화에 동화되어가는 자녀들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을 뿐, 아들과 딸의 시각에서 망명자의 자녀로 살아가는 경험을 논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바로 그 세대간의 갈등이야말로 이민 문제의 핵심임에도 말이다.

난민에 대한 논의를 동정심 너머로 끌어올리기 위해, 우리의 고민은 더욱 확장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좋은 출발점이 되어준다.


2015.09.22ㅣ주간경향 1144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15-08-27

[북리뷰] 함성이 포성으로 바뀔 때

8월의 포성
바바라 터크먼, 평민사, 2만9천원.


긴 평화의 시기가 이어졌다. 물론 유럽 내에 국한된 평화였기는 하지만, 식민지의 고통에 힘입어 유럽은 1870년 보불전쟁 이후 50여년간의 '벨 에포크'를 맞이했다. "1914년 당시 변두리에서 벌어졌던 발칸전쟁을 제외하면 유럽대륙에서는 한 세대 이상 전쟁이 없었"(492쪽)다. 그런데 놀랍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유럽에는 호전적 분위기가 넘실거렸다.

당시에는 평균 수명이 오늘날보다 훨씬 짧았음을 상기해보자. 1914년쯤 되면 보불전쟁을 직접 경험한 사람은 거의 다 죽었거나, 전쟁 당시 어린이였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는 과학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던 시기였다. 자고 일어나면 정말이지 세상에 없던 새로운 물건, 가령 자동차라던가 비행기라던가 전화 같은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유럽인들의 가슴을 꽉 채우고 있었다. 그 '무엇이든' 속에는, 당연하게도 전쟁이 포함되어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의 촉발 원인은 이른바 '사라예보의 총성'이지만, 그 암살 사건은 쌓여있는 화약에 불꽃을 튀겼을 뿐이다. 프랑스는 1870년 발발했던 보불전쟁에서의 패배를 잊지 않고 있었다. 반면 "1870년부터 독일인들은 군대와 전쟁만이 독일의 위대함을 뒷받침하는 유일한 원천이라는 사상에 세뇌되어 있었다."(79쪽) 유럽 각국은 평화와 안정을 위해 거미줄처럼 동맹을 맺었지만, 오히려 그 수많은 동맹 관계 때문에 전쟁은 점점 커져만 갔고, 사라예보의 총성은 유럽 뿐 아니라 세계사를 뒤흔든 '8월의 포성'으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미국의 역사 저술가 바바라 터크먼은 1962년 <8>을 출간했다. 그는 전문적인 역사학자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얽매이지 않은 시각으로 역사적 사건들을 되짚고, 그 속의 등장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글쓰기를 할 수 있었다. 이전에도 어느 정도 알려진 작가였지만 <8>은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주었다. 그의 애독자 중에는 존 F. 케네디가 포함되어 있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영국의 맥밀란 수상에게 이 책을 증정하면서 오늘날의 정치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1914년 8월과 같은 함정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6쪽)

그는 역사의 전문가가 아니었지만 본인의 한계를 잘 알고 있는 탁월한 저자였다. 1차 세계대전 전체를 조망하는 대신, 개전 이후 30일까지의 상황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독일군은 이미 세상을 떠난 슐리펜 장군이 세워놓은 작전 계획을 현실에 구현하고자 굳이 벨기에를 침공한 후 프랑스로 향했다. 프랑스의 자신감의 충만했지만 전쟁 대비는 형편없었다. 독일군은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지만, 마른 전투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연합군에게 저지당하고, 1차 세계대전은 길고 지루한 참호전으로 고착되고 만다. "교전국들은 처음 30일 동안 전세를 결정짓는데 실패한 전투로부터 만들어진 덫, 그때도 또 그 이후로도 출구가 없는 그러한 덫에 걸려들었던 것이다."(680쪽)

전쟁 이후 세계는 완전히 다른 곳이 되었다. "전쟁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기대되던 사회주의자들의 형제애 그리고 재정, 상업, 그 이외의 다른 경제적인 요인들 사이의 상호 의존성과 같은 전쟁 억지력은 막상 때가 되자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국가주의가 난폭한 돌풍처럼 일어나면서 그것들을 모두 날려버렸다."(491쪽) 막상 한 번 시작되자 전쟁은 뜻대로 쉽게 풀리지도 않았고, 마음대로 끝낼 수도 없었던 것이다.

이 땅에서 울려퍼졌던 '8월의 포성'은 멈췄다. 그러나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함성은 쉽게 잦아들고 있지 않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아직 <8>으로부터, 우리 스스로의 역사로부터, 충분한 교훈을 얻지 못한 듯하다.


2015.09.08ㅣ주간경향 1142호에 수록된 서평 원고. 교열 전 원고로 링크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