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1-07

2008년 1월 7일

FP의 편집 마감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내일 밤까지 2차 교정을 마무리짓고 미국에 파일을 보내서 토요일까지 출판 승낙이 오게 하고 싶다. 일하기는 싫고 월급은 받고 싶은 이 모순된 심리상태를 극복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다.

사무실에서 나와 잠시 친구와 차를 마신 후 그를 집에 데려다주러 갔다가 겪은 일에 대하여. 아파트 주민이 '너희들 여기서 나가'라고 소리지르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마치 아파트 앞뜰이 자신의 정원이라도 되는 양 말하는 것이 아닌가(1층에 사니까 자신이 그런 소리 할 수 있다고 우겼지만, 8층에 산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그냥 말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목소리를 높이면 동네 사람들이 깨니까, 나름대로 조용하게 아주머니 집에 들어가시라고 권유를 했는데, 남편이라는 자가 나와서 시위하는 것을 보고 더욱 기가 막혔다. 그 치들을 곱게 들여보내고, 분노하고 있던 그를 달랜 후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잠시 통화를 한 후, 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길에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의 내용을 곱씹었다. 이 책이 애초의 기대만큼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것은, 한국인들이 왜 아파트를 이렇게까지 선호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해석에 다소 무리가 있었을 뿐 아니라, 지금 불어닥치고 있는 아파트 열풍이 가지고 있는 사회심리적인 성격에 대한 고찰이 전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겪은 사례에서 알 수 있다시피, 가진 것이라고는 달랑 아파트 한 채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희망이요 빛이며 구원으로 향하는 유일한 사다리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영역'을 현관 밖으로, 심지어는 단지 전부로 확장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렇기에 '더 넓은 평수' 혹은 '더 높은 층수'에 사는 누군가에게 야코가 죽는 일을 죽기보다 싫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심리를 좀 더 해설하자면 다음과 같다. 만약 모든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이 그 단지 전체를 자신의 영역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쳐보자. 그렇다면 아파트 단지는, 주민의 숫자를 n이라고 할 때 n만큼의 행위자가 동시에 영역으로 삼고 있는 전쟁터인데, 이는 최악의 경우 (n+1)!/2, 즉 {(n+1)*n*(n-1)*(n-2)* . . . 1}/2 만큼의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아파트 단지에서 싸움이 괜히 많이 나는 게 아니다. 이렇듯 수학적으로도 증명 가능하지 않은가).

따라서 자신이 어떤 아파트의 주민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정서는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파트에 산다는 사실이 자랑인 사람은 그것 외에는 별다른 자랑거리나 즐길거리가 없는 사람이므로, 있는 재산을 다 털어서 아파트 한 채 사놓고 버티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한국사회는 정서적으로 각박해지고 문화적으로 천박해지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아파트 가격이 올라 더 높은 평수와 층수로 올라가는 것 뿐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나 말고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같은 이득을 누리게 되므로, 자신의 상대적인 지위가 적어도 그 단지 내에서 올라갈 수는 없다.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살고 있다면, 물론 다른 듣보잡 아파트에 사는 사람에 비하면야 떼돈을 번 것이지만, 자신보다 더 큰 평수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더 큰 이익을 보는 사람과 스스로를 견주어본다면 배고픔보다 더욱 지독한 배아픔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단 하나의 주택만을 가지고 있는 자가 그것의 가격 상승을 통해 상대적 박탈감을 이겨낸다는 것은,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문제는, 역시 다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이론과 논리의 바깥에 설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는 것이다.

다시 FP로 돌아와보자. 교정을 위해 원고를 읽고 또 읽는다. 번역도 하는데, 하면서 나의 한국어 어휘가 그다지 풍부하지 않다는 것을 절감한다. 양놈들이라고 다들 잘나서 그러는 건 아니고 유의어사전, 말하자면 Thesaurus가 있기 때문에 그 도움을 받는데, 한국어에서 그러한 종류의 것은 오직 《비슷한말 반대말 사전》뿐이다. 그나마 어휘가 한자어 중심으로 짜여져 있고 표제어가 그리 많지 않다. 일단 알라딘 보관함에 넣었는데 언제 구입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사전과 관련해서는 이 마이리스트가 괜찮은 것 같다.

자기 전에 조금이라도 운동을 하고 또 교정지를 훑어야겠다. 돈이 너무 없던 시절 늘 염원하던 그 물건, 캐틀벨을 드디어 집에 들여놓았다. 오늘 오전에는 트레이너 레벨 캡악력기도 왔는데, 다섯 번을 넘기면 그때부터 힘이 달린다. 한 손에 스무 개씩 쉬지 않고 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스트레스를 풀 겸 좀 더 하다가 자야겠다.

댓글 4개:

  1. 결혼해도 애를 낳지 않고, 아파트에 대한 미련만 버린다면 한국(아니 특히 '서울')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고 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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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파트 하나에 목숨 건 사람들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도 있지. 그게 훨씬 좋은 거라는 걸 사람들이 언젠가는 알게 될 날이 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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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대치동 은마는 재개발 예정 대단지라 평수 절래 작고 후지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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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글 쓰는 와중에 대뜸 이름이 떠올라버렸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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