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봇 성능 테스트 원래 이렇게 한다?
● ‘군용 목적’ 로봇조차 학대 논란 겪어
● 보스턴 다이내믹스도 유튜브 영상 삭제
● 아이보가 준 교훈…‘로봇도 늙어 죽는다’
● 인간×로봇 시대에 ‘윤리란 무엇인가’
뷰파인더는 1983년생 필자가 진영 논리와 묵은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시대 진단서'입니다.
"덤블링 한번 보시겠어요?"
어떤 벤처기업 부스에서 자신들이 만든 4족 보행 로봇을 홍보했다. 원격으로 조작하자 로봇은 제자리에서 뛰어올라 공중제비를 돈 후 바닥에 멋지게 착지했다. 그 광경을 본 이재명은 직접 추가 테스트에 나섰다. 먼저 로봇을 가볍게 밀어보았다. 로봇은 네 다리로 균형을 잡았다.
"잘 버티네요."
벤처기업 시연자에게 한 마디 한 그는 로봇의 배 부분에 두 손을 넣고 번쩍 들어 올려 뒤집었다. 그를 수행하던 이들과 주변 관람자들 중 일부는 깜짝 놀랐다. 네 다리가 앞뒤로 360도 회전 가능하게 설계된 로봇은 일단 뒤집힌 채로 일어났고, 그 후 스스로 몸을 뒤집어 원위치를 회복했다.
이재명 '로봇 실험' 주장, 팩트체크
이 장면은 큰 논란을 불러왔다. 안 그래도 얼마 전 이재명을 두고 소시오패스(Sociopath) 논란이 벌어졌던 터였으니 말이다. 일부 네티즌은 이재명의 행동을 문재인 대통령과 비교했다. 문재인은 비슷한 상황에서 4족 보행 로봇을 가볍게 들었다가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또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기본적으로 감정이입 능력의 문제"라는 코멘트를 남겼다.이재명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10월 31일 SNS를 통해 "이 로봇은 넘어져도 자세복귀능력이 있다고 해서 추격테스트에 이어 전도테스트로 넘어뜨려 본 것"이라며 "로봇 테스트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야 그럴 수 있겠지만, 일부 언론이 복원장면은 삭제한 채 넘어뜨리는 일부 장면만 보여주며 과격 운운 하는 것은 가짜뉴스"라고 쓰며 역공을 취했다. SNS 게시물에는 한때 구글이 보유하고 있던 '보스턴 다이내믹스'사에서 4족 보행 로봇을 만들어 발로 차고 밀던 모습을 함께 편집해 붙여놓았다.
일단 팩트부터 확인해보자. 이재명이 제시한 동영상 말미에 등장한 자막, "※ '로봇 성능 테스트'는 원래 이렇게 합니다…" 라는 말은 사실일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옳다고 할 수도 없다. 이재명의 '실험'과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실험'에는 몇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시기부터 다르다. '로봇 걷어차기' 영상으로 유명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들은 2009년부터 대중에게 선보이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로봇의 4족 보행 기술은 걸음마 단계였다. 바퀴나 변형된 캐터필러가 아닌 '다리'를 이용해 움직이는 로봇을 구현해내는 것 자체가 오래 되지 않은 기술인 것이다. 반면 지금은 2021년이고, 보스턴 다이내믹스만큼 탁월하지는 않더라도 로봇 다족 보행의 기술적 장벽 자체는 퍽 낮아진 상태다.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그런 이상한 로봇을 만든 이유는 뭘까? 처음 공개된 '빅독'(BigDog)은 당나귀나 노새 정도의 크기로, 네 다리로 움직이고, 걷어차거나 빙판 위에서 밀어도 쓰러지지 않는 로봇이었다. 용도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그 로봇은 아프가니스탄 같은 험악한 지형에서 자동차로 진입하기 어려운 곳에 군수 물자를 나르기 위한 용도로 개발되고 있었다.
하지만 디젤 엔진으로 작동하는 터라 너무 시끄러워서 군용으로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 후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로봇의 소형화와 소음 줄이기, 그리고 인간 형태 모방 등으로 방향을 선회한 상태다.
4족 보행 로봇이 군사 목적일리가
이렇게 길게 '로봇의 목적'을 설명하는 이유가 있다. 이재명이 1:1로 비교한 영상 속 로봇은 애초에 군용으로 개발된 것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거친 환경 속에서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 발로 걷어차고 밀고 굴리는 식으로 험한 테스트를 하며, 그걸 견뎌낼 수 있다고 보여준 것은 그런 면에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미국에서도 '로봇 학대' 논란이 불거졌고,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유튜브에 직접 올린 영상들은 삭제됐다.반면 이재명이 뒤집은 로봇은 어떨까? 중형, 소형 애완견 정도의 크기를 지니고 있는 4족 보행 로봇을 군사 목적으로 개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영상을 유심히 보면 해당 로봇은 강한 외부 충격을 견뎌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 같지도 않다. 아직 안 보신 분이라면 유튜브 등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시라. 이재명이 뒤집어 쓰러뜨린 후 다시 일어날 때 한쪽 다리의 부품이 빠져서 바닥에 떨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잘 들어보면 현장에 있던 누군가가 그 사실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로봇 성능 테스트'는 원래 이렇게 한다는 이재명 측의 해명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다.
이재명의 비판자들은 이번 일을 '공감 능력이 부족한 이재명의 본성을 또 보여주는 사건'으로 여기고 있다. 반면 이재명 지지자들은 '별거 아닌 일로 시비를 거는 나쁜 프레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람도 아니고 생명체도 아닌 로봇을 거칠게 뒤집었다고 해서 '로봇 학대'니 뭐니 운운하는 것은 비이성적인 공감 과잉이고 어불성설이라는 소리다.
어떤 면에서 보면 맞는 말 같다. 가령 우리는 자동차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차량 내에 센서가 부착된 인간 모형(더미)을 싣고 충돌 테스트를 하지만, 그 누구도 '자동차 학대'나 '더미 학대'를 이야기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일부 이재명 지지자들은 골프공 강도 테스트를 비롯해 다양한 방식으로 물건을 부수고 망가뜨리는 영상이나 사진 등을 공유하며 '로봇 학대'라는 표현을 조롱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 우리는 물건을 학대할 수 없다. 학대의 대상은 인간 및 우리가 정서적으로 애착을 느끼는 생명체로 한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명백하게 동물을 연상시키는 로봇을 향해 폭력적 행위를 하는 걸 전혀 문제 삼지 않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 그러니까 인간이 지니고 있는 공감 능력 때문이다. 우리의 공감 능력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비이성적'이다.
어떤 SF 소설보다 더 SF적인 실화
반대편의 극단적인 사례를 들어보자. 1999년, 소니는 세계 최초의 애완용 로봇 '아이보'(アイボ)를 출시했다. 애완견의 행동과 모습을 본떠 만들었다. 아이보는 아프지도 늙지도 죽지도 않는 애완견이 되어 주인보다 오래 살 터였다. 2006년까지 일본 내에서 15만대가 판매되는 큰 성공을 거둔 데에는 소비자들의 그런 기대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문제는 소니의 경영이 크게 악화되었다는 데 있다. 2006년 소니는 구조조정을 이유로 아이보의 판매를 전격 중단했다. 2013년부터는 AS조차 해주지 않았다. 그제야 아이보의 구매자들은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실을 알게 됐다. 기계도 낡는다. 아니, 늙는다. 꾸준히 소모품을 갈아주며 유지 보수해주지 않는다면 로봇 역시 사람이나 동물처럼 노화하고, 결국 다시는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요컨대 로봇 또한 '늙어 죽는다'는 말이다.
결국 2017년부터 일본에서는 '로봇 개 장례식'이라는 특이한 현상이 펼쳐지게 됐다. 더는 수리할 수 없는 아이보를 떠나보내는 주인들이 모여 수백 마리씩 장례를 치러준 것이다. 그렇게 모인 아이보들의 몸에서 다른 아이보의 수명 연장을 위한 부품도 수거되었다고 하니 여러모로 가슴 찡한 이야기다. 로봇에 대한 일본인들의 대중적 관심과 애정, 그리고 소니의 경영 악화가 빚어낸, 그 어떤 SF 소설보다 더 SF적인 실화다.
이건 잘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래도록 타고 다니며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자동차를 폐차할 때 눈물짓는 차주들을 우리는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로봇청소기를 구입한 사람들이 로봇청소기에게 애칭을 붙여주고 귀여워하는 것도 흔히 목격되는 현상 중 하나다.
조선 순조 때 유씨 부인은 27년이나 아끼며 써오던 바늘의 허리가 부러지자 "모년 모월 모일 미망인 모씨가 두어 자(字) 글로써 침자(針子)에게 고하노라"며 추모의 글을 남겼다. 그 유명한 '조침문(弔針文)'이다.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아닌 물건에 이름을 붙이고, 애정을 쏟고, 그것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되면 마음 아파하는 것은 아이보를 구매한 21세기 일본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특히 우리는 한국인이므로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정확한 용어를 알고 있다. 정(情)이다. 우리는 사람에게, 동물에게, 식물에게, 더 나아가 사물이나 장소에도 정이 든다. 정든 만년필을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유씨 부인처럼 애석해한다. 열린 현관문을 통해 로봇청소기가 집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은 그 '아이'가 '가출'했다며 아파트에 공고를 붙인다. 오래도록 타고 다니며 정들었던 자동차를 누군가 들이받아 폐차하게 되었다면 우리는 마치 아끼는 말이나 소가 늑대에게 습격당한 카우보이처럼 분노할 것이다.
사물에 정을 느끼고 아끼다가 결국 슬퍼하고 다시 극복하는 그 모든 과정은 결코 엉뚱하거나 비합리적인 게 아니다. 정, 그것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가장 근본적인 정서 중 하나다.
‘李 인격 논란' 너머의 윤리 논쟁
공정을 기하기 위해 이재명을 위한 변명을 하나 해보겠다. 개인적으로 나는 실험정신이 투철하다. 같은 현장에서 같은 테스트 제의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이재명처럼 거칠게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한번은 뒤집어봤을 것 같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영상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니 말이다. 이재명 역시 호기심에 강하게 사로잡힌 나머지 대선후보라는 사회적 역할을 잊었던 것은 아닐까?2021년 현재, 우리는 음성인식으로 TV를 틀고 채널을 바꿔주는 스마트 스피커라던가, 아이폰의 '시리'나 갤럭시의 '빅스비'처럼 오직 내 목소리에만 반응하는 스마트폰 속 AI(인공지능) 어시스턴트 등 사람 흉내를 내는 온갖 기계와 소프트웨어 속에서 살아간다. 앞서 '뷰파인더' 지면에서 다루었던 채팅봇 '이루다' 논란 역시 같은 맥락에서 되짚어볼 수 있다. 채팅봇도 일종의 로봇이니 말이다.
2021년 6월 현대자동차그룹이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했다. 대한민국이 바야흐로 인간과 기술 사이의 윤리를 더욱 선구적으로 고민해야 할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우리는 인간이나 동물만을 놓고는 인간의 윤리적 지평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논란이 '이재명 소시오패스' '이재명은 매정한 사람' 같은 특정인의 인격 문제로 축소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기술과 윤리에 대한 논의는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필요가 있다.
#이재명 #로봇 #보스턴다이내믹스 #아이보 #신동아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밀레니얼 선언'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basil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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