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노래하며 광장에서 빈둥거리는 6월 2일 이후의 '촛불시위'와, 그러한 종류의 '참여'에 과다한 의미를 부여하는 일부 네티즌들에게 내가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시민들이 거리에서 자신들의 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6월 10일 100만 명이 모인 이후 한국의 쇠고기 문제가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을 미국도 비로소 눈치챘고, 그에 따라 폴 크루그먼을 비롯한 다양한 논자들이 여러 의견을 게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시위의 목적이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탈당파들의 복당을 일부 수용하면서 한나라당은 명실공히 원내 과반수를 차지하는 여당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가 당권을 잡고, 현재로서는 분위기가 많이 죽었지만, 총리까지 된다면 그 결과는 실로 파멸적이다. 나는 이러한 상황을 지난 포스트에서 "죽 쒀서 개 주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쁘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굳이 더러운 비유를 써서 말하자면,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에 치여 죽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촛불시위가 불타오르고 있거나 말거나 한나라당은 종합부동산세의 적용 대상을 축소하려 들 것이고, 사학법을 더욱 나쁜 방향으로 개정할 것이며, 기득권층에게 눈엣가시와도 같은 헌법 제119조 2항을 슬그머니 빼는 쪽으로 개헌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추상적인 구호만이 가득한 촛불시위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헌법 제1조 1항이 상징하고 있는 바는 매우 크다. 하지만 구체적인 차원으로 내려와보면, 대한민국의 경제 정의를 지켜온 것은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119조 2항이다. 자유 시장경제질서 원칙을 정하고 있는 동조 1항과 함께, 119조 전체를 우선 살펴보자.
제119조
1.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2.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얼핏 보면 당연한 말 같지만, 이 당연한 말이 헌법에 써있느냐 마느냐가 낳는 차이는 매우 크다. 이번 촛불집회와 가장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주제를 통해 그 영향의 일부를 살펴보자. 흔히 '신문고시'라 불리는 '신문업에있어서의불공정거래행위및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의유형및기준'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재판부는 바로 저 119조 2항을 근거로 신문고시와 그에 따른 무가지 경품 배포가 합법임을 확인하였다(2002. 7. 18. 2001헌마605 전원재판부).
신문고시에 따르면 신문판매업자는 신문구독자가 내는 1년 구독료의 20%를 상회하는 무가지 혹은 경품을 제공할 수 없다. 신문고시는 그러한 행위를 불공정 거래로 규정하고 있다. 규정에도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신문업에있어서의불공정거래행위및시장지배적지위남용행위의유형및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 제2001-7호) 제3조(무가지 및 경품류 제공의 제한) ①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행위는 법 제23조(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 제1항 제3호 전단에 규정하는 “부당하게 경쟁자의 고객을 자기와 거래하도록 유인하는 행위”에 해당된다.
1. 신문발행업자가 신문판매업자에게 1개월 동안 제공하는 무가지와 경품류를 합한 가액이 같은 기간에 당해 신문판매업자로부터 받는 유료신문대금의 20%를 초과하는 경우
2. 신문판매업자가 독자에게 1년 동안 제공하는 무가지와 경품류를 합한 가액이 같은 기간에 당해 독자로부터 받는 유료신문대금의 20%를 초과하는 경우. 이 경우는 구독기간이 1년 미만인 때에도 같다.
3. 신문발행업자가 직접 독자에게 1년 동안 제공하는 무가지와 경품류를 합한 가액이 같은 기간에 당해 독자로부터 받는 유료신문대금의 20%를 초과하는 경우
이것은 우리가 흔히 '조중동 찌라시'들이 벌이는 패악 중 하나로 지목하는 바로 그 행위를 막는 것으로, 언론 정의를 실현함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 중 하나이다. 이에 신문 독자인 청구인 1과 신문 배급소를 운영하는 청구인 2가 공동으로 신문고시의 위헌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재판소의 판결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이렇다. 우선 신문 독자는 신문고시로 인해 기본권이 침해되었다고 볼 이유가 없다. 반면 신분 배급자의 경우, 지금 내가 이 글에서 인용하지 않은 다른 청구이유에 대해서는 관련이 없으므로 청구가 각하되었지만, 신문고시 3조 1항에 대해서는 심리에 들어갔다. 길고 긴 판결문의 끝에서 최종적으로 맞닥뜨리는 것은 결국 헌법 제119조 2항의 사회적 자유경제국가 규정이다.
이 사건 조항은 신문판매업자가 거래상대방에게 제공할 수 있는 무가지와 경품의 범위를 유료신문대금의 20% 이하로 제한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므로 신문판매업자의 사업활동의 자유와 재산권 행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측면이 있기는 하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신문판매업자에 대한 이러한 행위제한은 무가지와 경품등의 과다한 살포를 통하여 경쟁상대 신문의 구독자들을 탈취하고자 하는 신문업계의 과당경쟁상황을 완화시키고 신문판매ㆍ구독시장의 경쟁질서를 정상화하여 민주사회에서 신속ㆍ정확한 정보제공과 올바른 여론형성을 주도하여야 하는 신문의 공적 기능을 유지하고자 하는데 주 목적이 있다고 할 것이며, 나아가 무가지 살포와 경품 제공은 결국 신문의 구독강요에 흐를 위험이 큰 점을 고려할 때 일반 국민인 신문구독자가 내용상 자신이 선호하는 신문을 자유로이 선택할 권리를 침해당하는 것을 억지하고자 하는 목적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므로 이러한 사정을 종합하면 이 사건 고시 내용에 의한 신문판매업자에 대한 규제는 신문업에 있어서의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경제적 규제로서 헌법 제119조 제2항에 의하여 정당화될 수 있는 정도의 것이며, 따라서 결국 이는 헌법 제119조 제1항을 포함한 우리 헌법의 경제질서조항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할 것이다.
(강조는 인용자)
이런 '독소 조항'이 헌법의 한켠에 버젓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은, 1987년 6월 시민항쟁 이후 7, 8, 9월에 걸쳐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흔히 '789 노동자 대투쟁'이라 부르는 이 항쟁이 있었기 때문에 개헌 과정에서 사회적 경제질서를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큰 힘이 실릴 수 있었고, 그 결과 우리는 민주공화국이며, 동시에 사회적 자유경제질서하에 움직이는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헌법의 규정이 그 자체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마저도 없으면 노동자와 시민들의 경제적 권리를 국가가 적극적으로 수호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무너진다. 이것은 심지어 홍준표마저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정회의에서 "헌법 119조 2항은 사회적 시장경제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 시장을 전부 일대일의 대결구조로 만들어 버리면 대기업만 살아남는 시장구조가 된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또 "중소기업도 살고 근로자 살고, 힘없는 사람도 사는 구조를 만들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헌법상 원칙이 있다"며 "그 원칙이 이번 화물연대 파업사태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헌법 원칙에 의거해서 개입할 것은 개입해야 한다"며 "이번 기회에 화물연대가 불법파업에 나서게 된 절박한 배경을 정부가 헤아려서 헌법원칙에 맞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요즘 철근 값이 인상되면서 건설업계, 중소기업이 굉장히 어려워지고 있다"며 "그 문제도 결국 헌법 119조 2항에 따라 정부가 앞으로 약자들을 어떻게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인지에 대해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준표 "헌법, '사회적 시장경제' 천명 적극 개입해야"(뉴시스, 2008년 6월 15일)
'일반 시민'들의 촛불시위만으로는 한나라당의 연이은 악법 제정을 막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개헌을 통해 헌법 제119조 2항을 제거하는 일에도 속수무책이다. 구체적인 개정안에 대한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단지 개인들이 모여있을 뿐인 그런 '대중'이 아닌, 자신들의 경제적 요구 사항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는 '집단'들의 연합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나는 '일반 시민'들의 촛불시위가 무의미하다거나 도움이 안 된다는 등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사회적 기득권층에게 줄 수 있는 위협의 정도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조중동의 광고를 며칠간 끊어놓을 수 있지만, 한나라당이 신문고시를 폐지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파업중인 노동조합이라고 해서 그 모든 문제에 해답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파업을 하는 것은, 현재 완전히 마비되어버린 부산항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이명박 정권이 지지 기반으로 삼고 있는 자본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시위의 공격적인 파급력에 있어서 파업과 촛불시위는 작동하는 방식도 다르고 그 영향력도 다르다. 이것은 하나의 수직선 위에 올려놓고 직선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파업이 자본가들의 목줄을 졸라 이명박 정권의 궁극적인 지지기반을 흔들리게 한다면, 촛불시위는 시민들이 정치적인 관심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양자가 서로 보완해나갈 때 우리는 이번 시위의 승리 가능성을 비로소 엿볼 수 있다.
비유하자면, 파업하는 노동조합은 마린이고, 촛불시위하는 시민들은 메딕이다. 6월 10일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은, 이명박이 쌓아놓은 컨테이너 박스 너머에 메딕만 다섯 부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비유를 노동조합에 소속된 노동자들이 물병을 던져야 한다는 그런 식으로 이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나는 폭력시위를 지지하는 게 아니라 파업을 옹호하고 있다. 파업 또한 평화적인 시위의 일부분이다. 나 또한 파이어벳이 나오지는 않기를 바라고 있다는 점을 굳이 한 번 더 강조한다.
제발 현실을 직시하자. 국회를 한나라당이 가져갔다. 동시에 대한민국은, 어찌되었건 법치국가이다. 18대 국회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정말이지 마음 내키는대로 사회를 뜯어고칠 수 있다. 현재 야당들의 꼬락서니를 볼 때, 그러한 발걸음을 원내정치를 통해 제재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러므로 나는 2008년에, 1987년의 6월 항쟁만이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789 노동자 대투쟁까지도 함께 부활하기를 희망한다. 촛불과 깃발이 함께 서야 거대여당과 재벌의 횡포로부터 중산층과 저소득층, 그리고 중소기업의 권리를 간신히 지켜낼 수 있다.
현재 정부는 화물연대에게 업무개시 명령을 내릴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업무개시 명령이 떨어진 후에는 강제진압이 시작될 것이다. 나는 촛불들에게 묻고 싶다. 5월 31일 밤, 안국동 골목에서 물대포에 맞서 싸우던 깃발 중 금속노조의 것을 기억하냐고. 보건의료노조 사람들과 함께 모닥불을 피워놓고 몸을 말리던 그때를 잊지 않았느냐고. 현재 촛불정국의 2라운드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제는 아가씨들이 아저씨들을 지켜줘야 할 때인 것이다. 헌법 제119조 2항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도, 촛불은 더욱 굵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