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26

완전한 몰이해

이 글은 "성공하지 못한 라캉 토벌 작전"에 등장하는 한윤형의 주장 중 유난히 도드라지는 부분들만 일단 추려내어 반박하기 위한 것이다.


1. 한윤형은 근대 학문의 규칙을 모른다.


"이 경우에도 그의 논변은 모순이 된다. 왜냐하면, 실증주의자인 그는 오직 임상효과에 의해서만 이론을 판단할 수밖에 없는데, 심리학에서 듣보잡 취급해서 다루지도 않는 라캉에 대한 임상자료는 ‘제한적’이라는 기타 정신분석학의 임상자료보다도 미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듣보잡이니까 문제가 끝났다고 말한다면 다시 논점은 1로 워프를 하고 그의 대담한 주장은 시궁창에 빠진다. 순수하게 실증주의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때에 그의 라캉 비판은 제대로 자료가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성급한 판단에 불과하다."

-> 저널을 뒤져봐도 라캉의 임상에 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학문의 세계는 자신들의 연구 업적을 철저하게 공개함으로써 성립한다는 점을 한윤형은 완전히 간과하고 있다. '임상'에 대한 자료를 철저하게 수집하고 공개해야 할 임무는 실증주의자인 아이추판다님이 아니라 정신분석을 과학이라고, 과학까지는 아니어도 현대적인 학문이라고 주장하는 라캉주의자들에게 있다. 하지만 이미 지적된 바와 같이 한국에서 라캉주의 정신분석을 개진하는 이들의 저널에는 임상 사례가 딱 하나 올라와 있다. 한윤형의 말대로라면, '실증주의'를 견지하기 위해 아이추판다님이 그 학회에 소속된 분들을 가정방문이라도 해서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임상 자료를 제발 저에게 내어주십시오'라고 굽신굽신 해야 한다는 말이 되는데, 이건 철학과 과학을 논하기 이전에 근대적인 학문 체계에 대한 완전한 몰이해에서 비롯하는 발언일 뿐이다.



"노정태 님이 했던 것처럼 왜 자료를 남기지 않는가, 라고 그들을 비판하는 것은 물론 가능하지만, 이 비판은 엄밀히 말하면 실증주의를 넘어서 있다. 실증적 자료를 도출하는 틀 안에 들어오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하나의 이론적 기준을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정태 님의 기준은 스스로 말했다시피 일종의 '태도'의 문제에 기대고 있어서, 과학철학인지 지식인의 윤리의식에 대한 규정인지 분간이 안 간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종교적인 폐쇄성은 그들 수리철학의 철학적 타당성과 별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 라캉주의자 정신분석자들도 자신들의 저널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으니, '실증주의'에 대한 요구는 과학적인 탐구를 진행하고 있는 그들에게 우선 돌아가야 한다. 내가 말한 라캉주의의 폐쇄성은 실증주의니 뭐니를 논하기 이전 단계에 속하는 일이다. 한편 "실증적 자료를 도출하는 틀 안에 들어오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하나의 이론적 기준을 세우는 일"이라는 말을 보면, 결국 한윤형이 설명하는 라캉주의 정신분석은 실증적인 자료를 내놓을 수 없는 분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이추판다님에게 '라캉주의 정신분석에 대한 실증적인 자료를 당신이 찾아서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리 집 장농에 감춰져 있는 금송아지를 내게 보여주되, 우리 집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소리이다.

게다가 그는 내가 말하는 '태도'의 문제를 대단히 협소하게 이해하고 있다. 나는 단지 착하게 연구하자는 뜻에서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을 쓴 게 아니다. "과학적인 방법론을 통해 검증 가능하도록 연구된 결과들은, 심리학자들의 저널에서 공유되고 또 철저하게 비판받는다. 과학을 과학이게끔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검증과 비판의 기제이다. 과학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 것들은, 바로 이러한 검증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과학적인 지식과 과학적이지 않은 지식을 구분하는 그러한 기능이야말로 과학을 과학으로 성립하게 해주는 가장 근본적인 동력이다."라는 말이 이미 본문에 있다. 한윤형이 이해하는 나의 과학관은 대체로 리플에 달린 내용을 대단히 단순하게 축약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논지를 이해하고 싶을 때에는 우선 그 상대방이 쓴 본문부터 꼼꼼하게 읽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자.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근대 이후의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피타고라스 학파 이야기를 꺼내면서 물타기를 시도한다. 예측 가능한 답변이었다.


"토벌대원들조차도 오직 임상에 의해서만 얘기하지는 않는다. (만일 그랬다면 그들은 웰던지기 님의 글을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받아들였어야 할 것이다.)"

-> 임상의 결과가 있다면, 근대적인 학문일 경우 그것은 저널을 통해 공개된다. 그 저널에 나와있는 '임상'에 대해서는 이미 새로운세상님이 정리해서 올려주신 포스트가 있으니 그걸로 이야기하면 될 것이다. 아이추판다님도 검색 가능한 모든 저널을 뒤져봤지만 라캉의 임상에 대한 논문은 없다고 한다. 그럼 된 거지 뭘 더 바라나? 이건 약간 개인적인 맥락인데, 한윤형은 평소에 '그것은 지적으로 타당합니다. 왜냐하면 학계에 의해 검증되었는데, 아직까지 외계에 지적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으니까'라는 진보누리 철공사의 말을 대단히 좋아하던 그 자 아닌가? 지금 지구의 학계에서는 라캉이 임상적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지 못하다는 바로 그 말을 하고 있는데, 왜 이해를 못하는지 내가 다 답답하다.

저널이 필요하다는 소리를 단편적으로 하기에 앞서서, 자신이 말하는 저널이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우선 갖도록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이 논쟁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한윤형은 근대적인 학문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규칙에 대해 너무도 무지하다.

자신이 인용을 잘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놀라지 않는 모습도 그렇다. 이건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의 대립구도로도 설명되지 않는 일이다. 구술문화의 전통 속에서 남의 말을 엉뚱하게 전달하는 것은 상당히 터부시되었다고 나는 알고 있다.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구절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는 되는대로 철학자들의 이름을 주워섬긴 후, 아니다 싶으면 '그가 말하는 심리학은 이게 아니고요'를 반복한다. 이건 그냥 논쟁에 임하는 '불성실한 태도'라고 봐야한다. 근대적인 학문 속에서도 잘못된 인용은 당연히 터부시되는데, 왜냐하면 정확한 인용 규칙이 지켜질 때에만 표절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 이런 식이어서, '당신들은 실증주의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론적인 관점은 뭐가 있지?'라는 한윤형의 '논지'는 애초에 존중받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의 최신 포스트 "성공하지 못한 라캉 토벌 작전"의 3번 부분에 해당하는 논증이 결여되어 있음을 깨닫고 한윤형은 깜짝 놀랐다는데, 그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한윤형을 제외한 그 누구도(아참, 이상한 모자도 껴서) 그게 논점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머리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깨비 '심리학'과의 일전을 벌이고 있다. 지금 다른 이들은 모두 근대적인 학문을 논하고 있는데, 혼자만 중세에서 살고 있나보다. 토미스트에게 철학을 배웠건 말건 우리는 지금 현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이건 아나? 지금 우리가 쓰는 인용 규칙 등은 대부분 중세 대학에서 발생했다는 거.




2. 그렇다면 한윤형은 철학을 아는가


내가 진짜 충격을 받고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철학적인 논의에 대해 대충 감은 잡고 있는 것 같은데, 근대 주체철학이 심리학적인 관점에 의해 대거 소거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은 그가 현대 철학의 전개 과정에 완전히 무지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 권위주의를 토대로 그들이 철학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으니 정말로 우스운 일이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 전통철학을 다 도려내야 하는데?”라고 반응한 것은 정말로 전통철학이 다 잘려 나갈까봐 걱정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들의 논변대로 하면 사태가 그렇게 된다는 것을 지적한 것에 불과하다.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할 게 아닌가."

-> 사태가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이걸, 현대철학의 원류 중 한 사람인 후설을 통해 설명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노정태 님은 혼자서 철학의 미래를 걱정하더니 이제는 그 걱정에 대한 정답을 찾았다고 희희낙락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뭐하자는 짓인지 모르겠다. “당신은 왜 그렇게 비열하게 최장집을 털었나요?”라는 질문에 대해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우리 어디 1950년대에 이승만 노선이 옳았는지 김구 노선이 옳았는지 토론해 봅시다.”라고 반응한 왕년의 이한우를 연상시킨다."

-> 사태가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혼자서 철학의 미래를 걱정"했고, 칸트와 후설을 다시 읽으며 "그 걱정에 대한 정답을 찾았다고 희희낙락"했는데, "솔직히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이야말로 철학 공부를 하는 것이다. 최장집 사건에 대한 비유는 대체 어떤 맥락으로 연결짓고 있는건지 알 길이 없다. 지금 설마 라캉을 '사상 검증' 당하는 최장집에 비유하고 있는 건가? 에이 설마.


"나는 노정태 님이 그 진지한 철학적 열정을 지도교수와의 토론을 통해 해소했으면 한다. 그건 나같은 일개 학부생과 해야할 논쟁도 아니고, 이 논쟁은 철학에 대한 그의 관점과 별 상관도 없다."

-> 물론 그러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 논쟁은 철학에 대한 나의 관점과 대단히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철학 자체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철학을 배웠노라고 말하는 이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데카르트적 성찰'을 새삼 하게 된다.


"느닷없이 철학적 문제를 한정지어보자고 타협안을 제시(?)하신 토벌대장 님도 웃기기는 마찬가지다. 그가 하는 말은 미국 심리철학에서 사용하는 구별법인데, 문제는 그게 대륙철학에 적용할 수 없는 기준이라는 데에 있다. 러프하게 말하면 통약불가능한 것이다. 대륙철학의 이론적 체계 중에서 현대의 심리학 데이터를 반영해야 하는 부분이 어디이고 데이터와 상관없는 부분이 어디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그 자체로 난해한 철학적 문제일 것 같다. 아마 그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가 시작된다 해도 철학자마다 견해가 다를 것이다. 그런데 내가 왜 거기에 동의해야 하는데? 거듭해서 내가 지적하는 것은, 철학자들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잘 모르는 어려운 문제를 그들이 판정해 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그 지독한 오만이다."

-> 그 자체로 난해한 철학적 문제에 대한 토론에서, 적어도 고전적인 대가 중 누군가가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논쟁이 가능하지 않나? "내가 왜 동의해야 하는데?"라면서 뻣대고 있는 것은 철학과 과학의 싸움 이전에 그냥 학생의 자세도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과학은 철학자들이 잘 모르는 문제를 판정해주는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 다만 현실에 대한 좀 더 정돈된 연구 결과를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대륙철학의 이론적 체계 중에서 현대의 심리학 데이터를 반영해야 하는 부분이 어디이고 데이터와 상관없는 부분이 어디인지를" 대강은 파악하고 있어야 논의가 가능하지 않나? 모르면 알아보려고 시도라도 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한윤형은 철학도 맞나?


"위에서 점검한 바와 같이, 끊임없이 과학이라는 주문을 되뇌이는 토벌대의 논증 방식은 과학이고 나발이고 간에 일단 논리적이지도 않다. (그들의 논변 수준을 고려해 보건대 설령 쓸만한 데이터를 손에 쥐고 있다 한들 그 데이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

-> 아니, 논리적이다. 한윤형이 그 논리의 대전제도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이 지금의 문제일 뿐이다. 까먹었을까봐 다시 이야기해주는데, 라캉을 연구하는 학회가 공개하는 저널에 임상에 대한 연구 결과를 요만큼, 그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만 싣고 있다면, 실증주의고 뭐고 논할 것도 없이 그 학문의 '과학'으로서의 위상도 딱 거기까지다. 뭐, 저널을 통한 학문의 연구 방식 자체가 '남성주의적'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리가레이의 입장을 수용할 거면 그러던지.




3. 설마 그래도 수사학은 알겠지?


"지금도 GT 님의 발언을 털어버리는 걸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있는 모양이다. 한마디로 벌쳐로 프루브 잡는 컨트롤을 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던 셈인데, 그러다가 본진에 캐리어 한 부대 뜨면 어쩌시려는 건지 모르겠다. 아머리는 지었나? 골리앗 사업은 했나? 근데 내가 왜 이런 걸 걱정해 줘야 하는 거지? 아, 클로킹 레이스가 준비되어 있다고? 라캉 이론에 대한 과학적 반증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그의 서술을 기대한다. 적어도 그쯤은 되어야 3의 관점에서 그들 토벌대의 입장을 정리하는 일이 가능할 테니까 말이다."

-> 한마디로, 빈곤한 비유. "뭐?" 시리즈에서 봤던 그것을 연상시킨다.




4. 결론: 자신을 '안다고 가정된 주체'로 가정하지 말라

한 번 배우니까 계속 써먹게 되는데, '안다고 가정된 주체'는 라캉 정신분석이론에서 사용하는 개념이다. 정신분석가는 환자를 대함에 있어서 상대방이 자신을 '안다고 가정된 주체'로 대하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이 논쟁에 임하는 한윤형의 자세가 바로 이런 식이다. 정작 '과학주의자'들은 과학과 철학의 세부적인 내용들을 뒤적이고 있는데, 오직 한윤형만 배를 긁으면서 '내게 정돈된 지식을 제시하라, 그러면 답변하리라'고 버티고 있다. 이건 소통을 위한 자세가 아니다. 기본적인 개념에서 합의된 의사소통의 전제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스스로 공부하지는 않을 망정, '나를 설득시켜봐'라고 우기고 있는 것이다. 마치 김대중더러 '나를 설득해봐, 그럼 국민이 다 설득되는 거야'라고 뺀들거리던 한국논단의 그 어떤 분을 연상시킨다.

아무도 한윤형에게 분석가로서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스스로를 '알고 있다고 가정된 주체'로 여기는 한윤형의 상징계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논쟁을 할 거면 최소한의 규칙과 통일된 용어 사용 등을 갖춰야 한다. 내가 요구하는 건 딱 그만큼의 상식과 성실함이다.

댓글 7개:

  1. 한윤형에 대한 부분은 한윤형이 방어할 것이고.

    나의 이름을 끼워넣은 것은 부당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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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자유총연맹 아니고 한국논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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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나는 이 논쟁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아이추판다님이 최초에 발언한 문제(즉, 논쟁에 있어서 나에게 조금이라도 책임이 있는 문제)에 대해서만 집중하려 했고 이후의 논점을 다루는 것은 피하려고 노력했어.

    즉, 라캉 정신분석의 '본질적인' 학문적 위상에 대해서는 접어두고 최초의 논점, 아이추판다님의 발언이 부당하다는 점에 계속해서 초점을 맞췄던 것이란 말이야.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내 글에 대해 수박 겉핡기 식의 코멘트를 했던 '시선'님의 블로그에서도 노정태와 같은 논리의 문제제기라면 어떻게든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아이추판다님의 최초 문제제기는 부당했다, 라는 점을 강조했지.

    내 글의 쪽글에서도 중간의 심리학의 학적 위상에 대한 이야기는 오직 아이추판다님의 논리를 그대로 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고, 그런 이야기는 글의 중간에도 있지. 오히려 나는 마지막에 라캉 정신분석이 과학적인 임상이론으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서술했는데, 그것은 과학에 대해 노정태가 주장한 바와 배치되는 것이 아니었지. (고백하자면 네 주장은 궁극적으로는 포퍼주의로 귀결되지 않냐고 반론할 수도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이 부분은 내가 그걸 설명할 능력이 안되어서 네 관점에 동의하기로 했어.)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네가 나의 글을 불성실하게 독해했다는 의구심을 갖는데, 동시에 그 불성실한 독해의 책임이 전적으로 너에게 있다기 보다는 내가 글을 지나치게 산만하게 썼다는 자책 비슷한 것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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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논지와는 별로 상관없는, 이 논쟁 자체에 대한 '졸렬한 수준'(<- 이 단어는 불성실하게 읽지 말게.)의 인상을 좀 남기자면, 오히려 나야말로 이 논쟁에서 가장 밸런스 맞는 주장을 할 수 있는 위치 아닌가 싶어.

    나는 수박 겉핡기로나마 라캉에 관련된 책들을 읽었고, 또 학점을 얼마를 받았든 대학에서는 '심리학'이라는 학문적인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가장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커뮤니티에서 6년째 그 일원으로 살고 있잖아.(어쨌든 나는 지금도 학부생들 사이에서 '심리학과 선배' 따위의 취급은 받으니까.)

    이 얘길 두고 누구는 '니깟게 심리학을 얼마나 배웠다고 아는체냐.' 라고 하기도 하는거 같은데, 나는 무슨 대단한 권위를 가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논쟁에서 내가 다른 사람과 달리 취할 수 있는 포지션이라는게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거야. 그 포지션에서 보면, 아이추판다님이 전제하고 있는 심리학과 현장에서 상담을 하는 어느 임상심리학자가 전제하고 있는 심리학, 그리고 내가 이런 방법으로든 저런 방법으로든 익혀온 심리학은 전부다 그 상이 다르거든. 이건 개념이 잘못되었거나 심리학이 과학이 아니라서 그런게 아니고, 심리학의 성격 자체가 원래 그래. 이걸 인정하지 않는게 아니란 말이야.

    하지만 아이추판다님은 최초에 어땠지? 그건 논증도 뭐도 아니고 그냥 다른 학문에 대한 오만함 이었어. 라캉 정신분석학의 본질적인 학문적 위상이 뭐든간에, 그런 방식으로 폄하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것은 심리학을 배우던 중에 내가 듣는 수업에 들어오던 거의 모든 교수들이 첫 시간마다 강조했던 '과학도의 자세'를 거스른 것이었거든. 내가 대학을 다닐 때 내 동료들에게 아주 학을 뗐던, 그래서 그들에게 "심리학은 없어져야돼!" 라고 나로 하여금 소리치게 만들었던, 그런 것이었다고.

    내가 썼던 산만한 글은 오히려 자신이 옹호하고자 했던 심리학에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논리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인데(실패한 것 같지만), 그 점에 대한 아이추판다님의 대응 방식은 비겁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야.

    여튼 이건 일종의 사담 수준으로 할 수 있는 인상이고.(러브레터라고 해도 좋겠지.) 엄밀하게 어떤 비판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니 가치가 없다 생각되면 그냥 무시해도 좋아.

    이 쪽글을 읽는 다른 분들도 제가 저의 주제를 잘 알고 있으니 이걸 퍼가거나 논쟁의 근거로 삼지 말아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이럴 거면 메일로 보낼거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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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지나가다/ 반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상한 모자/ '정신분석은 과학이 아니다'라는 주장과, '철학은 올바른 과학적 지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각각 참이라면, 올바른 과학이 아닌 정신분석에 기반을 두고 있는 철학은 타당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논리적으로 너무도 당연한 거잖아. 하지만 너와 한윤형이 가지고 있는 논점은 그게 아니라는 건데, 나는 그 주장을 이해할 수가 없어.

    "다시 강조하지만, 문제는 저 두 문장을 "때문에"로 연결시킨 데에서 생겨났다. 나와 한윤형은 그 연결고리의 부당함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것인데, 이후에 이 문제는 소위 '과학-지지자' 들과 '철학-지지자' 사이에서 생겨난 야릇한 전선으로 확대되었다."라고 너는 말했지만, 그 "때문에"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당연한 논리의 흐름에 이의를 제기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해. 두 개의 명제를 나란히 놓고 보면 당연히 마지막 결론이 나와.

    여기서 너는 '심리학'이라는 단어가 뜻하는 바가 너무도 많고 복잡하다거나, 미국의 대학 분위기가 심리학을 낳았다는 등의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그 각각은 재미있는 거였지만 그건 전체적인 논지와 상관이 없는 것 같아. "내 얘기는, 최소한 논리적으로는 동일한 방식으로 정신분석학에 대한 옹호가 가능 하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이론의 헤게모니 문제는 그것의 설명력이나 임상 효용성이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이 글의 전반부에 말한 그 '때문에'의 논리는 이런 방식으로 무력화 될 수 있다."라고 하는데, 그 '때문에'는 그냥 너무도 당연한 거고 두 명제를 연결하면 안 될 이유 따위는 전혀 없다고 나는 생각하거든.

    '소크라테는 잘못된 사실을 말하고 있다', '잘못된 사실을 말하는 자는 철학을 할 수 없다', 이 두 명제를 놓고 봐봐.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건 너무도 당연해. 이 사이에는 무슨 요상한 '때문에' 따위가 끼어들 여지가 없어.

    네가 심리학도로서 겪은 경험들, 그리고 그 속에서 느낀 인상들에 대해서도 그 각각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상비평에 가까운 거고, 이 사안의 본질은 앞서 말한 너무도 간단한 삼단논법을 납득하지 못한 '철학 지지자'들이 심리학이 과학인가 아닌가, 뭐 이런 이상한 논제를 도입했다는 거 아닐까. 결국 네 리플도 '나는 심리학도들의 태도가 기분 나빴다'는 것으로 귀결되잖아. '때문에'의 논리가 잘못되었다는 논증을 찾아볼 수는 없지. 그거야, 원래 잘못된 게 아니니까.

    내가 불성실한 독해를 한 것처럼 보여서 실망했다면, 이 리플이 좀 더 긴 대답이 되길 바랄게. 그리고 이런 논쟁은 공개된 장소에서 하는 편이 나으니까 이메일보다는 리플이 훨씬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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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노정태 / 그러니까,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잘 알겠는데, 내 말은 이런거야.

    나는 아이추판다님이 최초에 제기한 논점에 대해서만 언급했다고 했어. 이후에 심리학과 과학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고찰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없었던 것이고. 이 점은 충분히 설명했다고 생각해.

    네가 사용한 용어로 다시 정리하면, 라캉 정신분석학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거잖아. 한 가지 부류는 이것을 대륙철학적 맥락에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 것이고 또 한 가지 부류는 일종의 임상적 방법론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거지. (아이추판다님은 최초에 후자의 방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90%일 것이라고 가정하고 발언을 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는데 그렇다면 이건 명백히 틀린 얘기지.)

    전자의 경우는 네가 '과학과 철학에 대한 논쟁을 넘어'에서 쓴 '그렇다면 우리에게 철학은 무엇인가?'에 관한 내용을 적용할 수 있겠는데, 그것에 대한 답을 네가 칸트나 훗설에서 찾아냈다면 그 이야기를 하면 되겠지. 나는 그것까지 이야기 할 수 있는 능력은 못되기 때문에 딱히 코멘트를 하지 못하겠지만 다만 그러한 견해를 즐겁게 청취할 준비는 되어 있다구.

    후자의 경우는 '만일 라캉을 개념을 임상적으로 쓰고 싶다면..' 이라는 조건을 달고 내가 내 생각을 글로 썼던거지. (아이추판다님은 '어느나라 심리학인지 모르겠다.' 라고 했는데 나는 그게 어느나라의 심리학이라고 이야기 한 일도 없는데.. 쩝.)이것도 앞에서 쓴 글들로 설명이 되었다고 생각해.

    결국 그럼 아이추판다님의 최초의 문제제기가 도대체 뭐였냐는 문제가 남는데, 너는 그것을 '철학은 올바른 지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를 전제로 한 삼단 논법이라고 말하지만 나에게는 다르게 받아들여졌거든. 그가 말하는, 한국의 철학도들이 프랑스 철학을 수용하는 관점 자체에 대해서 그는 의아해했고, 내 문제제기는 바로 거기서 시작되었다구. (다시 한 번 최초에 아이추판다님이 제기한 문제와 내 반응, 그리고 그에 대한 아이추판다님의 답변을 보아주도록 해. http://nullmodel.egloos.com/1723479 )

    오히려 네가 제기한 삼단논법은, 애매모호한 아이추판다님의 관점을 네가 정리한 것이라고 봐. 그렇지만 그 정리에 아이추판다님이 동의를 하는지 안 하는지는 나로선 아직도 알 수 없어.

    나는 아이추판다님이 라캉을 분리하자고 할 때나, 네가 그것에 대한 글을 썼을 때에 더 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왜냐면 이상한 모자, 한윤형, 노정태가 여기에 특별히 반대하는 것이 아니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후에 이 논점에서 앞으로 뭐가 나아가거나 한 게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논쟁은 왜 진행되고 있는 것이지? 너는 한윤형이 엄밀하지 못한 독해를 하며 불성실한 논쟁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더라도 아이추판다님의, 한 문장 안에 여러가지 의미를 두어서 불필요한 논점들을 자꾸 생산하는,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해명을 자꾸 회피하는 태도 역시 문제였다고 생각해. (전체 맥락 무시하고 끼어드는 그루피들도 문제였지만.)

    물론 그런 문제는 있을 수 있어. 서로 공부한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텍스트를 가지고 컨텍스트를 생성하는 스타일이나 논쟁의 구도를 파악하는 포인트 등이 서로 맞지 않을 수는 있겠지. 이 문제에 대해 나는 어느 한쪽의 잘잘못을 따지기 보다는 그냥 그렇게 파악하고 마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이걸 쓰다가 방금 네 전화를 받았는데, 복초밥의 초밥맛에 대해서 꼭 평을 해주길 바란다. 그 동네에 내가 멤버십을 가지고 있는 정치조직의 아지트가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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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코멘트를 달고 다시 주의깊게 내 글을 읽어 보았는데, 네가 어떤 부분에서 내 이야기를 그런 방식으로 해석해야 했는지를 알 것 같아. 당시 논쟁의 맥락에서 내가 상당부분 논증하거나 설명하기를 포기한 부분이 있었고, 그게 내 글 전반의 구성을 더 성기고 산만하게 만든 것 같다.

    그런데 그 논증하거나 설명하길 포기한 부분에는 완전한 라캉주의자의 입장에서 발언해야 할 부분도 있는데,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 ... 레비나스도 아니고.

    어쨌든 다시 이 문제를 너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포지션을 달리 해서 새로 글을 써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기에는 논쟁의 흐름 자체가 너무 지나가 버렸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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