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29

못된놈, 추한놈, 국제촌놈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을 보고 왔다. 열두 글자나 되는 이 긴 제목을 여덟 글자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만주에서 찍은 디워'. 정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놈놈놈'은 그저 '만주 디워'일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영화가 좀 덜 노골적으로 한국 자본가들과 그 워너비들의 욕망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고, 불행한 것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디워 때와는 달리 사람들이 이 영화의 문제를 쉽사리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놈놈놈'을 보며 우석훈의 최근 저서인 《촌놈들의 제국주의》라는 제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책을 읽어서 그런 건 아니고, 다만 그 제목이 풍기는 인상이 바로 이 영화를 설명하는 틀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우석훈의 책은 나중에 읽어볼 계획이다). 김지운을 포함한 이 영화의 제작진은 평야, 대륙에 대한 감각을 전혀 갖추고 있지 못하다. 국제 감각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대륙은 곧 자원이며, 우리가 수탈해야 할 무언가라고 보는 19세기 제국주의적인 구태는 물론이거니와, 무국적 공간으로 가정된 만주를 묘사하는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품고 있는 일제시대라는 거대한 트라우마와 그것을 은폐하는 한국인들의 정신 구조까지 드러나버리고 만다. 아무리 좋게 봐주더라도, '놈놈놈'은 그저 문제작일 뿐이다.

1930년대 만주를 배경으로 이따위 영화를 찍는 현재 한국인들을 놓고 〈못된놈, 추한놈, 국제촌놈〉이라는 영화를 확 찍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냥 리뷰를 쓰도록 하자. 이미 논조를 보면 알겠지만 이 글은 '놈놈놈'에게 전혀 호의적이지 않다. 그러니 그 영화에 대한 자신의 호감을 확인하고자 한다면 읽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영화의 진행 내용을 짚어가며 논지를 펼 것이므로, 백지 상태에서 '놈놈놈'을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이 글을 피할 것을 권한다. 최근에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를 보았지만, 그것과 이 작품을 대조하는 것은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가혹한 일이므로 그렇게 하지도 않겠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일단 기술적인 차원에서, 액션씬의 문제를 먼저 짚고 들어가보자. 만주 평야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추적씬은, 이 영화의 제작진이 정글 밖으로 나온 피그미족같은 그런 인식론적 틀 속에 갇혀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장총으로 무장한 이들이 평야에서 만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 먼저 총을 쏘고, 조준이 맞다면 상대방은 죽는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그 유명한 장면, 지평선 너머로 오마 샤리프가 등장하는 그 장면을 떠올려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사막이나 평원이라고 해서 꼭 그렇게 싸워야만 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데, 이건 서부 개척시대 뿐 아니라 징기즈칸이 말을 타고 유럽을 침략하던 시대부터 이미 보편화된 전투 공식이다. 탁 트인 평원에서는, 상대방을 먼저 발견하고, 먼저 쏴서 명중시키는 자가 승리한다. 따라서 들키지 않는 것이 생존을 위한 첫번째 조건이며, 만약 발견되었다면 상대방의 위치를 최대한 빨리 파악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놈놈놈'에는 이런 최소한의 리얼리티에 대한 고려가 없다.

지도 사본은 단 한 장이라고 알고 있는데, 대체 어떻게 만주군 일본제국군 화적 집단 등이 동시에 한 방향을 향해 질주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무튼 그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고 치자. 그래서 만나서 전투가 벌어졌다고 치자. 그런데 일본군이 기마 소총부대의 한복판을 가로질러가며 장총으로 아군을 마구 쏘아 죽이는 정우성 같은 놈을 그냥 보고 있을까? 마치 움직이는 과녁처럼, 정우성의 장총 돌리기만을 위해 멍하니 달려가던 일본군의 모습.

장거리 총격씬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상황에서, 정두홍 무술감독팀이 짜넣은 액쎤은 지루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정우성은 아예 대놓고 일본군 부대 속으로 뛰어들어서 장총을 돌려가며 적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린다. 이건 '주차장 액션 씬'의 재탕일 뿐이다. 한국 액션 영화에서 수도 없이 반복된, 적들 한가운데에서 단기필마로 깡패들을 쓰러뜨리는 '사나이'의 모습 말이다. 다만 만주니까 발차기 대신 총을 쏘는 것 뿐이고, 그러니 정두홍이 만드는 액션에서 (특히 〈짝패〉, 기본기도 돌려차기 필살기도 돌려차기, 어째 액션이 돌려차기밖에 없던가?) 돌려차기가 죽도록 나왔던 그 연장선상에서 정우성은 죽어라 장총을 돌려댈 수밖에 없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러한 액션씬의 구성 오류는 단지 실력 문제만은 아니다. '놈놈놈'의 제작진, 더 나아가 이 영화에 돈을 대준 사람들, 혹은 400만명이나 보고 있는 관객들이 '대륙'이 무엇인지 전혀 감을 잡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따위 액션씬을 찍어놓고도 호쾌하네 어쩌네 대륙적 기상이 느껴지고 운운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만주에서 넓은 땅을 이용해 액션을 찍을 거면, 김지운은 대륙 그 자체를 좀 더 사유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제목에 써놓은 바와 같이 국제촌놈들이기 때문에, 혹은 정글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은 피그미족들이기 때문에, 탁 트인 평원을 마주치면 어찌할 줄 모르고 주춤거리다가 '결국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지 뭐'라며 깊고 편안하고 아늑한 우물로 돌아온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도 '대륙'은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나라가 석유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자원 빈국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인식 체계 속에서 '대륙'은 곧 '자원'일 뿐이라는 것을 '놈놈놈'보다 더 잘 보여주는 텍스트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스포일러 경고를 다시 한 번. 이 영화의 보물지도는 결국 일본인들이 파놓은 유전의 지도인데, 만주에서 석유가 나온다는 발상도 우습거니와 기껏 만주에 가서도 생각하는 것이 유전인가 싶어서 헛웃음이 피식 나오는 설정이다. 사실 난 초반부에 '시추'라는 단어가 들릴 때부터 이따위 설정을 짐작했고, 그걸 확인하는 과정에서 구역질이 났다. '자원 외교'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자원 외교'등을 통해 외국으로부터 안정된 자원 수급을 하는 것이 왜 잘못인가요? 이런 질문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이 한국에 '자원 외교'를 요청하는 것이다. 한국에 비교적 풍부한(아니, 풍부했던) 금, 무연탄 등의 자원을 일본에 싼 값에 넘기는 것을 골자로 하는 그런 외교를 했으면 좋겠다고, 국내 주요 일간지가 모두 쿵짝쿵짝 떠드는 가운데 일본인 외교관이 '한국의 풍부한 천연자원과 일본의 기술이 만나...'같은 소리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이거다. 다른 나라와의 외교 관계에서 '자원 외교'를 논하는 것은, '나 식민주의자요'라고 이마에 써붙이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후지고 못나고 한심한 짓이다. 그런데 그걸 한국 정부는 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그게 대체 왜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김지운의 '놈놈놈'에서 만주를 '석유'로 치환시키는 것을 본 중국인들의 심기가 얼마나 불편할지 나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전체적인 스토리 진행에서 다소 동떨어진, 송강호가 독립군을 사칭하는 사기꾼의 아편굴에서 아편과 약에 취해 해롱거리는 장면에서 그 가소로운 제국주의의 욕망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거기서 독립군을 사칭하는 사기꾼은 '사실 만주는 조선의 땅이다', '그런데 거기에 보물(즉 석유)가 묻혀 있다', '따라서 그것은 본래 조선의 것이어야 한다'는 삼단논법을 펼친다. 한국인들이 북한을 바라보는, 또한 연변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로 딱 그 모양 그 꼴이다. 외국인들이 보면 한국인들은 전부 '민족뽕'에 취해 해롱거리는 얼간이들로밖에 안 보인다. 뽕 먹은 논리가 뽕 먹은 장면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나마 그 석유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영화의 주인공인 세 놈들은 알아보지도 못한다. 여기서 더욱 주목할만한 것은 보물을 찾은 후 자신의 소원을 말하는 장면이다. 몇 년이 지나도 연기 못 하는 정우성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대사 치게 하는 대범한 연출이 불러오는 두통과 현기증은 논외로 하자. 그런데 송강호가 말하는 '소원'이라는 것이 결국 '외국에서 돈 벌어서 국내에 땅 사는 것', 다시 말해 해외 펀드로 대박 쳐서 아파트 사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왜 아무도 지적하고 있지 않은 걸까? 적어도 영화를 보는 순간에는, 어차피 그 소원의 내용이라는 것이 클리셰에 가까운 것이므로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보물의 실체가 밝혀진 다음 그 소원의 내용을 되짚어보면, 그 적나라한 욕망 앞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나라를 빼앗겼는데 땅은 사사 뭐하냐는 정우성의 되받아치는 대사도 그렇다. 그러면서 정우성은 말한다. 나라가 없으니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 한다고. 나라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땅을 사서 안정적으로 보유할 수 있도록 지켜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라는 언제 망할지 모르니 돈을 손에 움켜쥐고 있는 것이 최고다. 바로 이 두 가지 생각이 맞물려, 아파트 값을 올려주기만 하면 한국이 망하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겠다는 '서울 아빠'들의 표심을 만들어냈고, 그게 바로 이명박을 당선시킨 주범임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이쯤 되고 보면 그동안 '나라 잃은 설움'을 읊어댄 수많은 작품들, 네셔널리즘을 과장되게 포장하여 설파하던 작품들의 존재가 민망해질 지경이다. 우리가 한국인의 '민족혼'이라 일컫던 '한'의 실체가 고작 이런 것이었을까?

아닌게아니라 김지운 감독은 '놈놈놈'을 연출하던 중 《판타스틱》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 안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자신은 당시의 만주를 고증 그대로 찍었으며, 그곳은 실로 코스모폴리탄적인 공간이었다고 말이다. 그 말은 사실일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판타지를 구성하고자 했다면 그 판타지의 내적 논리가 충실하게 성립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놈놈놈'에 등장하는 만주는 역사상 존재했던 그곳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멜 깁슨 주연의 영화 〈매드맥스〉 시리즈의 세트장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특히 망치를 들고 휘두르던 마동석.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분명 김지운 감독은 '놈놈놈'에서 만주를 해방구로 묘사하고 있다. 문제는 그곳이 무엇으로부터 해방된 공간이냐 하는 것이다. 기존 한국 문화계를 짓눌러온, 일제시대에 대한 과도한 네셔널리즘적 반발에 대항하여, 최근에는 드라마 〈경성스캔들〉을 포함하여 몇몇 영상 매체에서 '화려하고 재미있는 일제시대'라는 하나의 표상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국내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그 작품들은, 기존에 그려내지 못한 '일제 시대'라는 무언가를 제시해주지는 못했다. 도리어 한국의 창작자들은 그 시점에서 만주로 나아가, 아니 도망가, 과도한 네셔널리즘의 반대급부로 과도한 코스모폴리타니즘을 200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통해 초라하게 드러내버린 것이다.

하지만 '놈놈놈'을 배태한 한국 사회의 기본적인 성향은 이 작품이 매끈한 판타지가 될 수 있도록 그냥 두고 보고만 있지 않다. 앞서 언급한, 송강호가 빨려들어간 만주의 아편굴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그곳에서 송강호는, 놀랍게도, 그 코스모폴리탄적인 만주에서 참으로 놀랍게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세 명의 어린이들을 구출해내 '조선인촌'에 숨겨두고 나온다. 무국적 공간으로 만주를 제시하겠다고 하면서도, 결국 '민족'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순수한 어린이'의 탈을 쓰고 귀환하는 것이다. 무국적 공간인 만주에, 우리 민족이 있단다.

이 모든 병리적 현상은 결국, '일제시대'를 직시하고 싶지 않은 한국인들의 무의식이 빚어내는 현상이다. 해방 이후 수십년 동안 '사악한 일제'에 맞선 '숭고한 민족'을 제시하다가, 그게 서서히 먹히지 않는 시점이 되자 '일제시대에도 실은 연애도 했다'고 눙치다가, 그건 그림이 잘 안 나오고, 로맨스를 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리얼리티를 확보하다보면 결국 일제시대를 직시할 수밖에 없으므로, 무국적 퓨전 공간인 만주로 도망간다. 만주에서는 모든 이가 그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질주하는 무국적 신자유주의 코스모폴리탄 공간이라고 우겨보다가, 아편굴에서 해롱거리는데 그 지하실에는 '조선인' 어린이가 순수한 표정으로 갇혀 있다. 한국인들은, 혹은 한국인들이 만드는 문화적 컨텐츠는, 절대 일제시대를 그 자체로 직시하려 들지 않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물을 타고 시선을 돌리며, 끝까지 '순수한 민족'의 맹아를 남겨두고야 마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 모든 균열은 한국의 자본가들과 그 워너비들의 욕망을 드러내준다. 대륙이 뭔지도 모르고, 국제 관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도 하지 못하면서, 그저 대륙으로 질주해서 석유를 퍼오고 금을 캐오고 수익률 200%를 먹은 다음 다음 국내에서 떵떵거리는 꿈에 젖어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타자'의 모습을 구성하는 일에 우리는 너무도 촌스럽다. 외국인들도 모두 일제의 만행에 치를 떠는 '유사 한민족'으로 묘사하거나, 그도 아니면 바로 '놈놈놈'처럼 짐짓 코스모폴리탄인 척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백의민족 대한민국 짝짝 짝짝짝 박수를 치거나. (알겠지만, 그런 장면도 나온다. 그건 '쿨'한 척하는 김지운 감독의 이중 기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관객들을 우롱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장면을 구상하고 넣음으로써 사실은 자기 스스로를 기만하게 되는 그런 이중 기만 말이다.)

내가 여기서 비판의 대상을 '자본가'와 그 워너비들로 한정지은 이유는, 이 문제와 맞서기 위해 리얼리즘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말을 할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이다. 앞서 레오네 영화 이야기는 안 하기로 했지만, 그래도 잠깐 반칙을 저질러보자. 〈황야의 무법자〉가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는 덤덤함, 〈옛날옛적 서부에서〉에 치열하게 묘사되는 서부 개척시대의 난맥상, 뭐 그런 것들. '좌파'라는 말은 '우울하다'라는 말과 동의어여서는 안 된다. 우파들은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둥그렇게 원을 그린 다음 그 밖으로 삐져나가는 이들을 '치우쳐 있다'고 비판한다. 좌파적인 리얼리즘은 그와는 완전히 다른 그 무언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놈놈놈'을 찍고 보고 즐기는 한국인들은, 타자의 시선으로 볼 때 그저 못된놈, 추한놈, 국제촌놈일 뿐이다. 외국인 노동자 임금 떼어 먹는 놈, 공항에서 내린지 10분도 안 된 외국인에게 ENG 카메라 들이밀며 한국 좋냐고 물어보는 놈, 그걸 또 TV로 보고 있는 놈, 그 놈 욕하는 놈, 외국 나가서 '자원 외교' 한다는 말 듣고 좋아하는 놈, 알프스 산 올라가서 기껏 신라면 큰사발 먹고 내려온 게 자랑이라고 떠벌이는 놈, 놈, 놈, 놈... 하, 징그러운 놈들. 그게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댓글 31개:

  1. 나이스 샷! 흐흐흐흐.
    ---송강호가 "할매 앞으로 편하게 살게 해줄께"하던 대사도 잊으면 안되오. 난 한국영화에서 '가족'에 대한 집착을 정말 그만 보고 싶어요. 나라가 망했지만, 아니 나라가 망했으니 믿을 건 역시 너랑 나뿐이얌 하는 그런 식의 인정주의가, 이영화의 쿨한척 하는 전반적인 태도에 슬그머니 끼여들어서 안전판 역할을 수행할 때 더 기분 나빠. 이 영화가 천만관객 동원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데(앞으로 대작들이 너무 많이 기다리고 이거등), 지금까지 괜찮은 흥행성적을 올리고 있다 하더라도 [놈놈놈]은 결단코 한국영화의 구세주가 될 수 없어요. 구세주가 된다면 그게 더 끔찍한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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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워 처럼 엄청난 관객을 불러들여 시장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우리가 안고 있는 슬픔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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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plath/ 그렇군. 그 장면을 빠뜨렸군요. 난 설마 그 할머니를 허무하게 죽여버리고 송강호가 분노의 총질을 하는 장면까지 나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했어요. 그게 이 영화에서 느낀 유일한 서스펜스.

    '가족'을 처음부터 다루겠다고 작정한 작품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 그나마도 가족의 꼬라지를 리얼하게 다루는 대신 '열한번째 엄마' 같은 짓을 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는 것, 하지만 정작 천만 관객을 불러온 건 해체된 가족의 재결합을 다룬 괴물이라는 걸 제작자들이 좀 알아줬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가족 얘기를 안 하라는 게 아니라, 할거면 제대로 하고 나머지는 좀 비워두라고.

    놈놈놈은 흥행이나 작품 양쪽에서 이미 구세주는 커녕 여러 각도에서 재앙이 될 것 같은데, 구세주가 되어도 재앙이니 이것 참 곤란한 놈이 아닐 수 없어요. 아, 곤란한 놈 같으니...


    익명/ 디워만큼 흥행할 수 있을지 저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디워처럼 흥행하고 싶거든, 제작사와 홍보사의 전략이 바뀌어야 해요. 놈놈놈을 씹는 평론가가 나와서 격론이 붙어야 할 시점인데, 워낙 영화사에서 평 좋게 써달라고 난리를 치니까 영화지에서는 슬슬 피하는 분위기. 한국 자본가들은 정말이지 너무 멍청합니다.

    그러니 디워만큼 흥행할까봐 미리 슬퍼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일이 생기면 그때 슬퍼해도 늦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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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읽지 않으셨다고 했지만 님이 지적하시는 내용들이 "촌놈들의 제국주의" 에서 지적하는 위험성과 맞아떨어지네요. 영화마저도 외부로, 북으로의 팽창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 그 도달점이 자원라는 사실.
    새삼 텍스트에 반영되는 사회의 진실이 두려워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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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내용 생각하지 말고 그냥 즐겨 보기엔 재밌다는 평이 많았는데, 색다를 평가네요.
    영화 아직 못 봤는데 글을 읽고 나니 영화 보기가 싫어지는..ㅎㅎ
    우리 내면의 제국주의에 대한 지적..
    자각하지 못하고 계속 잊고 사는 제 모습에 대한 반성을 살짝.. ^^;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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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퍼가도 되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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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익명/ 더 놀라운 건 숱한 식자들이 이 영화의 음험함을 전혀 감지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지요. 디워는 안되지만 놈놈놈은 괜찮다는 심리를, 이명박을 욕하며 노무현을 재평가하는 그것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지만, 그건 지나친 비약인 것 같아서 삼가고 있습니다.


    xarm/ '내용 신경 쓰지 않고'라는 말이 함의하는 바도 그렇거니와, '그냥 보면 재미있다'는 말이 저는 참 아리송합니다. 오락영화로서 오락영화다운 짜릿한 쾌감을 안겨주지도 않는 그 영화를 어떻게 그냥 보면 재미있다고 할 수가 있을까요? 그 이면에는 어떤 무의식적 기제가 작동하고 있는 거죠.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익명/ 출처를 표기해 주신다면 퍼가셔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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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적벽대전이라는 것을 볼려고 코인을 소비하여 보았는데, KBS 스페셜이 나와서 벌새가 꿀을 따더군.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양심의 가책을 무릅쓰고 코인을 소비해보았는데..

    적벽대전이 208년에 일어난 일로 알고 있는데, (코에이의 삼국지4에 이벤트가 떠서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 서기 208년에 흑인이 나와서 편의점 주인을 쏴죽이고 도망가더군..

    ......

    그래서 내 얘긴 인제 그런 이유로 이 영화를 아직 못 보았다는 것이지.

    미, 미안허이..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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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게 게다가 이 글은 적벽대전에 대한 것도 아니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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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지적하시고자 하는 바가 뭔지는 알겠지만, 너무 오만하시군요. 이 문제에 대해 다른 식자들 역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눈에 안 보인다고 없는게 아니죠. 따져보면 괴물로까지 소급되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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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염두에 두고 계신 그 글의 주소를 가르쳐 주시거나, 검색할 수 있을만한 키워드 및 주제, 저자 등을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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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축구 보면서 주먹질하는 청년들을 위한] '물건'은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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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자기가 뭘 보는지도 모르면서 일단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때마다, 왠지 서글퍼지더군. 송강호 얼굴이 나올 때마다 웃을 준비를 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갑자기 기억나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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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스피드 레이서 랑 자꾸 비교를 하게 되는데요,

    공통점이라면 일단 화면이 훌륭하단 거, 오락영화에 필요한 서사의 논리적 정합성이 없다는 거. 그리고 사실 속에 꽤 메시지를 감추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저는 노정태님이나, 스피드레이서에 환호했던 허지웅님과 반대로, 이 두 영화 모두 감춰진 메시지를 너무 파헤쳐서 우려하거나 환호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하고 생각합니다. 보는 이들에게는 그 메시지는 아주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그리 느껴지지도, 부지불식간에 내면화되지도 않습니다. 그냥 휘발되어 버릴 뿐.(감독들이 그걸 원했던 아니건)

    그리고 이 영화와 스피드레이서의 차이는...그 모든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스피드레이서가 이미지들이 완벽하게 비어있는 영화를 지배했다면, 이 영화는 이미지들이 허탈한 내러티브를 지배하지 못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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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스피드 레이서와 비교하는 것 또한 '놈놈놈'에게는 가혹한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워쇼쇼키 형제는 존재하는 기술을 최대한 활용하여 그것을 스타일의 차원으로 승화시키는데 성공했죠. 게다가 기본적인 서사만 놓고 보더라도, 주변 인물 캐릭터 등은 몹시 빈약하지만, 큰 줄기는 전혀 허술하지 않습니다. '소년이 남자 되는' 이야기의 원형질을 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놈놈놈'은 그마저도 고지식하게 밀어붙이는 대신 뭔가 꼼수를 쓰려고 줄기차게 시도하고, 실패했어요.

    저는 그래서 '놈놈놈'의 서사적 실패, 영상적 실패의 이면에 있는 무언가를 더듬어보고자 이 글을 쓴 겁니다. "스피드레이서가 이미지들이 완벽하게 비어있는 영화를 지배했다면, 이 영화는 이미지들이 허탈한 내러티브를 지배하지 못했다"는 philip0830님의 말씀에는 상당히 동의하지만, '비어 있는' 영화라는 개념부터가 스피드 레이서와 '놈놈놈'의 경우 각각 다르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제가 지적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좋은 리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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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우주 공간이나 다른 별은 한국에서는 제대로 사유된 적이 없는 공간이니만큼, 이제 바다에서 찍은 디워 정도만 남은게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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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대륙도 그렇고 바다도 그렇고, 전부 한국 영화에서 진지하게 다루어진 적이 그다지 없죠. 문제는 그 경험의 부족을 충당할만한 상상력 또한 결핍되어 있다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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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놈놈놈 볼생각도 없었지만 이글 보니까 보고싶은 생각이 뚝 떨어지네요. TV에서 방영할때 보면서 이 글을 떠올려봐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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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놈놈놈 말고도 좋은 영화가 많습니다. 다른 좋은 영화들을 봐주시면 저로서는 그보다 흡족할 수가 없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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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말하시고자 하는 바는 알겠습니다만, 읽으면서 굉장히 불쾌하네요.
    일단 '식자'와 식자가 아닌 사람들을 가르는 시선이 불쾌하고, 둘째로 이런 점들을 읽어내지 못하면 뭐 찐따로 보시는 것 같군요.
    스피드 레이서 얘기가 나왔는데, 스피드 레이서에서 읽히던 일말의 정치적 의식이 놈놈놈에서는 전혀 읽히지 않았습니다. 읽히지 않게 영화를 만들었으니 그저 즐기는 거죠. 이 영화의 송강호의 얼굴에서 자본가 워너비 주의를 읽어내지 못하고 그저 웃었으면 병신이란 얘긴가요.
    그리고 정우성의 대사도 과도 해석하신 여지가 보이네요. 보통 사람들에게는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합니다. 영화 하나 보며 논문 쓰는 것보다는요. 정우성이 어딜 봐서 부동산 투자자로 보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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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이 영화를 보고 실망을 참 많이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싸잡아 징그러운 놈들로 귀결 짖는게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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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놈놈놈"이 애초에 과대평가 된 측면이 없잖아 있지요..

    전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만 기다리고 있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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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익명/ '식자'라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해서, 식자와 식자가 아닌 이를 구분한 후 후자를 경원시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언어로 컨텐츠를 생산하는 이들을 넓게 칭하는 용어일 뿐이죠. 그런데 식자층, 즉 말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놈놈놈'처럼 잘 들여다보이는 텍스트를 놓고 '그래도 재미있다', '액션이 좋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정말이지 큰 문제입니다.

    스피드 레이서에서 정치적 의식을 느끼지만 '놈놈놈'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말씀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스피드 레이서는 테크놀로지의 미학적 응용의 극단을 보여주는 작품인 반면, '놈놈놈'은 찍을 수 있었던 장면의 반도 못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저는 송강호 얼굴 보고 반사적으로 웃는 모든 사람들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내거나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타인이 읽을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그보다 더 심층적인 뭔가를 발견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걸 강조하는 거죠. 한국 영화를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놈놈놈'을 재미있게 봐주는 그 에너지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 아직은 막막하지만 고민중이기도 하고요. 방문해 주서셔 감사합니다.


    체리향기/ 다크 나이트도 좋지만, 필름포럼에서는 두기봉 감독 특별전을 하고 있고, 아트시네마에서도 시네 바캉스가 진행중이죠. 그런 영화들은 이미 검증된 작품들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현재 개봉작보다 재미있습니다.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永革/ 그 혐의는 저도 오래 전부터 품고 있었는데, 인문학적으로 입증해낼 방법이 상당히 묘연하다는 게 문제죠. 이영훈 등 '뉴라이트'로 분류되는 몇몇 학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습니다. 일제시대에 근대화가 이루어졌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논의가 쭉쭉 뻗어나갈 때 상당한 쾌감이 느껴지기까지 했죠. 한국 사회의 이념, 논쟁 지형도가 재정비되지 않는 한 일제시대를 재조명하는 등의 작업은 앞으로도 요원할 것 같습니다. 좋은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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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만주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이야기인데, 한석정의 "만주국 건국의 재해석"은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안보셨으면 보시고, 보셨다면 어떻게 써먹을지에 대해 이야기나 더 해보면 좋겠습니다.

    제 경우는 그 책에 대해 특히 2, 3장에 대해 요약과 코멘트를 한 바가 있습니다(http://cafe.naver.com/abcde1/562). 4장도 2, 3장에서 그리 먼 거리는 아닌 것으로 판단을 했고요. 민족정책을 다루는 부분인 대해서는 핵심 관심사라고 하기에는 아는 것이 너무 없어서 보류해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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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읽어본 적 없는 책입니다.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당장, 혹은 가까운 시일 내에 읽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만, 참조하도록 하죠. 좋은 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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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제가 쓴 글을 읽고 노정태님의 블로그를 소개해줘서 와 봤어요. 자본가와 워너비들의 소인배적 비열함이 자본주의의 본산보다 여기 한국에서 더 극심하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사람으로서, 이글의 어조에 공감을 표합니다. 다만, '만주에 가서도 생각하는 것이 고작 유전'이라고 쓰셨는데, 저는 영화 상에서 유전이 말해주는 다른 진실이 있다고 생각해요. 노정태님의 글은 대체로 등장인물과 실제 한국인들의 '행태의 유사성'을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저는 인물들의 행위를 좀 더 보편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뢰배적인 인물은 웨스턴 장르에서 매우 일반적이라 하더라구요.

    http://plinchoi.egloos.com/4534595

    미리 귀띔해 드리면, 제 독해는 '상징'이 아니라 '알레고리'의 방법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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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송강호의 대사는 사실 장르의 클리쉐에 가깝죠. 하지만 이 영화를 낳은 한국 사회의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할 때, 그 의미가 다른 차원을 획득하는 것 또한 사실이고요. 저는 영화에 대해 심층적인 비평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거기서 너무도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 코드를 지적한 것 뿐이죠. 좋은 리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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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노정태는 정말 머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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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공들여 쓰신 글, 아주 잘 읽었습니다.

    특히 레오네의 영화 '황야의 무법자'와 비교
    하는 것은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라는 표현이
    참 와 닿는 군요. 전 이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이 영화의 컨셉만으로도 보기 싫어지는 영화더군요.

    전 이 영화가 한국 이외의 다른 나라, 특히 미국이나 중국에서 개봉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끔찍해요. '만주'에서 펼쳐지는 '오리엔탈 웨스턴'이라니,,,

    (미국에서 인종주의와 관련한 블로그로 유명한
    http://www.angryasianman.com/2008_06_01_archive.html 중간 쯤에 보면 이 영화에 대한 짤막한 언급이 있습니다.)

    심형래나 김지운이나 내면에 깔린 '그것'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그걸 촌스럽게 드러내느냐, 세련되게 포장해서 감추느냐의 차이일 뿐이지요.

    영화평론가들/식자들 사이에서 이 영화에 대한 별다른 얘기가 안 나오는 것과 이 영화'마저' 망했더라면 영화계 식자들이 글을 실을 수 있는 공간 자체도 없어질 수 있다는 현실이 상관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을 해 봅니다.

    아, 혹시 이 글 씨네21에 기고할 생각은 없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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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놈놈놈은 여러 모로 '문제작'이었음이 확실합니다. 말씀하신대로 한국 영화 제작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었던지라, 많은 이들이 몸을 사린 것도 사실이고요, 심형래의 디워와 정서적으로 유사한 지점이 있다는 것 또한 맞는 말인데, 이번에는 그때처럼 싸울 수 있는 여건조차 되지 않았다는 게 또 하나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씨네21에 기고하기엔 너무 늦은 것 같군요. 설령 영화가 갓 개봉한 시점이었다 해도, 영화지에서 받아줄 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아무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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