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08

정부와 언론의 뻔뻔스러운 '바이러스 검사 맛집' 프레임

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놀랍지 않다. 여론조사가 조작되었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여론 그 자체가 조작에 가깝도록 왜곡되어 있다는 뜻이다. 다수의 사람들은 정부가 뭘 잘못해왔는지, 뭘 잘못하고 있는지, 뭘 더 잘못할 예정인지 모른다. 대신 그들이 아는 것은 언론을 통해 유포된 이상한 프레임이다. 가령, 이런 것들 말이다.

  1. 한국은 정말 빠른 속도로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하고 있으며, 그래서 전 세계가 깜짝 놀라 감탄한다.
  2. 한국은 정말 투명하게 정부가 모든 정보를 공개하며, 그래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과 싸우는 전 세계 정부의 모범이 되고 있다.

일단 1을 살펴보자. 얼핏 들으면 한국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개쩔게 잘 대응하는 것 같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하는 것은 그만큼 감염자가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감염된 사람이 없다면 검사를 할 일도 없다. 이건 마치 집이 활활 불타고 있는데 소방수가 불 잘 끈다고 좋아하는 꼴이다.

COVID-19 감염증 검사 프로토콜. 일단 열이 나야 하고, 마른기침을 동반한 가래가 나와야 한다. 그 가래를 채취하여 검사한다. 1차 의료기관에는 지금도 수많은 감기, 폐렴 환자들이 당도한다. 의사들이 그들 중 COVID-19 감염 의심자를 걸러낸다. 그렇게 한 차례 선별된 의심 증상자들의 가래를 채취하여 샘플을 만들고, 샘플을 분석하여 확진자를 선별한다.

즉, COVID-19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고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 모두가 검사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검사 대상이 된 사람들 중에서도 일부는 음성이 나오고 일부는 양성이 나온다. 그렇게 양성이 나온 사람들만 확진자다. 이 관계를 집합으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확진자 ⊂ 피검사자 ⊂ 유증상자

그러므로 한국에서 검사를 빨리 한다고 자랑할 일은 하나도 없다. 외국인들이 보면 신기하긴 할텐데 그게 외신에 나온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국이 가지고 있는 의료 자원을 총동원해야 할만큼 COVID-19 바이러스가 퍼졌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애초에 이렇게 '세계가 깜짝 놀라는 한국의 검사 속도'를 자랑할 일을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과 청와대의 판단 착오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도 있다. '한국의 검사 속도 세계가 깜놀!'같은, 무슨 나영석 PD가 연예인들 데리고 외국 나가서 식당 차리고 외국인들이 맛있다고 따봉 해주는 것 같은 프레임을 언론에서 적극적으로 유포하고 있다는 것 말이다.

물론 외신들은, 좀 보기 드문 일이긴 하니까 보도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그런 장단에 놀아나는 건 좀, 문제 있지 않나? 집에 홍수가 나서 오수가 역류하고 있는데 '캬, 우리 형님 바가지로 물 퍼내는 솜씨 보소~ 엄지척!' 이지랄 하는 것이다.

두 번째, '한국의 투명한 정보 공개' 프레임도 그렇다. 귀찮아서 모든 외신을 일일이 찾아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영어권 언론이라면 한국의 '투명한 정보 공개'를 백퍼센트 찬성하거나 환영할 까닭이 없다. 아니나다를까, 이번주 이코노미스트를 펼쳐보니,

In South Korea, by contrast, the government is being forthright and formidably transparent, allowing Koreans to trace their possible brushes with the disease. As well as briefing the press thoroughly twice a day, and texting reporters details of every death, the government puts online a detailed record of each new patient’s movements over previous days and weeks, allowing people to choose to shun the places they visited. The risk of illicit activity being thus uncovered—at least one extramarital affair may have been—gives people an extra incentive to avoid exposure to a disease which, in most of the infected, results in only mild symptoms.

한국에서는 대조적으로 정부가 직설적이고 투명해서 한국인들은 질병에 노출될 가능성을 스스로 추적해볼 수 있다. . . . 바람직하지 못한 활동이 드러날 위험도 있다. 적어도 한 건의 불륜 사례가 드러났으며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대부분의 감염 사례에서 가벼운 증상만 보이고 끝날 수 있는 이 병에 노출될 가능성을 더욱 피하게 만드는 유인동기를 제공하고 있다.

"What the world has learned about facing covid-19", The Economist, 2020년 3월 5일

국민의 신용카드와 교통카드 정보에 기반해 누군가의 소비와 동선을 모두 추적하여 까발리는 것은, 외신들이 나오는 '서구 선진국'이라면, 영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정보를 수집하여 언론에 대서특필하고 있다.

이것을 '투명성'이라고 아이고 좋다 멋지다 한국 최고~ 라는 식으로 영어권 언론이 다룰 가능성은 0으로 수렴할 것이다. 지금 위에 인용한 이코노미스트 기사처럼, 다들 사생활 침해 등에 대한 우려를 전제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해당 대사를 좀 더 읽다보면 등장하는 문단은, 한국인 중 상당수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투명성'이라는 것이 외신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 정직하게 알려준다. "한국의 권력은 시민의 사생활에 아주 작은 비중을 둔다. 한국의 대응 중 일부는 다른 민주 국가에 적용되기 어려울 것이다."(South Korea has powers that put very little weight on its citizens’ privacy; some aspects of its response might be hard to mount in other democracies.)

물론 그 이후로 케나다의 사례를 들어, 국민의 동의 하에 잘 작동하는 민주국가가 국민의 설득과 동의 하에 격리 조치 등을 더 잘 시행할 수 있다는 서술이 따라붙고 있긴 하다. 그래도 한국의 '투명성'이 기존 민주국가의 상식과 어긋나 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야 한국의 바이러스와의 싸움이 투명하다고 뉴욕타임즈 같은 외신에서 막 좋아요 쌍따봉 했다는데?' 정도로 알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청와대의 편에 선 언론들은 청와대 편을 드느라 그런 식으로 단장취의하고 있으며, 현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들 또한, 어쨌건 '국뽕 장사'를 하면 조회수에 도움이 되니까, 국뽕 장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니 청와대는 여론조사를 조작할 필요가 없다. 여론 자체가 조작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기 대응이 잘못되어 이 사달이 나고 있는데, 확진자 빨리 잡아낸다고 좋아라 하는,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논리가 통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한국은 '바이러스 검사 맛집'이 아니다. '정부가 투명한 국가'로 전 세계의 칭송을 받고 있지도 않다. 바이러스가 퍼질대로 퍼진 감염국이며, 국민의 사생활이고 뭐고 일단 까발리고 보는, 국민의 사생활을 덜 보호하며 민주적 원칙을 쉽게 양보하는 국가다.

여러분이 읽는 수많은 '외신에서 어쩌구' 타령에서, 국내 언론이 감추고 있는 이면의 맥락이 이렇다는 것이다. 다만 그 외신들은 '젠틀'하게, 우리의 면전에 대고 저런 소리를 안 하고 있을 뿐이다.

댓글 8개:

  1. 꽤 예전에 엠마 왓슨이 나온 '더 서클'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지금의 구글과 페이스북이 더욱 정교해지고 사회 인접 자본에 관여하는 정도가 된 '서클' 이라는 가상의 기업을 소재로, 개인의 사생활보다 정보의 투명성에 무게를 두었을 때(사실상 일축할 때) 벌어질 만한 일들을 다루었죠.

    모든 게 투명하면 비리 기업도 부패 정치인도 이론 단계부터 근절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사실 완전한 '정보의 투명성'은 일종의 사회주의 유토피아와도 같습니다. 정말 그런 게 있다면 오히려 완전한 통제 상태의 반증일 뿐이지요.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데우스 액스 마키나이고 최종 보스가 아니라, 21세기의 새로운 신에게 기도하고 고해성사하는 신도들이야말로 스스로를 억압하고 노예로 만드는 셈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언론(의 배후에 있는 정권)이 여론을 조종한다기보단, 여론이 언론을 그렇게 만든다고 보는 게 더 타당합니다.
    현대 사회의 빅 브라더는 총칼이나 매스컴이 아니라 무논리, 무비판, 무지성으로 지배하니까요. 우리가 띠를 두르고 싸워야 하는 상대는 당장의 여당과 정부가 아닙니다. 위정자가 바뀐들 '관리되는 사회의 총체성'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 사회의 구성원이 그를 자각하기 전까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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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용카드 사용 내역, 교통카드 사용 내역, 핸드폰 위치 조회, 이 세 가지면 모든 한국인은 정부에 의해 거의 100% 확실하게 추적이 됩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 결국 제도적 통제가 필요한데, 지금 한국 사회에는 COVID-19를 핑계로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단번에 허용하는 분위기가 만연해있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언론의 역할과 책임을 그래도 좀 더 강조하는 편입니다. 만약 박근혜나 보수 정치인이 대통령이었던 시절에 정부가 이렇게까지 '투명'하게 확진자 동선을 공개했다면, 십중팔구 진보 언론과 지식인들은 '빅브라더' 운운하면서 반대 여론을 조성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 흐름 속에 있었고, 지금도 넓은 의미에서는 그쪽에 속하지 않는 게 아니니, 잘 알죠.

      결국 중요한 것은 사회 전체의 인식이라는 큰 틀에서의 말씀에는 물론 동의합니다. 그것을 조금씩이라도 움직이기 위해, 이렇게 좋아하지도 않는 주제에 대해 블로그에 한 두 마디라도 글을 쓰고 있고요. 좋은 댓글 덕분에 힘이 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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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기왕이면 능동적으로 냉소적이어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무언가가 움직이니까요.
      다만 그조차도 그럴 자리가 없으면 속절없이 안으로 썩어들어가기 마련인데, 00년대 논단에서 눈여겨보던 분이 지금도 블로그에 글을 남기고 계셔서 익명으로라도 의견을 교환할 수 있어서 제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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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자주 방문해서 글을 읽는 독자로서, 노정태 님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시면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제 채널에 얼굴은 안나오고 짧은 영상에 목소리만 녹음해서 올리는데요.
    불특정 다수(... 현실은 적은 구독자)에게 무언가를 공유하는 방법으로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가지 주제에 대해 개인적으로 대화하면 한도 끝도 없이 했던 얘기 또 하고 했던 얘기 또 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라디오 프로그램처럼 내가 기획해서 내 생각을 넣으면 듣는 사람이 알아서 듣고 보면서 참고하기 때문에 정성이 듬뿍 들어가는 1:1 의 대화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오늘 마침 허지웅 씨 유튜브 채널이 추천으로 떴더라구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본인의 생각을 공유하는 플랫폼으로써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추세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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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본문 내용과 상관 없는 내용을 남겨서 잡음을 섞은 미안한 마음에
      오지랖 넓은 댓글을 지우고 싶지만,
      구글 계정으로 쓴 댓글이 아니라서 관리할 수가 없네요.
      586 꿘저씨 정서가 한국 사회를 쇠락으로 몰고 있기 때문에 더욱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곳에서 읽는 노정태 님의 생각이 더 넓게 공유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고요.
      저도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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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마 작성하실 때 비밀번호를 넣도록 되어 있을 거에요. 그걸 입력하면 삭제가 되는 시스템이었는데, 저는 특별히 오지랖이나 그런 내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불특정 다수에게 호응을 받는 글을 쓰거나 영상을 만들거나 하는 일에 큰 욕심이 없는 성격 같습니다. 허지웅 씨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분은 이글루스 시절에도 최선을 다해 (자신 뿐 아니라 남들에게도) 보기 좋게 블로그를 꾸미고, 무슨 댓글 이벤트 같은 것도 하고, 그랬죠. 저는 블로그 사용자들끼리 친목질 용도로 하는 '20문답' 같은 것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성격이고요.

      생긴대로 산다고 해야 할까요. 하하. 좋은 하루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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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지랖이라 생각 안하셨다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본문 내용에 연관 있는 댓글을 쓰려고 노력하려 합니다. ^^;

      참, 댓글 입력폼에 비밀번호 넣는 필드는 없어요. 하지만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어서 괜찮습니다.
      얼마 전까지 신호등 골라라 횡단보도 골라라 요구사항이 많았는데 그 단계 없어져서 훨씬 편하게 쓰고 있습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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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 그렇군요. 제가 몇 년 전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했는데, 한번이라도 로그아웃해보고 말씀을 드릴 걸 그랬네요. 머쓱합니다.

      방문자의 댓글 사용이 그렇게나 어렵다면(한번 쓰고 수정이 안 되면 좀 곤란하죠), 뭔가 다른 방도를 찾아보던가 해야겠습니다. 당장은 아니어도 말이죠.

      아무튼, 빵과 장미님도 좋은 주말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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